독일이야기 2008.01.16 14:26
舊독일, 도르니에 우랄 폭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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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ftwaffe(독일 나치스 공군)의 가장 심각한 결점은 효과적인 중(重)폭격기 비행단의 부족이었다. Dornier Do.19는 몇가지 원인 때문에, 흥미를 돋구는 가능성이었으나, 결코 성사되지 않았다.
Luftwaffe의 최초 참모장인, 공군소장 Walther Wever는  영국과 미국에서 개발되어 존재하고 있는 그것들과 같은 독일 장거리폭격비행단의 가장 집요한 주창자였다. 주로 Wever 때문에, RLM Technisch Amt(RLM 기술부)는 4개의 엔진인 중(重)폭격기를 위한 설계명세서를 발행하였다. 양쪽 Dornier사와 Junkers사는 계약을 위한 경쟁자였고, 각각은 1935년말에 3가지 시제품을 위한 주문을 받았다. Dornier 설계는 Do.19의 설계번호가 주어졌고, 한편 Junkers 시제품은 Ju-89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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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nier Do.19는 중앙 캔틸레버식 날개였고, 건조는 대개 금속이었다. 그것은 직사각형 접합부분 기체와 보강된 한쌍의 수직안정판 및 방향타를 갖춘 미부(尾部)가 있었다. 이것들은 수평 꼬리 날개의 위쪽 표면에 설치되었다. 그것은 또한 꼬리 바퀴를 포함하여, 접어 넣을수 있는 랜딩기어가 있었다. 동력장치는 날개의 앞 가장자리에 나셀(비행기·비행선의 기관실·승무원실)에 설치된 것인, 4개의 BMW 332H-2 방사형 구조 엔진이었다. 그것은 9명의 승무원이 있었는데, 그것은 조종사, 부조종사, 비행사, 폭격수, 무선 통신수 및 5명의 포수로 이루어질 것이었다.


V1 시제품은 1936년10월28일에 날았다. 공군소장 Wever가 비행기 추락으로 죽었을때, 중(重)폭격기 계획은 그것의 추진력을 잃었고, 원상태로 되지 않았다. Luftwaffe가 뒤덮
듯이 영국의 하늘에 격렬한 타격을 주었을때, 중(重)폭격기 부재의 실책이 명백했다. 그러나 그때까지 필요한 중(重)폭격기를 개발하기에는 때가 너무 늦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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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ver의 후임자인, Albert Kesselring은, 독일은 더 많은 전투기와 전술 폭격기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 결과 V2 및 V3 시제품은 폐기되었다. 그 최초의 V1은 1938년에 화물 수송기가 되었다. Dornier Do.19는 단지 시제품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유용한 장거리 폭격기일 뿐만 아니라 항복을 시킬수 있는 아직도 그것은 장래성이 있는 설계였지만, 절박하게 야전에서 경험이 필요했는데 거기서 Luftwaffe는 실패한 것이었다.

데이터 
만든회사: Dornier Flugzeugbau
기종타입: 장거리 전략 폭격기
기관동력: 4개의 533-kW (715hp) Bramo 332H-2 방사상 피스톤 엔진
기종성능: 해수면에서 최대속도 315km/h (196mph) 3500m에서 365 km/h.
상승한도: 5600m (18,370ft)
항속거리: 1600km (994 miles)
전체중량: 아무것도 싣지 않았을 때 11850kg (25,125lb)
최대중량: 18500kg (40,786lb)
날개너비: 35.00m (114ft 10in)
전체길이: 25.45m (83ft 6in)
전체높이: 5.77m (18ft 11in)
날개면적: 162.00m 스퀘어 (1,743.81 sq ft)
탑재병기: 2문의 7.92mm (0.31in) MG 15 기관총
기수와 꼬리날개 위치에 각1문

2문의 20mm 기관포 (하면(下面) 및 배후의 회전포탑을 조종하는 2사람에 각1문씩). 내 격실에 폭탄 1600kg (3,527lb)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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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나가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