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야기 2007.12.26 10:54
북한의 핵 개발조직
북한에서는 1998년 현재 900명 정도의 과학자들이 핵개발에 종사하고 있고 평양, 영변, 평성 등지의 관련 기관에서 일하는 전문인력은 총 5000명에 달한다. 과학자들은 나와 같은 구 소련 유학생 출신 이외에 국방대학,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대학, 미림대학 등에서 전문교육을 받은 뒤 국방대학원 핵전략연구실과 제2국방과학원 핵기술실, 원자력총국 부설 ‘38호연구소’‘11호연구소’ 내 핵기술실에 집중 배치됐다.

플루토늄형 핵무기 개발
북한은 오랫동안 플루토늄형 핵무기개발을 우선적으로 추진해 왔다.국방과학원 함흥분원 섬유화학연구실은 1990년 4월 15일 김일성 주석의 78세 생일 때 비날론을 개발한 북한 과학의 아버지 이승기(李承基) 박사가 개발한 첨단무기용 화학섬유로 만들어진 고성능화약으로 플루토늄을 압축하는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이 화약은 ‘주체화약’ 또는 ‘승리 4·15화약’이란 이름이 지어졌다. 이로써 핵탄두가 완성됐다.

핵실험장은 지상실험장, 지하실험장, 공중실험장 등 모두 3곳이 마련됐다. 실제 핵실험은 1992년 2월 평안남도 안주군 안주탄광 핵실험장에서 실시됐다. 이때 실험에 사용된 히로시마 원자폭탄(10kt)의 4분의1 규모인 3㏏짜리 1기였다. 지상 핵실험장은 평북 태천군의 ‘88호공장’에, 공중실험장은 평북 영변군에 각각 설치됐다. 지상·공중실험은 실시된 적이 없다.
영변에는 핵탄두미사일 발사대가 설치돼 있다. 노동1호(사거리 2000㎞) 미사일에 언제든지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상태다.

10년 전 고농축우라늄(HEU) 추출
북한은 1988년 일본에서 입수한 자료를 통해 천연우라늄에서 핵분열을 일으키는 우라늄235를 추출하는 기술개발에 나섰으며, 1994년 고농축우라늄을 추출하는데 성공했다. 그후 수십 차례에 걸쳐 소규모 폭발실험을 실시했다. 파키스탄으로부터 구입한 원심분리기 등을 활용해 옛 소련의 핵탄두와 동일한 수준으로 성능을 끌어올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 사실을 특급기밀로 지정했다가 2002년 2월 국방과학원 무기화학연구실의 한 과학자가 미국으로 망명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우라늄형 핵탄두 개발 사실의 외부 공개를 허용했다. 같은해 10월 방북한 켈리 미국 국무부 차관보를 만난 강석주 외무성 제1외무차관이 이런 방침에 따라 미국측에 고농축 우라늄개발을 인정했다. 현재 우라늄형 핵탄두 연구는 길주군 지상시설에서 진행되고 있다.고농축우라늄은 평안북도 박천의 지하실험장에서 귀성시 지하실험장으로 옮겨졌다. 지금도 귀성과 안주 지하핵실함장에서 심야시간대에 소규모 핵실험을 수차례 실시하고 있다.

미사일개발 실태
북한은 1980년 스커드미사일 개발에 착수했다. 미국제 ‘어네스트존’ 미사일과 소련제 근거리미사일을 밀수입해 ‘스커드B’ 미사일을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이 미사일은 외화벌기 수단으로 이란 파키스탄 이집트 쿠바 등 나라에 총 300기 정도 매각했다. 이어 ‘노동1호 제1부류’(사거리 1300∼1500㎞)와 ‘노동1호 제2부류’(사거리 1600∼1700㎞)가 개발됐다.

김정일 위원장은 1993년 5월 노동1호 발사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핵과 미사일 전문가를 소집해 사거리 2000㎞급 ‘대포동1호’의 개발을 지시했다. 대포동1호는 1998년 6월 완성돼 동해 발사대에서 8월 발사실험이 실시됐다. 지금은 ‘대포동2호(사거리 4000㎞)와 대포동3호(사거리 9000㎞)가 개발 중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20㏏급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대포동2호를 ‘주체2000호’로 호칭, 주력로켓으로 지정했다. 북한은 지금 이 미사일을 연간 10기 정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밖에 40㏏급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 2기도 동해안과 백두산 삼지연기지에 각각 1기씩 실전 배치돼 있다. 사거리는 6000㎞로, 현재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는 장거리미사일과 동일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본다.

김광빈 박사는 누구인가
1953년 7월 1일 평안남도 대동군 대동읍에서 태어났다. 1970년 고등중학교 재학 중 학과경연에서 1위로 입상, 군입대를 면제받고 자강도 강계에 위치한 국방대학 물리학부에 입학했다.
1975년 학과성적 우수생으로 선발, 소련원자력위원회 연구소 연구생으로 유학했으며, 1980년 귀국해 국방대학원 함흥분원 연구사(비날론을 개발한 이승기 박사 조수)로 배치됐다. 1985년 국방과학원 용성분원 무기화학실험실 실장, 1989년 원자력총국 제38호연구소 부소장을 거쳐 1995년부터 2003년 9월 북한 탈출 직전까지 이 연구소의 소장을 맡았다.
이런 이력의 북한 핵심 핵 물리학자인 김광빈 박사가 제3국으로 망명을 하였다. 이때가 2003년 9월의 일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북한은 20여년 전 옛소련에서 6000km 사거리의 40kt급 핵탄두미사일 3기를 수입해서 사용을 하고 있으며, 이중 1기는 1983년 38호연구소에서 해체해 개조용 실험연구에 사용했고 2기는 동해안과 백두산 삼지연기지에 각각 실전 배치돼 있다고 한다. 38호 연구소라하면 원자력을 연구하는 연구소이다. 또한 고농축우라늄(HEU) 개발 문제에 대해서도 북한의 고농축우라늄을 이용한 핵 개발은 1988년 극비리에 시작돼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직전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그외에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실험장도 꽤 있는데 평안북도 태천군의 88호공장(지상실험소)과 평안남도 안주군의 탄갱(지하실험소) 등 3곳이 그것이라고 한다.

북한의 핵 관련 전문가는 1998년 현재 900명 정도였으며 핵 관련기관에 종사하는 전문인력은 총 5000명에 달한다고 한다. 핵 전문가들은 옛소련 유학생 출신 외에 국방대학과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대, 미림대학 등에서 양성한 과학자들이며 이들은 국방과학원 핵전략연구실과 제2국방과학원 핵기술실, 원자력총국 산하 제38호연구소와 제11호연구소에 집중 배치돼 있다고 한다.

북한은 1994년 제네바 북·미 핵합의에 따라 1995년 영변지구 핵시설을 동결하면서도 주요 시설은 극비리에 다른 곳으로 이동, 은폐시켰으며 이미 존재하던 제19연구소(함북 여호)의 연구원 전원을 함북 길주군 남대천 지하시설에 이동시키고 영변지구의 핵 연료봉도 남대천 지하시설로 옮겼다고 전해진다.
posted by 지나가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