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야기 2008.02.09 09:58

平式艦発促進台(スキージャンプ甲板)은 지금으로 말하면, 스키점프대 형태를 한 갑판이다.

(지금은 영국과 러시아만이 스키점프대를 채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스키점프대가 부분적으로 이미, 일본에 의해 운용되었다는것이다)


平式艦発促進台이라고 이름이 붙여진것은,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해군의 平多久소좌였기때문에 그 사람의 이름을 따서 平式이라고 명명 한 것이다. 平多久소좌는 물건을 던질때 수평으로 던지는 것보다는, 어느정도 앙각을 주어 던지는 것에 주목한다.

어느정도 앙각을 주어 던지면, 하늘로 이륙할때에 그다지 힘을 더 가하지 않고서도 이륙을 감행 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


平多久소좌는 이 원리를 평갑판에 적용을 하면, 더욱 쉽게 함재기들이 이함,발함을 하지 않을까? 하고 축소실험을 하게 된다.

소형의 활주갑판을 만들고, 활주갑판의 맨 끝부분을 부앙각을 주어, 모형비행기를 모타의 힘으로 쏘아 보았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는데,

평갑판일때는 평갑판을 지나자마자 더 이상의 힘이 가해지지 않으므로 고꾸라지는데 비해, 평갑판의 끝부분을 부앙각을 주어 실험을 하였을 때에는 비행기가 갑판을 박차고 공중으로 솟구쳐 이함하였기 때문이다.


이로서, 平多久소좌는 자신의 실험을 정리하여, 1941년 말에 일본해군대학교 전술과에 발표를 하지만, 처음에는 웃음거리가 되고만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되고 시간이 갈수록, 함재기의 중량이 늘어나는 반면, 이함을 시키는 장치는 그다지 나아진게 없어서 고생중이었는데, 이때, 일본수뇌부들은 이전에 제안되었으나 파 묻혓던, 平多久소좌의 제안을 재검토하고 실험을 활주로에 부앙각판과 같은 목제를 경사대로 갑판에 장치 한 후, 각종 작전기에 의해 이륙실험을 실시하였는데, 모형비행기의 이륙이 놀랄만큼 단거리로 이륙이 가능하다라고 하는 것이 판명되어 곧바로 실용화되게 되었다.

단지 실용화에 임하여 기체의 마력이나 중량, 이륙시의 풍향등 , 발진때의 조건에 의해서 적당한 부앙각이 그때마다 변화하여야만 했다.

부앙각이 너무 작으면,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서, 충분한 양력을 받기 전에 기체가 고꾸라지거나, 부앙각이 과대하면, 이륙각도가 너무 높아 정상적인 이륙을 하는데 이상이 있었다.


이런결과, 平式艦発促進台(スキージャンプ甲板)는 갑판에 고정된 부앙각을 주지않고 기체마다 다른 부앙각을 가지게끔 착탈식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를 비약대라고 불렀으며, 착탈식의 비약대는 유압장치에 의하여 각도를 조절 할 수 있었다.


이 비약대를 장비하고 있는 것은 공모로 개조된 이부키級 공모 2척만이 장비하였을 뿐이다.

이부키級 공모는 단 두척이었는데, 첫번째함은, 건조중이었던 改 鈴谷級 重巡(개 스즈야급 중순)의 함체를 이용해 건조 된 소형의 공모이다. 첫번째 이부키級공모는 훗날, 스키점프대라는 평식 발함 촉진대를 장비하여, 신형기의 운용이 가능하게 되었고, 이로써, <섬풍>과 <열풍개>의 함상전투기만을 탑재하여, 중순의 쾌속을 겸비한 돌격공모가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1945년 3월 80%의 공정을 기록하고, 건조중지되고 만다. 이유는 태평양전쟁의 전황악화이었다.


伊吹은 구레공창에서 건조를 지속하다가 공정80%에서 1945년 3월에 건조중지를, 2번함인 吉野는 미쓰비시조선소에서 건조를 하다가 건조중지를 당하였다.


배수톤수:12500톤
전체길이:205미터
전체너비:21미터
엔진마력:72000마력
최대속도:29노트
함재기수:상용27機
주요무장:76미리 2연장 고각포 4문, 25미리 3연장 기관포 17문


아래좌측의 사진은 순양전함 이부키의 모습이고, 우측의 사진은 공모로 개장되는 이부키의 모습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본인의 네이버카페인 http://cafe.naver.com/military/3455 에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지나가다가
독일이야기 2008.01.19 10:52

1. 전함 비스마르크와 티르피츠

군함의 연구에 있어서, 비스마르크와 티르피츠라는 이름은 하나의 전설이 되어 있다. 하지만, 계획만 있었고 실제로 건조되지 못했던 H급 전함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배들은 세계 최대의 전함이 될 수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현대의 니미츠급 원자력 항모보다도 크다.

나치 독일은 1936년까지 군비 확장을 빠르게 진행시켜 왔으며 그에 따라 해군도 세계 최강이 될 주력함을 설계하게 되었다. 해군은 잠수함대 건설 사업과 병행하여 두 척의 최신식 전함 F와 G의 건조를 시작한다. 이 두 척이 나중에 전함 비스마르크와 티르피츠가 된다. 기본 설계에 중요한 요인들 중의 하나는 평균 수심 36피트인 키일 운하였다. 이 운하는 전함의 건조가 이루어지는 함부르크와 빌헬름스하펜으로부터 시험 운항을 하게 될 발틱해를 이어주는 통로이다. 1936년의 런던 해군 조약에 의해 16인치(406mm) 포가 허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14.96인치(380mm) 포를 고려했다. 그 정도면 어떤 군함의 장갑도 뚫을 수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절약된 배수량으로 더 두꺼운 장갑 혹은 더 빠른 속도 혹은 더 얕은 흘수선 등의 이점을 얻을 수 있었다.




2. H-39의 설계
독일은 1938년에 영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자, 막강한 화력과 더 넓은 작전 범위를 가진 균형잡힌 수상함대 건설을 위한 Z-Plan을 채택한다. 해군은 이 계획은 10년 후인 1948-1949년에 완성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았고, 히틀러 자신도 1946년 이전에는 해군이 활약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전쟁은 너무 빨리 시작되었다.

Z-Plan 수상 함대의 가장 핵심은 6척의 H급 전함들(H, J, K, L, M, N)이었다. 1944년까지 6척 모두 취역시키라는 히틀러의 명령이 1939년에 있었고, 7월 15일에 H의 건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10월 10일, 3,500톤의 철강이 사용된 상태에서 건조가 중단되었다. 1940년, 조선대에 놓여졌던 용골은 해체되어 U 보트들의 건조에 사용되었다. 그 당시에는 U 보트의 건조가 더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나머지 5척의 건조는 시작되지 못했으며 1939년 말부터 1940년 사이에 건조 명령이 취소된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H급의 설계는 몇 단계에 걸쳐 진화하게 된다.

1937년 최초의 설계가 시작될 때, 독일 해군 지휘부가 요구는 다음과 같았다.

1) 5만톤 이상의 기준 배수량
2) 8문의 16인치 주포, 16문의 5.9인치 부포, 다수의 105mm(4.1인치) 및 37mm 대공포, 6문의 21인치 어뢰 발사관
3) 30노트의 최고 속도
4) 19노트 속도에서 16,000해리의 항속 거리
5) 16인치 포에 대한 대응 장갑 및 250kg(551파운드) 작약량의 어뢰를 방어할 수 있는 방어력

아돌프 히틀러가 초 거대 구경의 포를 장착할 것을 요구했으나 1939년까지는 H급의 주포는 16인치에 머물러 있었다. 16인치 함포에 대한 개발 작업은 1934년에 이미 시작되어 있었기 때문에 포대 사격 시험, 사거리 측정, 일제 사격 시험까지가 완료된 상태였다.

초 거대 구경 포에 대한 망상은 히틀러가 1941년 초에 800mm 포의 장착을 요구하면서 극에 달한다. (도라 열차포의 구경이 바로 800mm이다.) 그리하여, 에리히 레더 제독은 베르너 푹스 제독으로 하여금 800mm 포를 장착하게 될 경우 엄청나게 커질 전함의 크기와 그에 따른 막대한 건조 비용 및 시간의 지연을 들어 히틀러를 설득하도록 한다. 이러한 노력은 성공을 거두어 히틀러는 H-39 설계에서 채택되었던 16인치 쪽으로 물러 선다.

이제부터는 영국 왕실 해군이 주적이 되었기 때문에 대서양에 해외 기지를 하나도 가지지 못한 독일 해군에게는 항속 거리가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연료 소모율이 낮은 디젤 엔진이 채택된다. 증기 터빈 방식이 출력을 올리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데 비해 디젤 엔진은 짧은 시간에 최고 출력에 도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디젤 엔진을 위해서는 더 넓은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보다 큰 구경의 부포를 장착하려는 계획이 불가능해졌고, 부포는 5.9인치 포로 결정되었다.

기본적으로, H급은 비스마르크급의 화력 및 방어력 증가형 버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1939년 봄까지의 설계 제원은 다음과 같다.

* H-39의 제원 *
만재 배수량 : 65,592톤
전장 : 266m(흘수선)
전폭 : 37m(흘수선)
흘수선 : 11.2m
주포 : 16인치/50 8문
부포 : 5.9인치/55 12문
대공포 : 4.1인치/65 16문, 37mm/83 16문, 20mm 32문
어뢰 : 21인치 발사관 6문
정찰기 : 4대
속도 : 30노트
추진력 : 최대 147,950마력 (과부하시 162,750마력)
연료 : 10,000톤
항속거리 : 19노트로 16,000해리
장갑 : 상부 측면 장갑 5.9인치, 하부 측면 장갑 11.8인치, 상갑판 2인치, 하부 장갑 갑판 3.9인치


H-39의 라인 드로잉
16인치 SKC/34 주포는 포신이 매우 두꺼웠기 때문에 포구를 16.54인치로 깎아낼 수도 있었다. 이렇게 구경을 늘리면 구경장은 50에서 48로 줄어든다. 16.54인치/48 포는 나중에 H-41과 H-42의 주포로 채택된다. 독일은 다른 나라들이 버린 2연장 포탑 방식을 선호했는데, 그것은 하나의 포탑이 피격당했을 때 화력의 손실이 적기 때문이다. 3연장이나 4연장 포탑은 포문수에 비해 무게와 공간을 적게 차지하여 경제적이지만, 보다 복잡한 기계 장치의 설계 및 제작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독일 해군에게는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느껴졌다.

포탑은 제작되지 못했지만, 7문의 16인치 함포가 실제로 제작되었다. 이 포들은 아돌프 포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해안 포가 되었다. 그 중 3문은 노르웨이의 나르빅 항을 방어하기 위해 사용되었다가(원래 4문이 예정되었으나 1문은 수송 중 상실) 전후 노르웨이에 넘어가고, 1954년에 마지막 사격을 해 본 후 1968년에 팔렸다. 나머지 3문은 영국 해협 쪽에 설치되어 린데만 포대가 되었으나 전쟁에서 살아남지 못하였다.




3. H-40

H급 전함의 건조는 2차 대전 개전으로 인해 연기되었지만, 히틀러는 설계 작업은 계속할 것을 명했으며, 1940년 7월에는 해군에 새로운 설계안 개발을 시작할 것을 지시한다. 전쟁 중의 경험을 토대로 많은 개선점이 제시되었는데, 대부분이 방어력의 증가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H-40의 A형과 B형 설계안이 나온다.

H-40 A형
만재 배수량 : 64,575톤
전장 : 270m
전폭 : 38m
흘수선 : 9.8m
주포 : 16인치/50 6문
추진력 : 226,850마력
속도 : 30노트 이상

H-40 B형
만재 배수량 : 68,906톤
전장 : 287m
전폭 : 39m
흘수선 : 9.8m
주포 : 16인치/50 8문
추진력 : 236,700마력
속도 : 30노트 이상

A형은 H-39의 속도와 배수량을 유지한 채 장갑을 늘린 것이다. 함포 제작 회사인 크루프사는 다른 무기의 주문량도 많았기 때문에 16인치 함포를 제작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주포가 6문으로 줄어든 A형 설계는 주포의 공급 부담을 덜어주었을 것이다.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추진 방식에 있었다.

A형 설계는 크기와 배수량이 H-39와 비슷하지만, H-39 이상의 속도를 내도록 하기 위해 더 많은 출력을 필요로 했다. 출력의 증가를 위해선 H-39의 3축 추진 대신, 4축 추진이 필요했다. 그러나 A형 설계의 전폭 내에서 4축 추진을 위한 디젤 엔진 배치는 불가능했다. 그러한 배치는 어뢰 방어 구획을 줄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추진 방식을 증기 터빈으로 바꾼다면 3축 추진으로도 필요한 출력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기관실의 길이가 길어지게 되고 따라서 기관실을 보호하기 위한 측면 장갑도 길어질 수밖에 없어서 배수량이 더욱 증가하게 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래서 결국 해결책으로 4축 추진을 채택하되 2축은 디젤 엔진으로 2축은 증기 터빈으로 돌리는 방법이 제시되었다.

디젤 엔진 기술의 발달로 인해 보다 강력하면서 공간은 더 적게 차지하는 디젤이 사용 가능했기 때문에 B형 설계에는 디젤 엔진 사용이 가능해졌지만, B형에도 A형과 같은 디젤 엔진과 증기 터빈의 혼성 배치가 사용된다.

H-40의 두 가지 설계안은 어뢰에 대한 방어력의 증가가 두드러진다. 그 주된 시도는 함내의 주요 부분들을 어뢰가 맞아 폭발하는 곳으로부터 최대한 먼 거리에 둔다는 것이다. 그 거리가 늘어날수록 방어력은 향상되겠지만 함의 전폭이 증가하게 된다. 이것은 함의 외벽으로부터 함 주요부의 마지막 방어를 담당하는 격벽까지 6m 이상의 공간을 주는 것으로 성취되었다.




4. H-41

1941년에 히틀러는 전함 H와 J를 즉시 건조할 것을 명했는데, H-40 설계안은 파기되고 모든 노력은 전함 H의 방어력 향상에 집중된다. 방어력 향상으로 인해 배수량이 계속 증가되었기 때문에 기동력을 희생시키는 것이 허용되었다.
항공기의 위협이 더욱 증가된 전쟁 중의 경험으로, 전함의 수평 방어(갑판 장갑)이 중요하다는 것이 인식되었다. 갑판 장갑의 증가는 함포전에 있어서도 방어력의 향상된다는 장점이 있었다.

모든 독일 군함들은 수심이 얕은 북해를 항해해야 하기 때문에 흘수선이 11미터 정도로 제한되었다. 흘수선 제한 내에서 H급 전함의 갑판 장갑을 늘리기 위해서는 다른 부분에서의 경량화가 필요했다. 연료 탑재량을 줄이는 것이 가장 큰 몫을 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최대 항속 거리가 25% 정도 줄어들었으며, 결국 독일 해군 최고 사령부는 수심이 깊은 대서양의 정박지 획득이 곧 가능하리라는 희망으로 경량화를 포기하고 흘수선 제한을 초과하는 것을 허용하게 된다.
이러한 설계 변경들로 인해 H-41의 제원은 다음과 같이 커진다.

다음은 H-41의 제원이다.
만재 배수량 : 74,799톤
전장 : 275m(흘수선)
전폭 : 39m(흘수선)
흘수선 : 12m(만재시)
주포 : 16.54인치/48 8문
부포 : 5.9인치/55 12문
대공포 : 4.1인치/65 16문, 37mm/83 16문, 20mm 32문
어뢰 : 21인치 발사관 6문
정찰기 : 4대
속도 : 28노트
추진력 : 최대 162,750마력
연료 : 11,810톤
항속거리 : 20노트로 20,000해리
장갑 : 상부 측면 장갑 7.8인치, 하부 측면 장갑 11.8인치, 상갑판 3.2인치, 하부 장갑 갑판 4.7인치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16인치/50 SKC/34는 16.54인치로 개조가 가능하다. H-41에서는 16.54인치 포가 장착된다. 크루프사 측에서는 구경의 변화는 미미한 것이며 H-39 용으로 연구되었던 탄약 관련 장비들로 직경이 늘어난 새 탄약들도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16인치 포탄을 특수한 장약을 사용하여 16.54인치 포에서 쏘게 되면 사거리의 증가가 기대되기도 했으나 16.54인치 포는 실제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H-41은 H-39보다 크지만 출력은 같아서 속도가 희생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해군 최고 사령부는 속도는 방어력보다 중요한 요소가 아니며 희생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린다.
해군 최고 사령부는 1941년 5월 27일 전함 비스마르크 격침으로 충격에 휩싸인다. 그리하여 비스마르크가 당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에서 H급 전함의 프로펠러와 방향타를 방어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게 된다. 그에 따른 설계 변경 중에는 프로펠러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폭약으로 방향타를 분리해 버릴 수 있는 옵션도 있었다. 같은 시기에, 해군 설계자들은 여전히 어뢰에 대한 방어력에 만족하지 못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들과 수중 폭발에 대한 방어로 H-41 설계를 개선하였다.


* 1941년 11월 15일의 H-41 개선안 *
만재 배수량 : 77,752톤
전장 : 282m(흘수선)
전폭 : 40.5m(흘수선)
흘수선 : 12m(만재시)

1942년 2월 8일, 알베르트 슈페어가 군수성 장관이 된 이후부터 H급의 설계 연구는 덜 중요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많은 설계 팀들이 새로운 U 보트 및 다른 프로젝트들을 위해 재배치되었다. 이후의 H-42, 43, 44 설계는 토프 제독 휘하의 새로운 그룹에 맡겨졌다.



5. H-42
1942년 후반, 히틀러는 해군 최고 사령부에 초대형 전함의 건조 가능성을 검토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모든 크기의 제한을 배제하고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하는 설계가 시작되었다.

1) 약 30노트의 속도
2) 항공 투하 폭탄과 대낙각 포탄을 막아낼 수 있는 갑판 장갑
3) 기뢰의 수중 폭발에 대한 방어력, 특히 기관부
4) 다른 부분의 설계상 특징과 부합하는 구경의 주포

H-42 설계안으로부터 초거대 전함으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주포는 H-41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반면, 장갑은 끊임없이 증가했으며 그에 따라 점점 더 무거워지는 함을 30노트 이상의 속도로 움직이기 위하여 필요한 추진력도 계속 증가했다. 전쟁을 통해 항공 투하 폭탄과 대낙각 함포탄에 대한 전함의 취약성이 드러나면서 갑판 장갑은 최고로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배수량이 증가함에 따라 크기도 증가하였다.


* H-42의 제원 *
만재 배수량 : 96,451톤
전장 : 304m(흘수선)
전폭 : 42m(흘수선)
흘수선 : 12.7m(만재시)
주포 : 16.54인치/48 8문
부포 : 5.9인치/55 12문
대공포 : 4.1인치/65 16문, 37mm/83 16문, 20mm 24문
어뢰 : 21인치 발사관 6문
정찰기 : 6대
속도 : 31.9노트(과부하시 32.2노트)
추진력 : 최대 266,300마력(과부하시 296,000마력)
항속거리 : 19노트로 20,000해리
장갑 : 측면 장갑 15인치, 갑판 장갑 총 13인치, 주요부의 함 외벽으로부터 주 장갑 격벽까지 7.62m의 어뢰 방어용 공간

추진 방식은 4축 추진으로 안쪽 2개의 축은 디젤 엔진이 바깥쪽 2개의 축은 증기 터빈이 담당한다.

1942년, 레더 제독은 히틀러에게 아무리 큰 전함이라도 곧 구시대의 것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그라프 체펠린과 같은 항공 모함 건조에 더 집중할 것을 건의한다. 히틀러는 거기에 동의했음에도 여전히 18인치나 24인치 혹은 그 이상의 함포를 검토할 것을 명한다. 히틀러는 바다 위에 떠 있는 그 어떤 것보다도 강력한 함선을 원했다.



6. H-43
1943년, H-43 설계안이 제시된다. H-42와 추진부는 동일하지만 함의 크기는 또 증가하였다. 기본적인 장갑 구조도 H-42와 동일했지만 어뢰 및 기뢰에 대한 방어가 추가되었다. 비스마르크와 티르피츠가 피해를 견디어 내는 능력은 상당했고, H-43 설계에서의 구획의 증가 및 전폭의 증가에 의한 어뢰 방어력 개선은 그 점을 토대로 한다.


* H-43의 제원 *
만재 배수량 : 118,104톤
전장 : 330m(흘수선)
전폭 : 48m(흘수선)
흘수선 : 12.8m(만재시)
주포 : 20인치 8문
부포 : 5.9인치/55 12문
대공포 : 4.1인치/65 16문, 37mm/83 16문, 20mm 40문
정찰기 : 6대
속도 : 31노트
나머지 제원은 H-42와 동일



7. H-44
마지막 설계안인 H-44의 특징은 어뢰에 대한 방어가 더욱 증가한다는 점이다. 해군 설계자들은 어뢰가 전함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된다고 느꼈고 그래서 어뢰 방어를 위해 전례가 없는 엄청난 조치들을 취한다. 그러한 추가된 대책으로 인해 H-44는 작약량이 늘어난 연합군의 신형 어뢰라 하더라도 여러 발을 연속적으로 맞고도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H-44를 무력화하기 위해서는 전함 야마토를 격침시켰을 때와 비슷한 연속적인 어뢰 명중이 필요했을 것이다.

흘수선 아래가 깊어짐에 따라 비접촉 근접 폭발의 위협이 추가로 제기되었다. 그것은 영국 소형 잠수함이 정박해 있는 전함 티르피츠를 기뢰로 공격하여 피해를 입혔던 것에 의해서였다.

갑판 장갑을 더 추가하여 공중 투하 폭탄에 대한 방어력을 더욱 높이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들은 영국 공군의 톨보이 폭탄에 전함 티르피츠가 격침되면서 좌절되었다. 톨보이 폭탄은 무게가 5443kg에 작약량이 2540kg이다. 설계자들은 그러한 엄청난 폭탄을 막아내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H급의 갑판 장갑 개선 작업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 H-44의 제원 *
만재 배수량 : 139,264톤
전장 : 345m(흘수선)
전폭 : 51.5m(흘수선)
흘수선 : 13.5m(만재시)
속도 : 30노트
나머지 제원은 H-43과 동일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지나가다가
밀리터리Rep 2008.01.17 20:47
리토리오 전함의 장갑구획에 대한 글인데 한글문서로 작업을 하여 올린다. 다음은 첨부파일이다.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지나가다가
밀리터리Rep 2008.01.17 20:45
리토리오 전함의 수중방어구획
리토리오 전함의 수중방어구획에 대한 글이다. 작성은 한글문서로 하였으며 포스팅은 안 하고 첨부파일로 올린다.
다음은 첨부파일이다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지나가다가
밀리터리Rep 2007.12.15 21:40

구 일본해군의 전함인 후소... 관제탑이 대단히 높다... 영어로 마스트라고 부른다.
마스트가 대단히 높은 것은 일본은 2차대전까지만 해도 변변한 레이더가 없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있기야 했지만 성능은 연합군의 레이더에 비해선 턱도 없이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가장 확실한 방법인 사람의 눈을 통해 적 항공기의 출현 여부, 내습해 오는 적기의 숫자 등을 파악하려 하였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사람이 더 빨리 관측하고 그 관측할 수 있는 범위가 더 넓어지도록 마스트가 점점 올라가게 된 것.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본해군은 전함의 개장시 마다, 마스트위에 또 다른 마스트를 올려 놓아 관측의 범위를 넓혔다. 이와 같은 마스트를 적층식 마스트, 파고다식 파스트라고 부른다. 태평양전쟁, 2차세계대전을 통틀어 적층식 마스트, 파고다식 마스트의 대명사는 일본전함 후소가 아닐까?.. 후소는 너무나도 마스트를 높이 올려 그 중심의 위태롭게까지 보이는 전함이다. 아뭏든, 이렇게 적층식, 파고다식의 마스트는 전령역할을 하는 일반병사만 죽어라~ 하고 마스트를 오르락 내리락하게 만들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본문출처: 본인작성
사진출처: http://blog.naver.com/duddn375/100045175339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지나가다가
독일이야기 2007.12.07 18:54
비스마르크와 샤른호르스트와의 장갑비교...

한글문서로 쓴 문서이다. 포스팅을 할까 생각을 해 보았으나, 귀차니즘의 발로로 포스팅은 안 하고 첨부파일만을 올리겠다.
다만 비스마르크와 샤른호르스트와의 장갑비교라고 해서 기대를 갖고 보진 마시길 바란다.

단지 장갑의 비교만을 하였을 뿐이니, 전문가적인 수준의 글은 절대 아님을 말 해둔다. 기대를 가지고 보았다가는 폭소연발의 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유념하길 바란다... 이상...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지나가다가
독일이야기 2007.12.07 10:48

비스마르크는 1941년 5월 브레스트港(베르겐港)에서, 전투순양함(CA) 프린츠오이겐과 라인연습을 발동, 작전에 참가하기 위해 브레스트港을 출발한다. 그리고, 1941년 5월 24일... 비스마르크는 영국전함 후드를 발견하고 적함과의 탄착거리를 재기 위해 후드를 향해 초탄 일제사를 퍼붓는데, 이 포탄이 정확히 후드의 화약고를 급습, 유폭을 일으킴과 동시에 후드를 한방에 날려보낸다. 비스마르크 외로이 단신으로 영국해군과의 맞붙는 역사적인 해전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
각설하고, 이 해전에서 프린츠 오이겐과 합류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비스마르크 혼자 혈혈단신으로 비스마르크를 사냥하러 나온 영국해군과 마딱뜨려 선전을 펼쳤으나, 결국엔 비스마르크의 敗北.

이때, 포격전中 비스마르크호에 명중한 영국의 주포는 직경 13 cm에서 40 cm에 이르는 다양한 포탄이었는데, 역사가들은 400발에서 600발 정도가 명중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이때, 영국주력전함들이 비스마르크를 향해 발포한 포탄의 수량만도 3000발 가량된다. 그리고, 이 3000발중에서, 400 ~ 600발정도가 명중한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럼에도 명중탄을 맞고 선체에 구멍이 뻥~ 뚤린구멍은 3개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널리 알려진바로는 비스마르크는 갑판장갑이 그 다지 두텁지 않고 함체현측에는 무지막지하게 두터운 장갑대를 두르고, 내측에는 수밀구획 격벽을 설치한 1차대전式 전함의 장갑구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사실, 이것이 1차대전式인지? 구식인지?의 비판은 수 없이 있어 왔으나, 아직 확실치는 않다.)

이 때문일지는 몰라도 수 많은 명중탄(포탄,어뢰)이 비스마르크를 정타하였음에도 내부의 장갑방호벽까지는 꿰뚫지는 못한것으로 판단된다. 고로, 비스마르크가 명중탄을 맞고도 직접적으로 그 영향으로 침몰 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물론, 현측장갑에는 수 많은 공격을 받은 흔적을 찾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상부구조물의 피해가 막심해지면서, 더 이상의 정상운항이 어렵게 느끼고 함을 자침을 시키려는 시도를 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그 때, 결정적으로, 영국 항모에서 발진한 스워드 피시가 발사한 어뢰가 비스마르크의 함미부분에 정확히 맞으면서, 조타 키가 마비되었으며, 이로서, 직진운항만 가능한 상황이 되었고, 게다가, 비스마르크의 항진속도 역시 눈에 띠게 떨어졌다. 영국해군에겐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직진만 하는 고정목표물에 불과하였을테고, 마지막에 스워드피시가 날린 어뢰를 맞고 공중으로 들썩이다가 그 후부터는 서서히 침몰하기 시작하였다.

 

비스마르크는 상부장갑(갑판장갑)이 취약해서 영국해군 함정들에 수없이 두들겨 맞아 상부구조물의 피해가 막심했던것은 사실이다.

 

고로, 이를 토대로 본다면, 독일해군이 비스마르크를 자침시키려는 찰라에, 영국해군이 결정적 타격을 입힌것으로 보여진다. (결국, 비스마르크의 경우에는 이미 독일해군이 자침 결정을 내리지 않더라도 당시의 함의 상태는 영국해군의 집중적인 공격에 거의 마비되다 시피한 상태였고, 전투함으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린 바다에 떠 있는 구조물(언젠가는 바다속으로 가라앉을)에 불과했으므로, 영국해군에 의한 침몰은 아니더라도, 사실상의 자침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한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나의 생각에 불과하지만.....


출처: 본인작성....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지나가다가
독일이야기 2007.12.07 10:46

비스마르크級전함은 1910~1912년사이에 건조된 바이에른 전함의 디자인에 기초하고 있다.

바이에른級전함도 1차대전때에는 강력한 장갑을 구성하고 있었으나, 항공기의 발달이 이뤄지면서 항공공격에 대비한 장갑의 선행이 그 다지 이루어지지 않아 비약적인 항공기의 발달수준에 못 미치는 장갑을 구성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즉, 장갑수준이 답보상태였다는 것.

 

그럼에도, 바이에른급 전함은 항공공격에 대비한 장갑구조를 나름대로 구축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함체의 장갑접합부 90%가량을 용접방법으로 이뤄졌으며,방수를 위해 함저(배의 밑 바닥)는 이중구조를 띠었다는 점이다.

 

암튼, 비스마르크는 바이에른級전함을 기반으로 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상당부문 바이에른級 전함과 유사한 구조를 띠고 있었다.

 

장갑구조도 그 한 예일것이다. 바이에른級전함이 활동한 시대는 연료가 석탄으로 그 자체가 어떤 방어자재의 역할을 했으나 연료가 중유로 바뀐 이후에는 그것은 불가능 해졌으며, 비스마르크의 경우, 결국 함저를 4 구획으로 나눠 45mm의 장갑을 늘리는것으로 만족을 해야만 했다.

 

즉, 석탄에서 중유로 연료가 바뀐 지금은 석탄자재창고가 방어자재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뜻. 함선의 연료구성 바뀜이 장갑구성 자체를 변화시킨 좋은 예이다.

 

비스마르크의 장갑구조는 1차대전時에 건조하여 사용되었던 HMS.워스파이트, 1,2차대전 양차대전에 모두 사용되었던 HMS.후드처럼 1차대전형 장갑구조를 가지고 있는 함이다. 1차대전형 장갑구조를 보면, 함체의 현측으로 포탄이 들어올 경우 일단 외부의 현측장갑(수직장갑)으로 방어하고, 만약 현측장갑(수직장갑)이 뚫릴 경우 내부의 경사진 장갑이 2차적으로 포탄을 방어하는 형태의 장갑구조이다. 현측방어로만 보면 2중의 방어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원거리에서 고각으로 쏘아 대낙각으로 떨어지는 포탄을 막아내는 갑판장갑(수평장갑)의 경우 비교적 얇은 층을 갖는 3층의 장갑구조를 가지고 있어 그외에는 별 달리 대낙각으로 떨어지는 포탄을 방어 할 수 있는 방어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1차대전형 장갑의 특징은 터틀백식이라는데 있다. 터틀은 거북이... 백은 등. 즉, 거북이 등처럼 갑판형상이 묘사된다 하여 터틀백이라고 한다.

 

이 터틀백식은 갑판 장갑이 현측에서 경사를 이루다가 함 중앙부에서 수평을 이루는 것이 거북등과 비슷하다고 해서 터틀데크(TurtleDeck,거북갑판) 혹은 터틀백식 장갑(거북등장갑)이라고 부른다.

 

비스마르크의 갑판장갑은 제1갑판이 25mm, 주요 갑판부위가 80mm로 합계 105mm.


현측장갑 부위의 경사부는 제1갑판이 50mm 주 갑판부위가 110mm로 역시 큰각으로 떨어지는 포탄의 방어에는 부족하다통상적으로 전함의 결전거리를 25,000m~ 28,000m(25킬로에서 28킬로 사이..)라 상정하고 함포를 주고 받을 때, 함포탄은 대부분 약 25도 이상의 낙각(落角)으로 파고드는 장거리 포격이라는 계산이 나오며, 이에 비스마르크艦의 방어구조는 불리했다고 봐야한다. 수평장갑(갑판장갑)의 방어구조가 취약했기 때문이다.

 

현측방어에 있어서도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실정이다. 흘수선(水線)대 부근만 320mm의 장갑으로 보호되고 있을 뿐, 그 위는 145mm로 보호되어 침수에 의해 흘수선이 내려앉았을 경우 유리한 근거리 전으로 들어갔다고 해도 145mm의 장갑으로만 현측을 보호해야만 하는 경우가 발생하였기 때문에 방어적인 측면에서는 그다지 합격점을 줄 수는 없는 것이다.

 

특히, 흘수선대 밑의 방어장갑(수중방어구획)은 170mm로 수중탄(수중으로 떨어진 포격)의 공격이나 적이 발사한 어뢰의 방어에는 절대적으로 취약한 문제를 드러냈기 때문에 비스마르크의 장갑구조는 전체적으로 불리했다고 봐도 되지 않을 까? 하고 생각 해 본다..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지나가다가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