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야기 2008.02.09 10:02
舊日本軍, 글라이더 운반 전차 "So-Ra"와 "Ku-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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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은 발터 크리스티라는 천재적인 전차 디자이너에 의해 혁신적으로 전차의 기술을 끌어 올림과 동시에 깜짝 놀랄만한 비행전차를 선 보인바 있다. 당시의 크리스티 비행전차와 마찬가지로 일본군도 비행전차를 제작한 바 있는데, 그것을 제작하게 된 동기는 일본군의 작전지역이 워낙 광 범위하다보니, 지상군에 대한 지원 장비를 해상으로 운송을 하려면 시일이 너무 걸리기 때문에 이를 타개하고자, 공중으로 지원 장비를 공수하여 작전지역에 떨궈주면 일본 지상군들이 알아서 지원 장비를 챙긴 다음에 작전에 임할 수 있지 않느냐?는 단순한 발상에서 기인하여 시작된 것이다. 1943년도에 첫 모크업 전차인 "So-Ra"가 제작되었으며, 이것을 포탑을 제거 한 상태로 비행시험까지는 무사히 마쳤으나, 정상적으로 포탑을 탑재하고 비행을 하려 하였으나, 글라이더가 유지 할 수 있는 중량을 초과하는 바람에 포탑을 탑재한 시험은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이 모크업 전차는 본격적인 양산도 못 해본채 전황의 악화로 인해 작전의 범위가 급속도 축소되어 쓸 용도가 없어지는 바람에 모크업 전차로 남게 되었다.


전체적인 제원

승무인원: 2명
전체길이: 전차: 4.07m, 비행날개: 12.8m
전체너비: 전차: 1.44m, 비행날개: 22.0m
전체높이: 전차: 1.89m, 비행날개: 3.00m

전체중량: 전차: 2.9 tons, 비행날개: 4.2 tons

최고속도: 43km/h
엔진형식: Gasoline Engine 50 PS/2400 rpm
무장형식: 37 mm x 1 or MG x 1 or flamethrower x 1

출처: 글은 본인작성, 제원은 http://www3.plala.or.jp/takihome/So-Ra.html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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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8.01.17 12:33
舊일본해군, 해밀턴스탠다드 프로펠러의 국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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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턴 스탠다드 프로펠러의 일본 국산화(라이센스 생산)에는 역시 당시 항공본부는 1932년 9월 항공본부는 미래의 항공기에 필요한 전 금속제 프로펠러를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 국내에서 생산 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는것으로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일본의 스미토모(住友)금속이 해군의 지원아래에서 금속제 프로펠러를 일관생산 할 의사가 있는지를 조사하였고, 현재로선 해군항공대만의 수요로는 스미토모금속의 채산성이 맞지 않기때문에 스미토모금속이 선뜻 사업에 뛰어들 수 없없다.  그래서, 스미토모금속의 절충안인 프로펠러 생산분의 일부를 육군에도 납품을 할 수 있게하는 스미토모 금속의 요구를 받아들여 상호간의 "비행기용 프로펠러 제작통일에 관한 각서"를 교환하여 프로펠러의 국산화(냉정히 말하면, 단순 국내생산이다) 단계를 내 딪게 된다. 그 당시의 해밀턴 스탠다드의 프로펠러 제조 및 판매권은 나카지마(中島)社가 보유하고 있었는데, 나카지마社는 프로펠러 제작에 필요한 소재 및 공작기계를 거의 미국으로 부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던 반면에 일본 국내에서는 단순 노임 가공만을 하는 상태였다. 원 재료 부터 완제품까지 모든 공정의 국산화 방침에 따라 스미토모 금속은 나카지마로부터 해밀턴-스탠다드 프로펠러 제조 및 판매권을 매수하였고 연이어 자사 공장에 생산라인을 구축하게 된다. 일본 국산 프로펠러 개발을 위한 단계적 수순이 척척 진행되었던 것이다. 결국에는 쇼와(昭和) 8년(1933년) 4월 15일 일본의 완전 국산화 프로펠러 생산라인이 가동을 시작하였고, 연간 300개의 생산 능력을 보유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의 프로펠러 수준은 종전이 될때까지 그 수준에서  제자리 걸음을 하게 된다.


첫번째 이유
는, 일본 해군, 일본 육군 항공대 관료들이 국내에서 라이센스한 해밀턴 스탠다드의 성능에 만족하여 안주하여, 마르고 닳도록 초기 생산형 프로펠러만 꾸준히 우려 먹었다는 것
.
두번째 이유는, 신형 프로펠러를 개발 할 때 필요한 프로펠러 진동을 감지하는 방식이 1939년에 해밀턴 스탠다드社의 연구원에 의하여 개발되었으나, 1939년이라면 일본과 미국과의 관계가 좋지 않을때이니 만큼 그런 기술을 들여오는 것이 무리였다는 점.

 

이 두가지의 요인이 크게 작용하여 종전이 될 때까지 일본의 프로펠러 기술은 답보상태를 걷게 되었으며, 항공기엔진의 출력을 극한의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프로펠러의 개발은 요원했던 것이다.

출처: 본인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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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8.01.16 13:43
특공병기(유도): 空對地 미사일(イ号一型 甲/乙 空對地 誘導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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舊 日本海軍, 空對地 미사일(イ号一型 甲/乙 空對地 誘導彈)
미쓰비시중공업三菱 이호일형 갑 공대지유도탄 イ号一型甲空対地誘導弾 (키-147,キ147)

미쓰비시중공업(三菱)이 쇼와 19년(昭和19年,1944년)에 제작한 공대지 무선 유도탄이다. 이것은 모기(母機)가 되는 함상기가 고도 700 ~ 1000m상공에서 투하를 하여 미사일자체가 스스로 목표물을 찾아가서 폭발을 하고, 모기(母機)는 이탈을 하는 공격법을 가진 무선유도식 공대지 미사일이다. 쇼와19년(1944년) 10월에 첫 시제 1호기가 완성이 되었으며, 같은 해 10기가 추가로 제작이 되었다. 그러나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어서 무선유도의 유도장치의 결함이 자주 발생하는 바람에 실용화가 안되어 결국, 실전에 배치되지는 못하고 종전을 맞이하였다.

미사일전체길이:5.77m
미사일전체너비:3.60m
미사일전체높이:1.55m
미사일전투중량:1,400kg
미사일최대속도:550km/h
미사일최대추력:特呂一号三型液体ロケット(推力240kg)×1
미사일연소시간:燃焼時間75秒
미사일탄두작약:800kg
===================
카와사키중공업(川崎) 이호일형 을 공대지유도탄 イ号一型乙空対地誘導弾 (키-148, キ148)
イ号一型甲空對地誘導彈과 동시에 개발이 추진된 버전으로 イ号一型甲空對地誘導彈의 완성이 되는 시점에서 거의 같이 완성이 되었다.
실제사격 테스트에서는 イ号一型甲空對地誘導彈와는 달리 순조롭게 진행되었는데, 실제 데이타를 입력하고 사격을 한 결과 인근의 온천지붕을 뚫고 지반에서 폭발을 하였다. 이 때문에 에로폭탄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명중률은 75%정도 되는 높은 적중률을 기록하였으며, 그러나, 대량양산을 앞두고 전황이 악화되는 바람에 결국은 생산계획이 백지화되고 종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미사일전체길이:4.09m
미사일전체너비:2.60m
미사일전체높이:0.90m
미사일자체중량:550kg
미사일전투중량:680kg
미사일동력형식:特呂一号二型液体ロケット
미사일추진동력:(推力150kg)×1
미사일연소시간:80秒
미사일탄두작약:300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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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8.01.16 00:34
특공병기(수중): 인간자폭어뢰 회천 回天(かいてん)

일본은 1944년말 전황이 악화되자 이를 만회하려고 갖은 방법을 동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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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카제 자살특공이 대표적인데, 카미카제(神風)가 항공을 통한 자살공격이었다면 수중을 통한 자살공격은 카이텐이다. 일본은 카미카제에서 힌트를 얻어 수중자살공격 체계인 카이텐을 고육지책으로 강구하게 되고 이를 추진한다. 카이텐의 뜻은 회천. 영어명은 Turning of the Heavens이다.

카이텐은 두 종류의  자살특공어뢰가 존재한다. 하나는 1인용, 다른 하나는 2인용의 어뢰이다. 기본적으로 자살특공어뢰를 타고 목표함에 유도한 후 조종수를 탈출하게 한다고 하지만, 조종수를 조종석에 앉힌후 조종석을 밖에서 잠그어 탈출이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1형                                                   2형
조종수: 1명                                       조종수: 2명
전장: 48'4"                                        전장: 55'2"
전폭:  3'3"                                         전폭:  4'5"
전고:  3'3"                                         전고:  4'5"
중량: 8.3 tons                                    중량: 18.4 tons
추진: 2 Type-93 torpedo motors          추진: 1 Type-6 torpedo motor  
속도: 30 knots                                   속도: 40 knots
항속거리: 78 miles @ 12 knots            항속거리:  83 miles @ 20 knots
폭탄중량: 3,300lbs                             폭탄중량: 3,300l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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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8.01.16 00:30
특공병기(항공), 특수폭격기(特殊爆擊機 劍(つるぎ, 쯔루키, キ-115))
나카지마 제작의 상륙정 폭격기 「儉(つるぎ, キ-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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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와 20년(1945년) 1월」 일본 육군은 나카지마 항공제작소에 특수공격및 폭격기 가능한 기체의 개발을 지시하였다. 이 기체의 재료는 일본의 군수산업이 전반적으로 자재부족으로 허덕이던 판에 간단하게 강관·목재등으로 만들어진 간략한 구조의 간이형 기체였다.랜딩기어는 인입식이 아니며, 폭격기의 발진 후에 지상으로 이탈 시키는 방안을 채택하였다. 폭격기가 랜딩기어를 달고 폭격을 하기에는 기동성도 떨어지고, 거추장스럽다는 주장과, 랜딩기어 측면에 더 많은 폭탄을 탑재하기 위함이었다.

이 기체는 처음부터 특공기로서 사용되기 위해 개발 된기체가 아니었으며,일본해군 관계자의 요구에 의해서 특수공격및 폭격기로 개조된것이었다고 한다. 일본육군용 만들어진 기체이지만, 일본육군용 폭격기의 임무는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채 일본해군용의 기체로 이관되어 넘어가게 된다. 일본해군은 이 기체의 성능에 그 다지 만족을 하지 않아, 다음 개수에는 이 같은 요구사항을 시행하도록 전달하였다.

Ⅰ:조정석의 의장방식과 엔진의 위치를 해군 형식으로 변경을 할 것.
Ⅱ:주익면적을 1㎡ 증대하여 착륙과 이륙할때의 조종성능 개선을 할 것.
    이륙촉진장치를 추가하여 이착륙의 성능을 개선 할 것. 
Ⅲ:좌석위치를 변경하며, 전방시계를 확보하여 개선 시킬 것.
Ⅳ:폭격병장의 의장을 해군용으로 변경을 할 것.


기본성능은 일본육군의 劍(つるぎ, キ-115)과는 다를바 없으나 일본 육군과 해군과의 알력싸움으로 인해 불필요한 이전투구를 한 끝에 기체의 사양이 자주 변경되었던 기체이다.

해군은 이 기체의 대폭적인 개조를 원하였지만, 대폭적인 개조반대론자의 벽에 부딪치곤 하였다.
개조반대론자들은 이 기체가 원래 폭격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개조되었기 때문에 또 다른 개조를 한다는 것은 시간낭비이며, 이 기체는 항속거리도 길기 때문에 항속거리가 짧은 다른 특공기와는 달리 미군에 대한 효과적인 폭격임무가 가능하다고 하여 기체에 대한 개조반대를 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해군은 ㅖ정대로 이 劍(つるぎ, キ-115)기체에 대한 개조성능 실험을 나카지마 항공제작소에서 가졌으며, 양산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양산은 늦어졌으며, 종전후에 약 1기만이 완성되었을 뿐이다.

계획상으로는 약 1080기를 생산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추측하건대, 이 기체는 원래계획상으로 양산을 하였더라도 실전에는 사용이 가능하지 못 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건 단기간의 세월동안 기체의 개수를 통해 실전에 투입한다는 것이 쉽지많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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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8.01.15 12:54
특공병기(수상): 재활용 어뢰정 (特攻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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特攻筏 간이 어뢰정
쇼와 18년(1943년)말기, 일본의 전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일본의 카미카제 공격으로 쓸만한 항공기도 부족하고, 미해군의 의한 수상함들의 침몰로 어뢰발사관도 부족 해 지자, 일본의 구레 해군공창 어뢰 실험부에서는 남아도는 어뢰의 사용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심사숙고하다가 남아도는 어뢰로 적군의 함정에 다가가 어뢰공격을 하는 형식의 공격방식을 제안하기 이른다. 그러나, 적함에 어떻게 다가 가느냐가 문제였는데, 개전 전보다 열악해진 공업력은 더 이상 수상함을 만들어 내기 불가능하였고, 결국은 어뢰정을 간이로 만들어 여기에 2발의 어뢰를 양현에 탑재하고 적함에 다가가 어뢰로 뇌격을 하는 공격방식을 채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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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짧은 사정거리의 어뢰를 탑재 하였을 경우에는 적함 가까이까지 다가가야 했기 때문에 적군의 초계시스템에 발각되어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장거리의 어뢰를 탑재하였을 경우에만 효과를 보이는 공격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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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어뢰정은 평평한 목재로 된 널판지에 수상모타를 단 형태였으며, 양현에는 각각 1기씩의 어뢰를 장비하고 있었다. 최고속도는 12
노트정도. 그러나 운용상에도 난점이 없지않아 있는데, 그것은 어뢰의 발사시, 어뢰가 정확히 발사되지 않고 다운트림이 걸리면 어뢰의 프로펠라가 목재로 된 널판지를 파괴하여 탑승원에게도 피해를 입히는 일이 종종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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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8.01.15 12:15
특공병기(수상): 자폭 고속정 신양神洋(しんりゅ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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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승의 1형 자폭고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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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승의 2형 자폭고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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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요는 일본해군이 수상특공병기로는 유일하게 채용되어 운용되었던 병기로서, 일본해군 내부에서는 마르욘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자폭 고속정 신요는 목재로 만든, 정확히 말하면 베니어 합판으로 만들어졌으며 가벼운 목재 고속 선박에 토요타 자동차用 80마력 엔진 1기를 장착하였고, 목재 고속정의 앞 부분에다가는 250kg의 폭탄을 탑재하여 미 해군의 군함등에 육탄공격을 하는 특공병기이다. 이 자폭고속정은 가벼운 베니어 합판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수상항주時 기동성은 매우 좋았으며, 이 신요 자폭고속정에의 종류에는 한명이 탑승하는 1형과 두사람이 탑승하는 2형이 존재하는데 1인승의 1형은 최고속도가 33노트이고, 2인승인 2형의 최고속도는 35노트이다.

신요의 공격방식은 주로 야간에 기습을 하는 단순한 공격형태를 띠고 있다. 미해군 함대가 모여있는 함대진영에 밤 늦게 엔진을 끄고 흘러 들어가 가까운 사정거리까지 접근 한 다음, 집단적으로 기습을 하여 공격을 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하였다. 미해군의 전함의 경우에는 4 ~ 6대의 신요 자폭고속정이 집단으로 공격하는 형식을 띠었으며, 미해군의 구축함을 격침하기 위해서는 3 ~ 4척의 신요 자폭고속정이 집단으로 공격하는 형식을 띠었다. 종전시까지 약 6,200척이 건조되었다.

[진양]이라고 하는 이름은 메이지 유신의 군함의 이름으로부터 채용되었으며, "적함을 격침하고 태평양을 뒤흔든다"라고 하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수상함의 가미가제라고나 할까?..

선박형태: 자폭용 고속정
선박엔진: 토요타 자동차 엔진용 80마력엔진 1기
전체길이: 5.10m
전체중량: 1.40ton
전체너비: 1형:1.67m  2형:1.86m
폭탄탑재: 1형: 250kg 2형: 250kg
탑재무장: 1형:120mm로켓탄 2발. 2형:13mm기관총 1정탑재
최고속도: 1형: 33노트  2형: 35노트
공격형태: 야음을 틈 탄 집단적 기습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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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8.01.15 12:07
특공병기(수중): 자기기뢰 설치 잠항정 진해震海(しんかい)
震海(しんかい) - 時限式 機雷(磁氣吸着爆雷)設置 攻擊潛航艇

震海(しんかい)는 구 일본제국해군의 특수 잠항정이다. 이 잠항정은 시한폭발식 자기 흡착 기뢰를 함수에 장착하고 잠수하여 적함에게  다가가 적한의 선저(배 밑부분)에 자기 흡착기뢰를 설치하여 공격을 하는 목적으로 설계되었다.
시한식 자기 흡착기뢰를 설치한 잠항정은 유효거리까지 빠져나온 후 무선조정을 통해 자기 흡착기뢰를 폭발시켜 적함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게끔 설계되었다. 그러나, 한번 나가 여러 적함에게 이런 공격을 다수 실행하기 위해선 기뢰의 수납능력이 뛰어나야 하는데, 기뢰의 수납능력이 떨어지면서 공격이 일회성으로 끝나고, 호위 잠수함 없이 단독으로 공격을 하는것이 매우 곤란하다하여 제식 채용은 안되었으며 따라서 건조대수는 매우 적은 실정이다.

공격방식만 놓고보면 실용적인 최초의 잠수함인 미국의 헌리호와 같은 공격방식이라 볼 수 있다.

전체길이:12.5m
전체너비:1.65m
전체직경:1.2m 
수중배수량:11.5t
수중속도:9kt 
항속거리:불명
추진체계:20마력짜리 전동기
최대출력:20마력
연료체계:축전지
무장병장:時限式機雷(磁氣吸着爆雷)(炸藥1,200kg)


출처: 본인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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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8.01.15 12:04
특공병기(수중): 유익 잠항정 해룡 海龍(かいりゅう)
특수잠항정(날개달린 잠항정, 有翼特殊潛航庭, 特殊潜航艇 海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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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명칭인 “SS金物”이라고 지정되었던 잠항정이다. 2인승의 잠항정으로 98식 450mm어뢰를 양현에 1기씩, 총 1기를 장비하였으며, 이를 이용하여 침투공격을 감행했던 잠항정이기도 하다.
잠항정의 조종 장치는 쌍발 폭격기 "銀河"의 것을 유용하여 조종성이 비행기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잠항정 양쪽에 날개가 달려 있어서, 날개의 상하조절을 통해 잠항의 상하조절을 하였으므로 다른 잠수함들이 부력탱크에 의해 잠수, 항행을 하는 것과 비교하였을 때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 즉, 이 "海龍" 잠항정은 부력탱크가 필요없이 잠항時 상하 수심조절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항공기"銀河"의 조종 장치를 유용한 덕분에 잠항정의 조종 장치로 침로를 쉽게 운전 할 수 있었다. 또한, 날개가 날린 덕분에 기동성은 다른 보통의 잠수함과 비교하여 뛰어난 편에 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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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항주時에는 디젤엔진을 돌려 항주를 하였으며, 수중에 항행을 할 때에는 디젤을 돌려 얻은 전력을 축적한 축전지와 모터를 이용하였다.

"海龍" 잠항정은 본토 결전용의 무기로 계획, 개발 된 것으로 이 "海龍" 잠항정은 전기型은 수중속도의 향상을 위해 잠항정의 함수 부분이 매우 날카롭게 생긴 반면에, 후기型은 함수 부분이 유선형으로 매끄럽게 처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前期형의 잠항정 함수부분이 날카롭게 만들어진 것은 어뢰를 다 사용하고 최후의 수단으로 육탄돌격을 해서 적함에게 damage를 주기 위함이었다. "海龍" 잠항정은 본토 비밀기지 발진用으로서 운용될 계획이었지만 실전에서의 사용은 거의 전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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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8.01.15 11:59
특공병기(수중) - 갑표적 정형 蛟龍(こうりゅ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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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標的(特殊潜航艇 ,특무잠항정) 丁型(蛟龍)전체 건조수가 115척이며 배수량 60.30톤, 전체길이 26.25m, 전체직경 2.04m에 수상150마력/수중500마력짜리 디젤엔진 1기를 채용하였으며, 역시 1축으로 된 이중반전 프로펠러를 돌려 추진을 하였다. 항속거리는 수상에서는 8노트를 기준으로 하여 1000해리를 갈 수 있었고 수중에서는 8노트를 기중으로하여 125해리를 항행 할 수 있었다. 안전잠항심도는 마찬가지로 100m이며, 2개의 어뢰발사관을 통해 450mm어뢰 2기를 발사 운용 할 수 있었다. 최고속도는 수중에서 19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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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標的(特殊潛航艇)·정형(蛟龍)

 정식명칭    甲標的(特殊潛航艇)·정형(蛟龍)
 건조대수  115척
 총배수량   60.3톤(수중)
 전체길이    26.25m
 전체직경    2.04m
 동력기관    디젤 1기 
 동력추진  1축
 동력출력    150 마력(수상)/500 마력(수중)
 계획속력   8 노트(수상)/19.0 노트(수중)
 항속속력  8 노트로 1000리(수상)/2.5 노트로 125리(수중)
 승무인원    5명
 안전심도   100m
 공격무장    45센치 어뢰 발사관 2기(탑재뢰수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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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8.01.15 11:56

甲標的(特殊潜航艇 ,특수잠항정)은  태평양전쟁 당시 미드웨이 해전을 기점으로 미 해군에게 밀리던 판도를 순식간에 뒤엎을 생각으로 만들어진 특공 잠항 폭파무기이다. 이 甲標的(特殊潜航艇 ,특수잠항정) 甲型 과 丁型(蛟龍)으로 나누어져 버전이 존재하는데, 이 무기는 미 해군의 주력함대 진영에 몰래 잠입하여 장착 한 2기의 4500mm 어뢰를 소진하여 공격 한 후 자폭공격을 하는 공격방식을 채택하는 2인승의 소형 특무잠항정으로 볼 수 있다.  배수량이 1만톤이 넘는 치토세, 치요다급 함정을 모함으로 하여 특무잠항정이 위 함정에서 운용되었다. 이 같은 소형 특무잠항정들은 전쟁의 대세가 기울어 가는 것을 느낀 일본군이 일본에 상륙 할 미군에게 큰 타격을 줄 목적으로 고안되어진 본토결전용 특공무기이며, 이를 甲標的(特殊潜航艇 ,특무잠항정) 甲型 이라 부른다. 그리고 원양에서의 공격을 목표로 제작 된 것이 甲標的(特殊潜航艇 ,특무잠항정) 丁型(蛟用)으로 甲型보다 승무인원이 3명이 늘어난 5명이 탑승한다.

아래는 甲標的 丁型(蛟龍)의 特殊潛航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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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標的(特殊潜航艇 ,특무잠항정) 甲型은 시제 잠항정을 제외하고 36척이 건조되었으며 배수량이 46톤, 전체길이 23.90m, 전체직경 1.85m에 600마력 출력을 내는 전동기 1기를 주기관으로 1축의 이중반전 프로펠러로 추진되어지며, 최고속도가 19.0knot, 항속거리는 수중에서 6노트로 8해리를 갈 수 있을정도이며 안전잠항심도는 100m, 그리고 2기의 어뢰발사관을 통해 450mm어뢰 2기를 발사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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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8.01.15 11:52
특공병기(수중): 자폭 잠수구 복룡 伏龍(ふくりゅ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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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류는 적(미군)의 상륙을 저지 할 목적으로 개발 된 특공병기이다.
오랫동안 잠수 할 수 있는 산소통을 맨 잠수부가 길다란 죽창 끝에 폭발력이 강한 접촉기뢰를 매달고 적(미군)의 상륙정이 해안가에 당도하기 직전에 상륙정의 하부에 접촉기뢰를 갖다대어 폭발을 일으켜 상륙정을 수장시키는 용도로 쓰이는 무기체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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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복을 입은 잠수구들이 10명을 한 조로 편성하여 작전을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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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촉기뢰(기계수뢰)를 매단 길이 2미터의 뾰족한 봉으로 적 함선의 선저(배 밑바닥)를 찔러 접촉기뢰를 발화, 적 함선을 격침시키는 비장한 결의를 가진 특공대중에서도 특공적인 병기이다.
그러나 실전에서는 잠수부들이 상륙정에 다가서기 위해서 접근하다가 상륙정에 치여 사망하는 일이 다수 발생하여 이 특공병기의 활용도는 극히 낮은 편에 속하였다.

출처: 본인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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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8.01.02 00:28
특공병기(수중): 수중선회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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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유럽에서의 연합군과 독일의 해전양상을 참조하여 대규모의 함정을 동원하지도 않고서, 대공방어를 수행 할 수 있는 묘안을 떠올리게 된다. 당시 일본의 공업력도 한계상황에 다다르고 있던지라 공업력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 범위에서 적군 항공기에 대한 대공방어를 수행 할 수 있는 수중에 잠겨서 항행하는 반잠수형의 수중선회대공포탑을 고안하게 된다.
이것은 그들의 당시 생각으로는 피해를 크기가 작기 때문에 연합군 항공기의 공격을 어렵게 하면서도 연합군 항공기를 묶어놀수 있는 효과를 발휘 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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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회포탑은 몇 개의 대공 기관총을 장비하며, 10명 이내의 소수의 인원에 의해서 반잠수형태의 부표함정으로 조종되어 함대 근거지혹은 전진기지등지에 아군의 함선을 둘러싸며 아군의 함정과 같은 속도로 주위를 호위하며 전진이 가능 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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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나이더·프로펠라에 의해서 좌우 전후 어느 방향에도 자유롭게 조종 된다.이 슈나이더·프로펠라는 전기 모터로 조종되지만, 그 원동력은 디젤엔진에 의해서 축전지에 저축할 수 있었던 전력을 이용한다.전신실, 전망거울, 수중청음기, 수중 발신기등의 통신설비는 물론 갖춰져 있고, 자물쇠를 내려 고정시켜 각 포탑간에 잠수함 그물을 쳐 잠수함의 침입을 막을 수도 있게 되어 있다. 「슈나이더 프로펠라」는, 「포이트 슈나이더 프로펠러(V.S.P)」이라고도 표기되는 추진 방식으로, 프로펠라의 회전 방향을 바꾸면, 추진 방향이 그대로 바뀌어서, 방향키가 필요하지 않고로 회전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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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본군이 고안했던 수중이동포탑은 실전에 쓰이지는 못하였으며, 개발직전에 일본이 패망하여 계획자체가 흐지부지되었다. 하지만, 계획이 흐지부지되기는 하였으나, 실전에서의 효과가 있고 없고를 떠나, 신선한 느낌을 주기에는 충분하였다. 어찌되었든, 결국 페이퍼 플랜으로 끝난 계획임은 틀림없다.

출처: 본인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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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8.01.02 00:22
특공병기(항공): 공중 낙하 토치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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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부대는 근대전의 인기이다.그러나 그 강하에 임하고, 공중으로부터, 지상으로부터, 당연히적 맹 반격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을 격퇴하기 위해서 출현한 것이 이 공중 토치카이다. 이것은 대형의 수송기로부터 낙하되어 개산 후 공중에 떠 있는 동안은 적기를 격퇴, 또는 아군 강하 부대를 보호해, 착륙 후는 토치카가 되어 아군을 보호한다. 쉽게말하면, 강하낙하산부대+토치카차량의 임무를 합성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강하 부대의 위기는 착륙 후부터 공격에 옮기는 순간에 있으므로,이전의 아군 원호를 인수하여,토치카차량에 태운후 바퀴가 달려있는 그 주행성을 이용하여 이동 군사지역까지 안전하게 이송을 한후 목표물을 요격할 수 있도록 하게 지원해준다. 이 공중 토치카는 강철혹은 강화목에 만들어져 표면은 충분히 장갑 되어 있다.기동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움직이면서 지상토치카의 역할도 완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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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하여 지상에 착지 할 때의 충격을 흡수하기 위하여, 유압완충기를 가진 충격흡수장치를 아래에 달고있으며, 착지 후에는 자주적인 이동이 가능하도록 50마력의 전동기를 달고 있다. 무선통신을 하기 위한 단파라디오 장비를 하고 있고, 기관총보다 강력한 위력의 30mm쌍열 기관포를 장비하고 있다. 또한 공중토치카의 방호력은 강화유리와 강철등으로 이루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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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은 페이퍼 플랜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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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8.01.02 00:11
특공병기(항공): 공중전차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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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7.12.28 23:53
舊 일본군의 원폭개발계획

▣ 끝나지 않은 비밀 프로젝트, 일본의 원폭개발

* 일급비밀!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원폭개발
미드웨이 해전에서의 패배 후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일본 군부는 전세를 단번에 역전시킬 원폭을 개발하기로 하고 이를 동경대 이화학연구소에 지시한다. 당시 핵물리학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이었던 이화학연구소는 입자가속기와 우라늄 분리통을 도입하여 본격적으로 원폭개발에 나서게 된다.

* 흥남의 비밀 공장, 그 안에서는 무엇이 개발되었나?
1945년 3월 동경 대공습으로 일본 내에서의 개발이 어렵게 되자 일본은 북한지역에 있는 흥남에서 원폭개발을 계속한다. 당시 흥남은 질소비료공장, 화학공장등 대단위 공단이 들어선 신흥도시로 원폭개발에 필요한 중수와 전기가 아시아에서 가장 풍부했으며 해군기지가 들어서 있었다.
흥남공단은 평시에는 비료나 화학약품을 만들지만, 전시에는 바로 군사용으로 전용이 가능한 것이었다. 흥남에서의 원폭개발 비밀프로젝트 이름은 바로 < NZ프로젝트 >였다.
< NZ프로젝트 >는 수소화합물을 이용하여 항공기, 잠수함, 인간 어뢰 등의 제트엔진 연료를 개발하는 것이 주목적이었으나, V1, V2라는 장거리미사일도 비밀리에 개발하고 있었다.

* 1945년 흥남 앞바다에서 원폭 실험이 있었다?
1947년 연합군사령부 정보 보고서는 놀라운 내용이 들어있다.
1945년 8월 12일 흥남 앞바다에서 섬광과 버섯구름을 동반한 폭발이 있었으며 천 야드 정도 되는 직경의 불덩이가 하늘로 솟았다는 것이다. 섬광과 버섯구름은 바로 원폭실험의 가장 유력한 징표이고 다른 무기는 버섯구름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 보고서는 상당한 논란을 증폭시켜왔다.
8월 12일은 바로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폭을 맞은 직후여서, 일본이 흥남의 원폭실험 때문에 항복을 늦추고 있었다는 의혹을 낳았다. 또한 일본은 원폭개발에 성공했다면 인간어뢰, 풍선폭탄, 잠수함 등에 원폭을 탑재해 가미가제식으로 미국을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첫 목표는 하와이였고, 최종 목표는 미국 본토였다.

* 기상천외한 ‘풍선 폭탄’ 공격, 미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다
1940년대 미국 역사상 최초로 본토가 공격을 받아 6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9.11테러보다 무려 60여 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맨하탄 프로젝트에 따라 핵무기를 만들고 있던 공장’의 변압기가 풍선 폭탄으로 인해 멈추는 사고까지 있었다. 주범은 바로 ‘풍선폭탄’이었다.
일본은 Z기류를 이용해 9천 개의 풍선폭탄을 미국을 향해 날렸다. 이중 1천여 개가 미국 본토에 떨어져 미국 본토를 유린했다. 미국은 이 풍선 폭탄 안에 세균무기가 들어 있을까봐 초긴장상태였다.
풍선폭탄을 요격하기 위해 전선에 나가있던 전투기를 회항시키고 화생방부대를 각 산악지대에 출동시키는 등 법석을 떨었다. 그리고 이 풍선폭탄의 최종목표는 원폭을 탑재하는 것이었다.

* 잠수함  U-234호, 우라늄 560kg의 정체는?
1945년 5월. 독일 잠수함이 각종 기밀자료를 싣고, 일본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다 한가운데서 독일이 항복하자 대원들은 격론 끝에 미국에 가서 항복하기로 한다.
한편, 이 배안에는 우라늄 560kg이 들어있는 것이 밝혀지자, 미국은 경악했다. 각종 첩보로만 듣고 있던 일본 원폭개발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 우라늄 발견과 히로시마 원폭투하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미국의 히로시마투하 원폭에 이 우라늄이 포함된 것은 아닐까?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은 이 사건에 대해 많은 역사가들은 “일본이 재료(우라늄)를 받으려다 완제품(원폭)을 받았다”고 평하기도 한다.

* 일본 핵무장의 기초를 닦은 나카소네 야스히로의 야심
원자력 예산 2억3천5백만엔의 비밀

패전의 상흔이 아물기도 전인 1954년 당시 국회의원인 나카소네의 주도로 일본은 원자력기본법을 통과시킨다. 이로써 2차대전때 원폭개발의 전력을 지닌 일본은 또 한 번 핵무장의 기초를 쌓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당시 원자력기본법안의 예산이 바로 2억3천5백만 엔이었다. 나카소네는 이는 우라늄 235를 겨냥한 것이었다고 밝혀 핵무장의 의지를 드러냈다.
이 기본법통과로 인해 일본은 도카이무라(東海村) 원자력발전소를 비롯 원전건설에 박차를 가하게 되는데, 이는 에너지난 해결 뿐 만 아니라 군사용으로 전용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나카소네는 70년 방위청장관 재직 시에도 핵무장에 관한 비밀보고서를 만들었는데, 이때의 실무책임자는 이토 히로부미의 손자였다.

* 사토 에이사쿠 수상 때 이뤄진 비밀, <핵개발 보고서>
1967년 사토 에이사쿠 수상은 핵무기를 제조, 보유, 반입을 금지하는 ‘비핵 3원칙’을 발표, 이 공로로 노벨 평화상(1974년)을 수상한다. 그런데, 사토는 또 다른 한편에선 핵무장가능성을 검토하는 비밀보고서를 만들게 하여 핵에 관한 일본의 이중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러한 일본의 이중성은 그 후로도 계속돼 1995년 사회당인 무라야마 총리 때에도 핵무장을 검토하는 비밀보고서를 만들어냈다.
즉, 핵에 관한 한 일본은 표면적으로는 비핵3원칙을 내세우면서도 내면적으로는 핵무장을 향한 준비를 끊임없이 준비해온 것이다.

* 일본 고속증식로의 설계자 오마에 겐이치의 충격적 발언
90일내에 핵무기 제조가능하다

1970년 일본 고속증식로를 직접 설계한 오마에 겐이치는 일본의 핵무기제조 기술력에 대해 “일본은 준(準)핵보유국이다. 일본은 90일 안에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놀라운 발언을 했다. 정치지도자들의 강력한 리더십과 재처리, 농축시설과 그리고 고속증식로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공식적인 정상회담 뒤에 벌어지는 비공식 정상회담의 의제 1순위가 바뀐 적이 없다고 한다. 바로 재처리와 농축시설 허가다. 특히 2005년 5월 30일 일본최고재판소에서는 고속증식로 원형로인 ‘몬주’의 가동을 합법화하는 결정을 내렸다. 몬주는 사용한 핵 연료보다 많은 핵연료를 다시 만들어내도록 돼 있어 이른바 ‘꿈의 원자로’로 불린다. 그런데, 이러한 고속증식로의 문제는 무기급 플루토늄의 생산 역시 가능해 진다는데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핵! 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 일본의 원폭개발 프로젝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출처:
http://blog.naver.com/korea213/8003515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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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7.12.28 23:51

다이아타리(體當たり).

 

일본 특공의 시조 혹은 근본이 되는 것으로 다이아타리(體當たり)의 직접적인 뜻을 헤아려보면, 직접충돌이라고 해석 할 수 있겠다.상대방에게 나의 몸을 돌격하여 직접 타격을 입히는 것이다.

 

나의 몸을 직접 상대방에게 돌격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돌격하는 본인도 적지않은 상당한 피해를 입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럼에도 다이아타리가 일본 특공의 원조로 사용되게 된 것은 다이아타리를 이용하여 전과를 올려 일본군 전체의 사기를 끌어올리는데 일조를 하여, 미군을 격멸하는데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사실, 다이아타리(體當たり) 전술이 나오게 된 것은 타이완 항공전에서 대부분의 해군기를 잃고 10분의 1에 지나지않는 기체를 보유하고 있던차에 고육지책으로 나온 상대 타격전술이었다.

 

다이아타리(體當たり) 전법은 주로 일본 해군기에 의한 돌격공격용으로 쓰였는데, 대개 통상적인 다이아타리(體當たり) 공격전술을 보면, 자신의 기체 혹은 동체를 가지고 적기의 주익(날개)의 끝부분을 스치듯이 가격하고 달아나는 방법을 썼다. 자신의 기체의 날개부분을 단단히 한후 돌격을 하기 때문에 상대를 타격하는데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종종 타격을 가하던 자신의 기체 주익이 부러져 오히려 추락사 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럼에도, 다이아타리(體當たり) 공격전술을 통해 상대방 미군기를 꽤 많이 떨어뜨리고도 정작 자신은 살아서 돌아오는 경우도 있어 일본해군은 이들을 특공의 영웅으로 칭하여 일본군의 사기를 앙양하는데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훗날, 이 다이아타리(體當たり) 직접충돌 전법은 카미카제라고 불리우는 神風전술에 응용되기도 하였다.

 

 

 

출처: 본인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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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나가다가
일본이야기 2007.12.28 23:43
특공(特攻)의 뜻

특공이란 특수공격 혹은 특별공격의 준말이다. 특수공격,븍별공격이란 말은 상대와의 정공법에서 밀리기 때문에 뒤쳐진 전세를 만회하기 위해 감행하는 공격법이다. 특공이 많을수록 그 만큼, 아군이 상대와의 전쟁에서 밀린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특공은 사람목숨을 담보로 하여 실행되는 공격법이다. 따라서 자발적으로 특공에 자원하고 지원한 사람들이 있다면 크게 대접받고 칭찬받아 마땅 할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특공에 동원된 사람들은 식민지하에서 억압을 받던 식민지 젊은이들로 구성되어 허망하게 최후를 맞이했던 것을 본다면 특공에 동원된 사람은 결코, 지원자에 의한 것이 아닌 강요와 압박에 의한 결과물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미국과 독일에서도 특공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은 사람의 탈출이 가능하게 여지를 남겨둔 채 특공을 감행 하였으나, 일본은 탈출조차 하지 못하도록 잠금장치를 하였다는 점이 틀린점이다. 그리하여 일본이 얻은 것은 인명경시를 하는 자폭국가의 원조라는 점이다.

출처: 본인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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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나가다가
일본이야기 2007.12.28 23:38

舊 일본군의 회심의 필살병기 '풍선폭탄'


When General Jimmy Doolittle led his B-25 bombers in a sneak raid over Japan in the spring of 1942, he set into motion a chain of events that would result in one of the more bizarre stories of World War II: the Japanese attempt to attack the continental United States by bomb-carrying balloons, floating across the entire Pacific Ocean.
1942년 봄, 지미 둘리틀 장군이 B-25 폭격기들을 이끌고 일본을 폭격했을 때,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 벌어진 더욱 기상천외한 이야기 중 하나가 입안 중에 있었다. 즉, 일본인들이 태평양 전체를 가로질러 떠다니게 될 ‘폭탄을 운반하는 풍선’으로 미국 전체를 공격하려고 기획한 것이 그것이다.  

From the late fall of 1944 through the early spring of 1945, the Japanese launched more than 9,000 of these "fire balloons", of which 300 were found or observed in the US. Some guesswork gives the total number that made the trip at about 1,000. Despite the high hopes of their designers, the balloons were totally ineffective as weapons, and survive in memory only as an ingenious and malevolent curiosity.
1944년 늦가을에서부터 1945년 초봄까지, 일본인들은  ‘화염 풍선들’을 무려 9000개 이상 발사했다. 일부 추측에 따르면 그중 약 1000개 정도가 미국까지 도달했을 것이라 보고 있다. 일본인 설계자들의 높은 희망에도 불구하고, 그 풍선들은 무기로서의 효과가 별로 없었으며, 단지 ‘아주 독창적이면서도 비웃음이 터져 나오는 진기한 생각’ 정도로 기억될 따름이었다.


The Japanese performed a small number of attacks on the American mainland through World War II. In February 1942, Japanese Submarine I-17 shelled an oil field up the beach from Santa Barbara and damaged a pump house. That following June, Submarine I-25 shelled a coastal fort in Oregon, damaging a baseball backstop, and in September, that submarine's crew assembled and launched a small float plane that dropped incendiary bombs, starting a few small forest fires.
일본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실제로 미국 본토에 대해 몇 차례의 공격을 실시한 바 있다. 1942년 2월, 일본 잠수함 I-17은 산타 바바라의 해안에 떠올라 유전지대에 포격을 가하여 유정油井 펌프 하나를 파괴한 바 있다. 같은 해 6월에는, 잠수함 I-25가 오레곤 해안 부대를 포격하여 야구장의 백네트를 파괴하였고, 9월에는 잠수함 승무원들이 조립하여 날리는 소형 수상기 한대가 소이탄 몇 개를 투하하여 아주 작은 규모의 산불을 일으켰다.


The fourth and final attack, using balloons carrying incendiary bombs, was the most earnest of them all. The concept was the brainchild of the Japanese Ninth Army Technical Research Laboratory, under Major General Sueyoshi Kusaba, with work performed by Technical Major Teiji Takada and his colleagues. The balloons were intended to make use of a great strong current of winter air that the Japanese had discovered flowing at high altitude and speed over their country, which would someday be known as the jet stream.
소이탄을 운반하는 풍선들을 사용한 4번째이자 마지막 공격은 전반적으로 가장 큰 위력을 가졌었다. 이런 풍선폭탄의 발상은 수에요시 쿠사바 소장 휘하의 기술 장교 테이지 타카다 소령과 그의 동료들 및 부하들로 구성된 일본 육군 제9군 기술 연구소의 작품이었다. 그 풍선들은 겨울 공기의 대단히 강력한 흐름(바람)을 사용하도록 고안되었는데, 일본인들은 그러한 바람이 그네들 나라의 높은 고도에서 대단한 속도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으며, 그 바람은 오늘날 ‘제트기류’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The jet stream blew at altitudes above 9.15 kilometers (30,000 feet) and could carry a large balloon across the Pacific in three days, over a distance of more than 8,000 kilometers (5,000 miles). Such balloons could carry bombs to the United States and drop them there to kill people, destroy buildings, and start forest fires. In this way the Japanese would punish the impudence of the Americans for the Doolittle raid against Tokyo and other Japanese cities in 1942. They named the weapon "fusen bakudan", which literally means "fire bombs", but which has been translated as "fire balloons".
제트기류는 태평양 상공 9.15킬로미터(30,000 피트) 정도에서 불고 있었으며 8000킬로미터(5000마일) 이상의 거리를 3일 만에 돌파하여 커다란 풍선을 운반할 수 있었다. 이러한 풍선들은 미국까지 폭탄을 운반할 수 있었으며, 투하되기만 하면 사람들을 죽이거나 건물들을 파괴하고 또한 산림지대에 불을 낼 수 있을 것이었다. 일본인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1942년에 도쿄 및 일본의 여타 도시들에 대한 둘리틀 장군의 폭격 덕에 기고만장해진 미국인들에게 화끈한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보았던 것이다. 그들은 ‘후센 바쿠단’이라는 이름을 그 무기에 붙였는데, 이는 문자 그대로 ‘화염 폭탄’이라는 뜻이었지만, 그러면서도 실제로는 ‘화염 풍선’이라는 의미로 번역되어 왔다.
     
Building a balloon that could survive a trip across the Pacific and then automatically drop its war-load was technically challenging. A hydrogen balloon expands when warmed by the sunlight and rises, then contracts when cooled at night and falls. The engineers devised a control system driven by an altimeter that discarded ballast to maintain altitude.
태평양을 횡단하는 여행에서 살아남게 해야 할 뿐만 아니라 폭탄을 자동적으로 투하하도록 하기 위한 풍선의 제작은 기술적인 모험이었다. 수소가스로 부풀린 풍선은 대낮에 태양광선에 의해서 따뜻해졌을 때 부풀어나는 데다 필요이상 상승하게 되며, 그런 다음에는 밤이 되어 시원해졌을 때는 쪼그라들면서 위험할 정도로 하강하기까지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기술자들은 풍선을 적당한 고도에 있도록 안정시켜주는 고도계에 의해서 운행되는 조종 시스템을 고안해 내었다.


When the balloon descended below 9 kilometers, it electrically fired a charge to cut loose sandbags. The sandbags were carried on a cast-aluminum four-spoked wheel, and discarded two at a time to keep the wheel balanced. Similarly, when the balloon rose above about 11.6 kilometers (38,000 feet), the altimeter activated a valve to vent hydrogen. The hydrogen was also vented if the balloon's pressure reached a critical level.
풍선이 고도 9킬로미터 아래로 내려가게 되었을 때, 풍선의 전기장치가 불을 뿜어 모래주머니들을 잘라내어 풍선을 가볍게 만든다. 모래주머니들은 주조된 알루미늄으로 된 4개의 바퀴모양 휠로 운반되었으며, 휠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한번에 두개가 버려지도록 되어있었다. 비슷한 모양으로, 풍선이 약 11.6킬로미터(38,000피트) 이상의 필요 이상으로 높은 고동에 이르게 되었을 때, 고도계는 밸브를 열어 수소가스를 새어나가도록 알아서 움직이게 된다.        

The control system ran the balloon through three days of flight. At that time, it was likely over the United States, its ballast expended. The final flash of gunpowder released the bombs, also carried on the wheel, and lit a 19.5 meter (64 foot) long fuze that hung from the balloon's equator. After 84 minutes, the fuze fired a flash bomb that destroyed the balloon.
그러한 조종 시스템은 3일간의 비행 동안 풍선을 조종하게 된다. 드디어 미국 상공에 도착하게 되면, 수소가스는 모두 소비된 상태가 된다. 화약에 의한 최종 섬광이 모래주머니와 함께 휠 위에 적제 되어 운반되어 온 폭탄들을 투하하게 되며, 그리고 풍선의 중간부분에 매달린 19.5미터(64피트) 길이의 퓨즈에 불이 붙게 된다. 84분 뒤에, 퓨즈는 풍선을 파괴하기 위한 섬광폭탄을 점화하게 된다.


The balloon had to carry about 900 kilograms (1,000 pounds) of gear, which meant a hydrogen balloon with a diameter of about 10 meters (33 feet). At first, the balloons were made of conventional rubberized silk, but there was a better way to make an envelope that leaked even less. An order went out for ten thousand balloons made of "washi", a paper derived from mulberry bushes that was impermeable and very tough. It was only available in squares about the size of a road map, so it was glued together in three or four laminations using paste derived from a tuber with the Japanese name of "devil's-tongue".
이는 결국 지름이 약 10미터(33피트)나 되는 수소가스로 가득 찬 풍선으로 약 900킬로그램(1,000파운드) 가량의 장비를 운반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초의 풍선들은 재래식으로 고무가 입혀진 비단으로 만들어졌으나, 나중에는 수소가스가 새는 구멍까지 줄어든 봉투를 만드는 더욱 혁신적인 방법이 생겨났다. 그 다른 방법에 의해서 1만개에 이르는 풍선들이 만들어졌는데, 그 재료는 ‘와시’(일본 한지)라고 불리는 뽕나무 가지를 원료로 한 종이로서 이는 습기가 스며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우 질기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종이는 오직 도로 지도 크기 정도의 네모난 모양으로밖에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일본인들이 ‘악마의 혀’라는 이름으로 부르던 감자 같은 식물에서 채취한 풀을 사용하여 세 장이나 네 장씩 겹쳐서 붙여야 했다.        

Hungry workers stole the paste and ate it. Many workers were teen-aged girls, whose fingers were nimbler than any class of people. They were told to wear gloves, to keep their fingernails short, and not to use hairpins. They assembled the paper in many parts of Japan. Large indoor spaces, such as sumo halls, soundstages, and theatres were required for the envelope assembly.
굶주린 직공들이 그 곤약으로 만든 풀을 훔쳐 먹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십대 소녀들이었으며, 그들의 손가락들은 그 어떤 계층의 사람들의 손가락보다 민첩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장갑을 착용하라는 지시를 받았으며, 그들의 손톱은 반드시 짧게 유지되어야 했고, 머리핀 같은 것은 절대 사용되어서는 안 되었다. 그들은 일본의 여러 지역에서 그 종이들을 조립했다. 예컨대 ‘스모 경기장’, ‘가수들의 공연장’, 그리고 극장 같은 닫혀져 있으면서도 거대한 공간에서 그 종이 봉투들을 조립할 것이 요구되었다.        

The workers had no idea of the purpose of their work. When rumors suggested the truth to them, that they were making "fusen bakudan" that would fly all the way to America and start fires, they laughed. Somehow, secrecy was preserved.
그 일에 동원된 노동자들은 그들이 하는 일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다. 나돌아 다니던 소문들이 그들에게 진실을 알렸을 때, 즉 그들이 미국으로 날아가서 불을 지르게 될 ‘후센 바쿠단’(풍선 폭탄)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는 이야기를 알려주었을 때, 그들 모두가 킬킬 웃어대었다. 알게 모르게 풍선폭탄에 대한 비밀은 지켜진 셈이었다.

출처: http://blog.naver.com/korea213/80020323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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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나가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