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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04 :: 공격기 A-7코르세어는
  2. 2009.05.04 :: 공격기 A-6B인트루더는
  3. 2008.02.01 :: 독일, 전설적인 초 거대항모 힌덴부르크 (3)
밀리터리Rep 2009.05.0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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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7 코르세어Ⅱ는 2차대전 당시 태평양 전선에서 우수한 다목적 성능으로 근접항공지원의 주력기로 사용되는 동시에 태평양 상공에서 제로기를 사라져버리게 한 코르세어Ⅰ을 제작한 찬스보우트사가 그 전통을 살려 개발한 제트 공격기로 베트남전 중기부터 걸프전까지 20여년간 미해군 항공대의 주력 근접 항공지원기로 사용된 기종이다.


코르세어Ⅱ 공격기는 그 외형에 있어 50년대 말부터 미해군의 제공 전투기로 사용되었던 F-8 Crusader를 뚱뚱하게 변형시킨듯한 형태를 하고 있어 일반인들은 이 두기종을 혼동할 정도로 매우 비슷하다.


A-7은 베트남전 초기 A-4의 높은 소모도에 비해 이를 대체할 다용도 제트공격기가 없어 지상군을 위한 저가의 고성능 근접항공지원기의 필요에 따라 급히 개발된 기체이다. 앞에서 말한대로 미해군 항공대에는 A-4가 애용되고 있었으나 다량의 무장을 했을 경우 항속거리가 줄어드는 등의 애로사항이 발생하였으며 결정적으로 악천후에서의 정밀폭격 능력 등 전천후 성능이 부족하였다.


물론 A-6이라는 고성능의 공격기도 있었으나 A-6은 비용대 효과면에서 아무런 임무에나 투입할 만한 기종이 아니었으며 F-4 Phantom 역시 대부분의 기체가 요격 및 제공전투 등 고유으 임무에 투입되고 있었고 수시로 투입되어 격추될 위험성이 높은 근접항공지원용으로는 너무 고가의 기체였다. F-8은 탑재력이 턱없이 부족하여 근접지원항공기로서의 가치는 낮은편이었다.


원래 미해군은 60년대 중분 이후에 사용할 차기 공격기로 초음속기를 원하였다. 이것은 F-8을 제작한 찬스보우트사의 F-8을 개조한 A3U-1 초음속공격기를 염두에 둔 계획이었다.


이에 따라 1961년에 취임한 맥나라마 국방장관은 기존 해군항공대의 모든 제트전투기와 공격기를 비용대 효과면에서 평가하도록 해군에 지시를 내린다. 2년여간의 시간이 흐른 1963년에 검토는 종료되었으며 모든 기종들이 비용대 효과면에서 만족할 만한 기체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이에 따라 새로운 공격기가 필요하게 되었다. 비용대 효과를 우선시한 맥나라마는 해군이 요구하는 고가의 초음속기보다는 낮은 조달가격에 A-4보다는 2배의 무장을 탑재하고 장시간의 체공성능으로 전천후 정밀폭격성능을 갖춘 아음속 공격기를 개발하도록 지시하게 된다. 또 다른 조건으로는 항모로 부터 600㎚ 거리의 전투행동반경을 가져야 하며 기체구조의 견고성, 신뢰성, 정비성이 높아야 한다는 점이엇다. 국방성은 초기 작전능력 획득시기를 1967년으로 못박았으며 개발 기간이 너무 짧은만큼 새로운 기체가 아닌 기존 기체를 개조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결국 A-7은 이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며 세상에 등장한다. 당시 이 계획에 참가한 업체들과 기체는 다음과 같다.


우선 Vought는 크루세이더의 동체를 단축한 V-463을, Douglas는 스카이호크의 발전형을 제시하였으며 North American은 AF-1 퓨리의 발전형으로 경쟁에 참가하였다. 다만 그루먼사는 A-6를 간략화시킨 다운 그레이드형을 제시했다. 이들 후보기들중에서 AF-1 퓨리 발전형이 가장 먼저 탈락하게 된다. 퓨리는 원래 세이버 전투기를 해군형으로 개조한 것으로 기체를 개량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두번째로 탈락한 A-6 저성능형은 성능을 낮춘다해도 대폭적인 조달가격 인하는 힘들다고 판단되었다. 결국 크루세이더 발전형과 스카이호크 발전형만이 남았으나 스카이호크 발전형은 추력이 낮은 롤스로이스 엔진을 장착하고 주날개가 저익인 관계로 무장 탑재가 한계가 있었다.


1964년 2월 11일 보우트사안이 채택되어 3월 19일 해군과 보우트사간에 개발계약이 체결되어 시제기 3대의 제작비용으로 $ 24,120,000가 책정된다. 이렇게 해서 A-7A가 탄생하였는데, 기존의 크루세이더보다는 동체가 단축되었으며 아음속기인 관계로 주날개 후퇴각이 감소하였다. 엔진은 F-111용으로 개발된 Pratt & Whitney의 TF-30의 애프터 버너 제거형인 TF-30-P-6이 채택되었다. 1964년 6월 25일 A-7A의 실물 목업이 달라스 공장에서 공개되었다. 한편 한달후에 베트남의 통킹만에서는 북베트남과 미해군이 충돌하는 사태가 일어나 미군이 본격적으로 베트남 내전에 개입하는 일이 일어난다. 이렇게 양국간의 해상 충돌이 전면전으로 확산될 움직임이 있자 미해군은 비용대 효과면에서 우수한 코르세어Ⅱ의 개발을 최우선 사항으로 추진하게 된다.


급피치로 개발작업이 진행되던 1965년 1월 15일 보우트사의 기술설계는 완료되며 곧바로 1호기의 제작에 들어간다. 1호기는 1965년 8월에 완성되어 9월 정식으로 출고되어 같은달 20일 첫비행에 성공하였다. 이처럼 코르세어의 개발에는 매우 짧은 시간만이 소요되었으며 기존 계획에서 25일 앞당기기까지할 정도로 보우트사의 설계, 제작진의 노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비행대배치와 실전투입

A-7은 2년동안의 시험비행을 성공리에 마치고 1967년 8월에 VA-147에 배치되어 베트남전에 최초로 투입된다. 베트남에 투입된 A-7A는 북베트남 남부의 비엔에 있는 다리와 도로에 5인치 로켓탄을 발사하는 공격임무를 수행하였다. 한편 같은 시기에 A-4C/E를 주력 공격기로 사용하던 해병대는 A-7A를 주목하고 발주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나 재정난으로 인해 69년에 저가의 A-4M을 채택하기로 계획을 수정하게된다. 이와는 달리 공군은 근접항공지원기로 사용되던 F-100D 수퍼세이버 전투기를 70년대초에 대체하기 위해 해군의 A-7A이 처음 배치될 때부터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공군형 A-7D의 발주는 1965년 10월에 이루어졌다. 코르세어는 베트남전 후기에 투입되어 지상공격 작전에 운용되었으나 이렇다할 전과는 없었다. 이후 76년 캄보디아 작전, 82년 베이루트 작전에 참가했으며 91년 걸프전에서 SEAD 임무를 끝으로 일선에서 사라졌다.


전체길이:14.06m

전체너비:11.81m

전체높이:4.90m

자체중량: 8,676kg

최고속력: 1,123km/h

승무인원: 1명

고정무장: 20mm 발칸포 1문



출처: 글은 http://blog.naver.com/korea213/80034444138 사진은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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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나가다가
밀리터리Rep 2009.05.04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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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6B의 본래의도는 해군의 경량급 공격기의 경쟁에 대비해 계획된 인트루더의 단좌형으로 A-6A의 전천후 기능을 제거한 주간 공격기 버전으로 설계되어 었지만, 경쟁기체인 LTV A-7콜세어2가 체택되는 바람에 개발이 취소 되었다.


그렇지만 195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위협이 되었던 무기중에 하나였던 지대공미사일 시스템에 A-6B는 대 대공미사일 제압을 위한 아이런 핸드 (Iron Hand) 프로그램하의 특수방어제압기체로 기존의 A-6A를 골라 3단계로 개량하게 된다.


첫번째 단계: A-6A 공격기 10기에 공격시스템을 제거하고 적의 지대공미사일(SAM)을 추적할수 있는 특수장비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이 기체는 후기형이 가지고 있는 복잡하고 정교한 전자전 시스템이 결여되어 있었다. 이기체는 AGM-78A 스탠더드 對레이더 미사일을 장비하게 된다.


두번째 단계: A-6A 공격기 3기에 수동각 추적 대레이더 미사일 시스템 (Passive Angle Track Anti Radar System:PAT/ARM)을 장착한다.

이것은 존 홉킨스 응용 물리연구소에서 제작된 시스템으로 AGM-78A 스텐더드 미사일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개발 되었는데, 적이 대공미사일 추적 레이더를 꺼도 미사일이 레이더를 추적할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제조회사: Grumman Aircraft Engineering Corp.

개발년도: 1960

기체형식: 공격기

승무인원: 2명

전체길이: 54ft 7in (16.64m)

전체너비: 53ft (16.15m)

전체높이: 15ft 7in (4.75m)

엔진형식: 2 x Pratt & Whitney J52P-8A

엔진출력: 9,300 lb (4,218 kg)

날개면적: 529sq ft (49.15m²)

최대중량: 60,626 lb (27,500 kg)

자체중량: 25,684 lb (11,650 kg)

최대속도: 685mph (1,102km/h)

상승고도: 41,660ft (12,700m)

항속거리: 1,920mi (3,090km)

폭장능력: 15,000 lb (6,804 kg)



출처:
글은 http://brd3.chosun.com/brd/view.html?num=76601&tb=BEMIL085

사진은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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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나가다가
독일이야기 2008.02.01 00:26
항공모함의 주요 제원을 살펴보자면,

배수량: 15만톤.
탑재항공기: 400여기.
탑재인원:  112000여명.
전체길이: 503미터.
(미국의 니미츠급 항공모함은 길이 330m)

최대너비: 68미터.
(한국의 구축함 KDX-2 1번함은 폭이 15m 정도.)

최대탑재기수: 456대.
(니미츠급 항공모함은 85대 정도 적재.)

기타탑재무장: 전차 300여대.
(한국의 LPX는(개발중) 전차 최대 적재량 70대.)

중화기 부대 1200여명.
(한국의 고준봉급은 완전무장한 군인 200여명 가능.)

곡사포 10문.

자체방어무기: 30밀리 쌍발 대공기관총 240여문(도합 30밀리 480문).
브래들리 장갑차 기관총이 30mm.

자함방어어뢰: 20문.
(현대식 잠수함의 대부분의 어뢰 발사관이 6발 및 8발.)

폭뢰운용갯수: 52개.
(현대의 구축함에 대한 정보에는 폭뢰 발사관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비교 불가능.)

400밀리 함포 6기.(거의 야마토급.)
(한국 해군의 KDX-2 1번함 이순신함의 함포가 127mm 급.)

이와 같이 일반 전함을 능가하는 전투력과 방어력을 갖춘 항모였다.
수상방어에는 유보트 30여대가 좌우로 방어하고, 주변에는 구축함 20여대가 방어진지를 구축한뒤 원래는 텔피츠 전함이 선두로 서서 방어하기로 했었다. (독일해군의 모든전력을 다 긁은 듯 한.....)
하지만 텔피츠가 피오르드 해안에서 침몰하자 독일 해군에서는 당황하여 함포를 달게 되었다.  장갑판도 워낙 막강해 측면 장갑은 1미터에 달하는 압연강판를 장착했었다.

상부 갑판은 폭탄에 맞아도 즉시 교체하기 쉽도록 아주 작은 강철판 형태로 부착했다.

함장포함 승무원은 10000여명 중화기 부대1200여명 총합 모두11200여명이 탈 예정이었다. (한국 광개토 대왕함 승무원이 317명.)

400여개의 방수구획실로나누어져있어서 100개의 방수 구획실이 침수되더라도 배는 부상 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서 절대 침몰하지않는 항모가 되려고 하였다.

이론적으로 이 항모를 파괴할려면 적어도 항공기 1000여대가 필요하고, 어뢰는 정통으로 맞지 않는한 200개 정도는 거뜬히 막을수 있다고 자랑했다.
(세계 최고의 불침함(不侵艦) 야마토도 어뢰 10발에 격침.)

만약에 독일이 이 거대 항모를 바다에띄웠다면, 영국은 아마 초토화 되었을것이다.
(영국뿐인가, 미국까지 위험했지.  소련은 벌써 작살났고.)

결론을 말하자면, 엔터프라이즈 항모 두대를 붙이고, 야마토 포를 얹은뒤에, 독일 공군기지를 덮어놓고, 비스마르크 승무원의 10배의 달하는 수병을 긁어모은 다음에, 온갖 잡무기들을 다 발라놓은 것.

이거 현역에서 뛰다가 침몰했으면 독일 해군 그날로 전멸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실행에 옮기려다 너무 많은 비용과 노르망디 상륙작전 성공으로 인해 실패했다. 너무나 많은 수의 승무원도 문제가 되엇다

1만명이나 되는 사람을 싫고 항해를 하다가 침몰이라도 한다면, 너무나 큰 손실이 될게 뻔했기 때문이엇다.

또한 독일은 실패를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는데, 이 사실들은 영국정보에 의해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수상함대 취소계획에 의해 제플린항모는 취소되었지만, 최대항모는 히틀러도 생각에 두었던 것이었다.

사실 히틀러도 처음엔 거대항모계획을 반대했지만 영국 점령이라는 임무아래 흔쾌히 허락하고 말았다.

우즈카이 비밀 조선소에서 조립만했다.

각 지역에서 열차로 수송된 함모 조각들은 차근차근 독일해군으로 인도되었고 90퍼센트 공정을 완성하자마자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인해 배를 뛰울수없어 폭파시켰다고 한다. (으이구 아깝다.. 거의 만들어 놓고 자폭처리라니...)

500미터나 되는 거대한 선채로 인해 다이너마이트 1000여개를 주여기관가 장갑판 사이에 끼워서 모두 3일에 걸쳐 폭파시켰다.

후에 영국 정보 기관과 미국 정보기관에 의하면, 이 항모가 영국해협에 떴더라면 영국은 쉽게 항복했으리라한다.

출처:red2.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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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나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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