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야기 2008.02.09 09:58

平式艦発促進台(スキージャンプ甲板)은 지금으로 말하면, 스키점프대 형태를 한 갑판이다.

(지금은 영국과 러시아만이 스키점프대를 채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스키점프대가 부분적으로 이미, 일본에 의해 운용되었다는것이다)


平式艦発促進台이라고 이름이 붙여진것은,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해군의 平多久소좌였기때문에 그 사람의 이름을 따서 平式이라고 명명 한 것이다. 平多久소좌는 물건을 던질때 수평으로 던지는 것보다는, 어느정도 앙각을 주어 던지는 것에 주목한다.

어느정도 앙각을 주어 던지면, 하늘로 이륙할때에 그다지 힘을 더 가하지 않고서도 이륙을 감행 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


平多久소좌는 이 원리를 평갑판에 적용을 하면, 더욱 쉽게 함재기들이 이함,발함을 하지 않을까? 하고 축소실험을 하게 된다.

소형의 활주갑판을 만들고, 활주갑판의 맨 끝부분을 부앙각을 주어, 모형비행기를 모타의 힘으로 쏘아 보았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는데,

평갑판일때는 평갑판을 지나자마자 더 이상의 힘이 가해지지 않으므로 고꾸라지는데 비해, 평갑판의 끝부분을 부앙각을 주어 실험을 하였을 때에는 비행기가 갑판을 박차고 공중으로 솟구쳐 이함하였기 때문이다.


이로서, 平多久소좌는 자신의 실험을 정리하여, 1941년 말에 일본해군대학교 전술과에 발표를 하지만, 처음에는 웃음거리가 되고만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되고 시간이 갈수록, 함재기의 중량이 늘어나는 반면, 이함을 시키는 장치는 그다지 나아진게 없어서 고생중이었는데, 이때, 일본수뇌부들은 이전에 제안되었으나 파 묻혓던, 平多久소좌의 제안을 재검토하고 실험을 활주로에 부앙각판과 같은 목제를 경사대로 갑판에 장치 한 후, 각종 작전기에 의해 이륙실험을 실시하였는데, 모형비행기의 이륙이 놀랄만큼 단거리로 이륙이 가능하다라고 하는 것이 판명되어 곧바로 실용화되게 되었다.

단지 실용화에 임하여 기체의 마력이나 중량, 이륙시의 풍향등 , 발진때의 조건에 의해서 적당한 부앙각이 그때마다 변화하여야만 했다.

부앙각이 너무 작으면,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서, 충분한 양력을 받기 전에 기체가 고꾸라지거나, 부앙각이 과대하면, 이륙각도가 너무 높아 정상적인 이륙을 하는데 이상이 있었다.


이런결과, 平式艦発促進台(スキージャンプ甲板)는 갑판에 고정된 부앙각을 주지않고 기체마다 다른 부앙각을 가지게끔 착탈식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를 비약대라고 불렀으며, 착탈식의 비약대는 유압장치에 의하여 각도를 조절 할 수 있었다.


이 비약대를 장비하고 있는 것은 공모로 개조된 이부키級 공모 2척만이 장비하였을 뿐이다.

이부키級 공모는 단 두척이었는데, 첫번째함은, 건조중이었던 改 鈴谷級 重巡(개 스즈야급 중순)의 함체를 이용해 건조 된 소형의 공모이다. 첫번째 이부키級공모는 훗날, 스키점프대라는 평식 발함 촉진대를 장비하여, 신형기의 운용이 가능하게 되었고, 이로써, <섬풍>과 <열풍개>의 함상전투기만을 탑재하여, 중순의 쾌속을 겸비한 돌격공모가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1945년 3월 80%의 공정을 기록하고, 건조중지되고 만다. 이유는 태평양전쟁의 전황악화이었다.


伊吹은 구레공창에서 건조를 지속하다가 공정80%에서 1945년 3월에 건조중지를, 2번함인 吉野는 미쓰비시조선소에서 건조를 하다가 건조중지를 당하였다.


배수톤수:12500톤
전체길이:205미터
전체너비:21미터
엔진마력:72000마력
최대속도:29노트
함재기수:상용27機
주요무장:76미리 2연장 고각포 4문, 25미리 3연장 기관포 17문


아래좌측의 사진은 순양전함 이부키의 모습이고, 우측의 사진은 공모로 개장되는 이부키의 모습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본인의 네이버카페인 http://cafe.naver.com/military/3455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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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나가다가
일본이야기 2008.02.04 23:45

2차대전 항공모함 이름 딴, 일본 16SS 잠수함 1번함 '소류' 2007년 12월 5일 진수.

 

일본의 16SS잠수함의 1번함이 2차대전의 일본이 운용하였던 항공모함의 이름을 따 왔다는 것은 2차대전의 일본군에 대한 향수를 기린다는 의미로 해석을 할 수도 있으며, 옛 일본군처럼 군국주의 성향으로 일본의 무장이 변화하려 한다는 것으로 해석을 할 수도 있다. 또한, 옛 일본군처럼 강군으로 전력을 강화시켜 나아가서는 동북아시아의 맹주로 군림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현재도 재래식 잠수함 전력은 중국보다 일본이 더 나은 편이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잠수함전력을 강화시킨다면 앞으로 더욱 중국과의 잠수함 전력 격차를 벌일 수 있다는 것으로 보여진다. 다만 중국은 러시아의 잠수함을 모델로 한 진급, 상급 잠수함을 건조중이어서 이들 잠수함의 성능여부에 따라 중국잠수함의 전력에 비해 압도적이다, 그렇지 않다는 결론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현재 동북 아시아에서의 한국 잠수함전력도 성능상으로는 최강급에 속하나 잠수함 숫적으로는 중국과 일본에 비해 상당히 딸리는 편이다. 중국은 69척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일본도 16척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 장보고급 9척과 손원일급 1,2,3번함 총 12척이다.

때문에 한국은 일단 잠수함전력에서 숫적인 충분한 전력을 확보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해 있다.

성능상으로는 세계최강급이기때문에 질적으로 우수한 잠수함만 건조,확보한다면 재래식 잠수함들중에는 최강으로 군림 할 가능성이 크다. 암튼, 이번 일본의 잠수함 명명은 일본제국주의 해군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해석이 된다.

 

출처: 본인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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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나가다가
독일이야기 2008.02.01 00:26
항공모함의 주요 제원을 살펴보자면,

배수량: 15만톤.
탑재항공기: 400여기.
탑재인원:  112000여명.
전체길이: 503미터.
(미국의 니미츠급 항공모함은 길이 330m)

최대너비: 68미터.
(한국의 구축함 KDX-2 1번함은 폭이 15m 정도.)

최대탑재기수: 456대.
(니미츠급 항공모함은 85대 정도 적재.)

기타탑재무장: 전차 300여대.
(한국의 LPX는(개발중) 전차 최대 적재량 70대.)

중화기 부대 1200여명.
(한국의 고준봉급은 완전무장한 군인 200여명 가능.)

곡사포 10문.

자체방어무기: 30밀리 쌍발 대공기관총 240여문(도합 30밀리 480문).
브래들리 장갑차 기관총이 30mm.

자함방어어뢰: 20문.
(현대식 잠수함의 대부분의 어뢰 발사관이 6발 및 8발.)

폭뢰운용갯수: 52개.
(현대의 구축함에 대한 정보에는 폭뢰 발사관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비교 불가능.)

400밀리 함포 6기.(거의 야마토급.)
(한국 해군의 KDX-2 1번함 이순신함의 함포가 127mm 급.)

이와 같이 일반 전함을 능가하는 전투력과 방어력을 갖춘 항모였다.
수상방어에는 유보트 30여대가 좌우로 방어하고, 주변에는 구축함 20여대가 방어진지를 구축한뒤 원래는 텔피츠 전함이 선두로 서서 방어하기로 했었다. (독일해군의 모든전력을 다 긁은 듯 한.....)
하지만 텔피츠가 피오르드 해안에서 침몰하자 독일 해군에서는 당황하여 함포를 달게 되었다.  장갑판도 워낙 막강해 측면 장갑은 1미터에 달하는 압연강판를 장착했었다.

상부 갑판은 폭탄에 맞아도 즉시 교체하기 쉽도록 아주 작은 강철판 형태로 부착했다.

함장포함 승무원은 10000여명 중화기 부대1200여명 총합 모두11200여명이 탈 예정이었다. (한국 광개토 대왕함 승무원이 317명.)

400여개의 방수구획실로나누어져있어서 100개의 방수 구획실이 침수되더라도 배는 부상 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서 절대 침몰하지않는 항모가 되려고 하였다.

이론적으로 이 항모를 파괴할려면 적어도 항공기 1000여대가 필요하고, 어뢰는 정통으로 맞지 않는한 200개 정도는 거뜬히 막을수 있다고 자랑했다.
(세계 최고의 불침함(不侵艦) 야마토도 어뢰 10발에 격침.)

만약에 독일이 이 거대 항모를 바다에띄웠다면, 영국은 아마 초토화 되었을것이다.
(영국뿐인가, 미국까지 위험했지.  소련은 벌써 작살났고.)

결론을 말하자면, 엔터프라이즈 항모 두대를 붙이고, 야마토 포를 얹은뒤에, 독일 공군기지를 덮어놓고, 비스마르크 승무원의 10배의 달하는 수병을 긁어모은 다음에, 온갖 잡무기들을 다 발라놓은 것.

이거 현역에서 뛰다가 침몰했으면 독일 해군 그날로 전멸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실행에 옮기려다 너무 많은 비용과 노르망디 상륙작전 성공으로 인해 실패했다. 너무나 많은 수의 승무원도 문제가 되엇다

1만명이나 되는 사람을 싫고 항해를 하다가 침몰이라도 한다면, 너무나 큰 손실이 될게 뻔했기 때문이엇다.

또한 독일은 실패를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는데, 이 사실들은 영국정보에 의해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수상함대 취소계획에 의해 제플린항모는 취소되었지만, 최대항모는 히틀러도 생각에 두었던 것이었다.

사실 히틀러도 처음엔 거대항모계획을 반대했지만 영국 점령이라는 임무아래 흔쾌히 허락하고 말았다.

우즈카이 비밀 조선소에서 조립만했다.

각 지역에서 열차로 수송된 함모 조각들은 차근차근 독일해군으로 인도되었고 90퍼센트 공정을 완성하자마자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인해 배를 뛰울수없어 폭파시켰다고 한다. (으이구 아깝다.. 거의 만들어 놓고 자폭처리라니...)

500미터나 되는 거대한 선채로 인해 다이너마이트 1000여개를 주여기관가 장갑판 사이에 끼워서 모두 3일에 걸쳐 폭파시켰다.

후에 영국 정보 기관과 미국 정보기관에 의하면, 이 항모가 영국해협에 떴더라면 영국은 쉽게 항복했으리라한다.

출처:red2.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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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나가다가
일본이야기 2008.01.13 11:30

1940년 6월 제1항공전대의 사령관인 오자와 지사부로 소장이 제안한 것으로, "항공모함과 기지항공대를 하나로 통합하여 적 함대에 대한 적극적인 방어와 공격전환을 하여 집중적으로 적의 함대를 섬멸시킨다." 는 의견을 통합막료본부에 제출하였는데, 이를 검토,참고하여 공모(항공모함)6척을 중심으로 하는 제1항공함대를 창설하였다. 이때가 1941년 4월이었다. 항공함대는, 항공모함이 탑재하고 있는 수십대의 함상전투기, 함상공격기, 함상수평폭격기, 함상급강하폭격기를 최대한 이용하자는 발상으로 발안 된 것이었다. 원래, 함대라는 것은 전함, 구축함, 순양함, 잠수함, 보급함, 기뢰함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 해양화력을 투사하는 것인데 수상함대에 의한 해양 투사력의 한계는 확실히 존재하므로 항공세력에 의한 對지상 혹은 對해상 공격의 필요성이 중시되었다. 하지만 별도로 연료의 손실없이 항공기를 수상함대와 같이 움직이기 위해선 항공기를 대거 운용하는 플랫폼이 필요하였다. 때문에 나온 것이 "항공기를 군함에 실고 다니다가 유사시에 탑재기를 이륙시켜 항공세력을 투사하자" 라는 발상이었고 이를 구체화가 가능하게 만든 플랫폼이 항공모함이다. 그리고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함대를 구성 하였다고 해서 항공함대라고 불리기도 하며, 또 항공모함의 수십대의 탑재기들이 대거 날아오르면 그 모습이 마치 수상함정들이 함대를 이루는것을 연상시키어 항공기에 의한 함대진영 같다고 항공함대라도 불리는 것이다. 일본의 항공함대는,

제1항공함대
1943년 7월 10일 창설, 1945년 6월 15일 해산

제2항공함대
1944년 6월 15일 창설, 1945년 1월 8일 해산. 필리핀 방위를 위해서 대만 각지에 전개했지만, 대만 항공전에서 소모되고 필리핀 방어전에 투입된 기체는 얼마 안 되었다. 그 때문에 1944년 11월에는 모든 기체를 대만에 본토로 철수시키고, 기지요원은 지상전에 종사하도록 하였다.

제3항공함대
1944년 7월 10일 창설, 1945년 10월 15일 해산. 본토방위를 위해서 당초에는 관동, 이오지마 함락후, 미나미큐우슈우를 중심으로 전개하고, 이오지마 및 오키나와에서의 적극적인 미군 항공기 요격과 방공작전에 임하였다.

제5항공함대
1945년 2월 10일 창설, 1945년 10월 20일 해산. 본토방위를 위해서 큐우슈우를 중심으로 작전을 하였으며 이오지마 및 오키나와에서의 적극적인 미군 항공기 요격과 방공작전에 임하였고 종전이 발표된 직후, 책임자가 특공자결하였다.

제10항공함대
1945년 3월 1일 창설, 1945년 10월 10일 해산. 항공 요원양성을 위해서 연합 연습 항공총대를 확장해 설치하였는데 이를 위한 부대가 10항공함대이다. 즉, 전투력이 전혀 없는 항공기 연습부대인 셈이다. 때문에 공식적인 전력에 편성이 되지않는다.

제11항공함대
1941년 1월 15일 창설, 1945년 9월 6일 항복.

제12항공함대
1943년 5월 18일 창설, 1945년 11월 30일 해산. 제5함대 와 함께 북동 방면 함대 를 편제하고, 치시마 · 에로후토 · 홋카이도 방위를 위해서 치토세 비행장을 중심으로 전개했다. 1943연말에는 일부가 마샬 여러 섬 에 전진했지만 북동 방면 함대 해산 후는 연합 함대 직졸이고 오오미나토 경비부 사령부가 겸임했다.

제13항공함대
1943년 9월 20일 창설, 1945년 9월 12일 해산. 방공부대를 따로 두지 않은 항공함대로 남서 방면 함대의 항공 지원을 맡기 위해서 편성된 부대이다. 인도차이나에서는 즈다우무, 말레이반도에서는 배난, 西인도네시아에서는 스라바야, 東인도네시아에는 운본을 거점으로서 전력을 분산 배치하였다. 1945년 2월 5일에 제10방면 함대가 편제되면서, 그 항공지원부대가 되어 종전까지 운용되었다.

제14항공함대
1944년 3월 4일 창설, 동년7월 18일 해산. 제4함대 와 함께 중부 태평양 방면 함대 를 편제하고, 데니안도 를 거점으로서 내남양 각지에 전개했다. 이미 Track 환초 나 파라오 여러 섬 서는 공습을 위해서 기지 기능은 괴멸하고 있고, 대부분데니안에 붙여 붙의 상태이었다. 5월에는 Mariana 해전 를 구비하(갖추)고 제일 항공 함대 가데니안에 진출. 그 증강 때문에 모든 가동기를 양나룻배, 불과2개월에데니안의 지상전을 기다리지 않고 전투력을 완전히 잃었다. 사이판도 의 함락에 의해 중부 태평양 함대 사령부가 옥쇄 한 것을 베틀에, 정식으로 해산했다.

작성: 본인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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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나가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