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야기 2007. 12. 7. 10:53

○舊일본전차들의 장갑이 형편없었던 이유는?○    

일본군은 프랑스의 르노 경전차를 받아들이면서 전차라는 무기의 개념도 함께 정립하게 되는데, 그들의 전차라는 무기의 운용개념은 보병-전차간의 유기적 활용을 근간으로 하며, 이를 응용시킨 전술을 채택하게 이른다. 그것은 다름아닌 '보전 협동 전술'. '보전 협동 전술'이란 "보병-전차間 협동 전술"이란 뜻이다. '보전 협동 전술'의 채택으로 인해 일본 전차들은 태생적으로 "전차와 전차간의 전차전을 위한 전차"가 아닌 "보병의 전투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전차"로 탄생되게 되었다.  따라서 독일, 소련等과 같이 전차전을 기대하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 할 수 밖에 없었다. '보전 협동 전술'의 보병 지원용 전차들이다 보니까 보병의 이동속도와 알맞게 최적의 속도(30 ~ 40km대)를 내도록 한  전투차량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 전차들은 보병들이 전투를 펼칠 때 근접해서 지원 화력을 뿜어 상대를 압도하는 것이 임무이다. 따라서 전차전을 위한 전차들과 1:1로 맞대결을 펼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며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최악의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보전 협동 전술'에 입각한 전차들이다 보니까 장갑이 그다지 두껍지 않아도 되었으며, 다만 적 보병의 총탄을 막아낼 수 있을정도 수준의 장갑이면 되었다.(사실, 적 보병(미군)들이 쏜 총탄세례에 멈춰선 전차들이 한두대가 아니었으니 적 보병의 총탄을 막아낼 정도 수준의 장갑이라고 한것이 의심이 가는 면이 다분히 있다.) 때문에, 장갑의 두께가 형편없이 얇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외에 다른 이유도 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당시 철강 수급의 문제에 봉착하여 식민지 국가들에게 철이란 철은 모두 압수하여 동원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조선, 대만, 중국 등지에서 징발, 차출된 철이 대부분이었다. 조선, 대만 등지에서 징발 된 철제류는 프라이 팬, 밥솥, 쟁기 등으로 사용되던 가정용 철제류 도구 等이 대부분이었다. 이들 동원된 가정용 철제류 도구 等은 일본 군수산업(항공기,전차,함정)물자를 조달하는데 사용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가정용 철제류 도구 等이 강철이 아닌 연철 수준이었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이런 연철 수준의 가정용 철제류 도구 等을 다시 강철로 만들기 위해서는 다시 녹여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제철-제강-압연-단조 과정을 거쳐 강철을 만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일본의 자체적인 제강-압연-단조 과정의 기술력은 구미 선진제국(미국,영국)과 동맹국인 독일에 비해서도 뒤떨어지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탄성강도가 높은 강철을 생산 해 내기란 역 부족인 상황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어중간 탄성의 철로 전차의 차체와 장갑을 만들고, 함정의 갑판과 장갑을 만들고, 항공기의 동체와 날개를 만들어 조달하였던 것이다. 결과는 보나마나 뻔한 결과로 소위 장갑이란 것들이 맷집이란 것을 모른채, 구멍이 숭숭~ 뚫려버리는 결과를 초래 했던 것이었다. 이런 어리숙한 제강-압연-단조의 기술과 가정용 철제류의 동원等이 일본 전차 장갑이 계적으로 악평을 떨칠 수 있었던 것에 크나 큰 기여를 한 것이다.

posted by 지나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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