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야기 2007.12.07 10:48

비스마르크는 1941년 5월 브레스트港(베르겐港)에서, 전투순양함(CA) 프린츠오이겐과 라인연습을 발동, 작전에 참가하기 위해 브레스트港을 출발한다. 그리고, 1941년 5월 24일... 비스마르크는 영국전함 후드를 발견하고 적함과의 탄착거리를 재기 위해 후드를 향해 초탄 일제사를 퍼붓는데, 이 포탄이 정확히 후드의 화약고를 급습, 유폭을 일으킴과 동시에 후드를 한방에 날려보낸다. 비스마르크 외로이 단신으로 영국해군과의 맞붙는 역사적인 해전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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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이 해전에서 프린츠 오이겐과 합류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비스마르크 혼자 혈혈단신으로 비스마르크를 사냥하러 나온 영국해군과 마딱뜨려 선전을 펼쳤으나, 결국엔 비스마르크의 敗北.

이때, 포격전中 비스마르크호에 명중한 영국의 주포는 직경 13 cm에서 40 cm에 이르는 다양한 포탄이었는데, 역사가들은 400발에서 600발 정도가 명중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이때, 영국주력전함들이 비스마르크를 향해 발포한 포탄의 수량만도 3000발 가량된다. 그리고, 이 3000발중에서, 400 ~ 600발정도가 명중한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럼에도 명중탄을 맞고 선체에 구멍이 뻥~ 뚤린구멍은 3개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널리 알려진바로는 비스마르크는 갑판장갑이 그 다지 두텁지 않고 함체현측에는 무지막지하게 두터운 장갑대를 두르고, 내측에는 수밀구획 격벽을 설치한 1차대전式 전함의 장갑구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사실, 이것이 1차대전式인지? 구식인지?의 비판은 수 없이 있어 왔으나, 아직 확실치는 않다.)

이 때문일지는 몰라도 수 많은 명중탄(포탄,어뢰)이 비스마르크를 정타하였음에도 내부의 장갑방호벽까지는 꿰뚫지는 못한것으로 판단된다. 고로, 비스마르크가 명중탄을 맞고도 직접적으로 그 영향으로 침몰 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물론, 현측장갑에는 수 많은 공격을 받은 흔적을 찾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상부구조물의 피해가 막심해지면서, 더 이상의 정상운항이 어렵게 느끼고 함을 자침을 시키려는 시도를 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그 때, 결정적으로, 영국 항모에서 발진한 스워드 피시가 발사한 어뢰가 비스마르크의 함미부분에 정확히 맞으면서, 조타 키가 마비되었으며, 이로서, 직진운항만 가능한 상황이 되었고, 게다가, 비스마르크의 항진속도 역시 눈에 띠게 떨어졌다. 영국해군에겐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직진만 하는 고정목표물에 불과하였을테고, 마지막에 스워드피시가 날린 어뢰를 맞고 공중으로 들썩이다가 그 후부터는 서서히 침몰하기 시작하였다.

 

비스마르크는 상부장갑(갑판장갑)이 취약해서 영국해군 함정들에 수없이 두들겨 맞아 상부구조물의 피해가 막심했던것은 사실이다.

 

고로, 이를 토대로 본다면, 독일해군이 비스마르크를 자침시키려는 찰라에, 영국해군이 결정적 타격을 입힌것으로 보여진다. (결국, 비스마르크의 경우에는 이미 독일해군이 자침 결정을 내리지 않더라도 당시의 함의 상태는 영국해군의 집중적인 공격에 거의 마비되다 시피한 상태였고, 전투함으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린 바다에 떠 있는 구조물(언젠가는 바다속으로 가라앉을)에 불과했으므로, 영국해군에 의한 침몰은 아니더라도, 사실상의 자침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한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나의 생각에 불과하지만.....


출처: 본인작성....

posted by 지나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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