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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7.12.28 23:53
舊 일본군의 원폭개발계획

▣ 끝나지 않은 비밀 프로젝트, 일본의 원폭개발

* 일급비밀!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원폭개발
미드웨이 해전에서의 패배 후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일본 군부는 전세를 단번에 역전시킬 원폭을 개발하기로 하고 이를 동경대 이화학연구소에 지시한다. 당시 핵물리학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이었던 이화학연구소는 입자가속기와 우라늄 분리통을 도입하여 본격적으로 원폭개발에 나서게 된다.

* 흥남의 비밀 공장, 그 안에서는 무엇이 개발되었나?
1945년 3월 동경 대공습으로 일본 내에서의 개발이 어렵게 되자 일본은 북한지역에 있는 흥남에서 원폭개발을 계속한다. 당시 흥남은 질소비료공장, 화학공장등 대단위 공단이 들어선 신흥도시로 원폭개발에 필요한 중수와 전기가 아시아에서 가장 풍부했으며 해군기지가 들어서 있었다.
흥남공단은 평시에는 비료나 화학약품을 만들지만, 전시에는 바로 군사용으로 전용이 가능한 것이었다. 흥남에서의 원폭개발 비밀프로젝트 이름은 바로 < NZ프로젝트 >였다.
< NZ프로젝트 >는 수소화합물을 이용하여 항공기, 잠수함, 인간 어뢰 등의 제트엔진 연료를 개발하는 것이 주목적이었으나, V1, V2라는 장거리미사일도 비밀리에 개발하고 있었다.

* 1945년 흥남 앞바다에서 원폭 실험이 있었다?
1947년 연합군사령부 정보 보고서는 놀라운 내용이 들어있다.
1945년 8월 12일 흥남 앞바다에서 섬광과 버섯구름을 동반한 폭발이 있었으며 천 야드 정도 되는 직경의 불덩이가 하늘로 솟았다는 것이다. 섬광과 버섯구름은 바로 원폭실험의 가장 유력한 징표이고 다른 무기는 버섯구름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 보고서는 상당한 논란을 증폭시켜왔다.
8월 12일은 바로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폭을 맞은 직후여서, 일본이 흥남의 원폭실험 때문에 항복을 늦추고 있었다는 의혹을 낳았다. 또한 일본은 원폭개발에 성공했다면 인간어뢰, 풍선폭탄, 잠수함 등에 원폭을 탑재해 가미가제식으로 미국을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첫 목표는 하와이였고, 최종 목표는 미국 본토였다.

* 기상천외한 ‘풍선 폭탄’ 공격, 미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다
1940년대 미국 역사상 최초로 본토가 공격을 받아 6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9.11테러보다 무려 60여 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맨하탄 프로젝트에 따라 핵무기를 만들고 있던 공장’의 변압기가 풍선 폭탄으로 인해 멈추는 사고까지 있었다. 주범은 바로 ‘풍선폭탄’이었다.
일본은 Z기류를 이용해 9천 개의 풍선폭탄을 미국을 향해 날렸다. 이중 1천여 개가 미국 본토에 떨어져 미국 본토를 유린했다. 미국은 이 풍선 폭탄 안에 세균무기가 들어 있을까봐 초긴장상태였다.
풍선폭탄을 요격하기 위해 전선에 나가있던 전투기를 회항시키고 화생방부대를 각 산악지대에 출동시키는 등 법석을 떨었다. 그리고 이 풍선폭탄의 최종목표는 원폭을 탑재하는 것이었다.

* 잠수함  U-234호, 우라늄 560kg의 정체는?
1945년 5월. 독일 잠수함이 각종 기밀자료를 싣고, 일본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다 한가운데서 독일이 항복하자 대원들은 격론 끝에 미국에 가서 항복하기로 한다.
한편, 이 배안에는 우라늄 560kg이 들어있는 것이 밝혀지자, 미국은 경악했다. 각종 첩보로만 듣고 있던 일본 원폭개발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 우라늄 발견과 히로시마 원폭투하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미국의 히로시마투하 원폭에 이 우라늄이 포함된 것은 아닐까?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은 이 사건에 대해 많은 역사가들은 “일본이 재료(우라늄)를 받으려다 완제품(원폭)을 받았다”고 평하기도 한다.

* 일본 핵무장의 기초를 닦은 나카소네 야스히로의 야심
원자력 예산 2억3천5백만엔의 비밀

패전의 상흔이 아물기도 전인 1954년 당시 국회의원인 나카소네의 주도로 일본은 원자력기본법을 통과시킨다. 이로써 2차대전때 원폭개발의 전력을 지닌 일본은 또 한 번 핵무장의 기초를 쌓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당시 원자력기본법안의 예산이 바로 2억3천5백만 엔이었다. 나카소네는 이는 우라늄 235를 겨냥한 것이었다고 밝혀 핵무장의 의지를 드러냈다.
이 기본법통과로 인해 일본은 도카이무라(東海村) 원자력발전소를 비롯 원전건설에 박차를 가하게 되는데, 이는 에너지난 해결 뿐 만 아니라 군사용으로 전용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나카소네는 70년 방위청장관 재직 시에도 핵무장에 관한 비밀보고서를 만들었는데, 이때의 실무책임자는 이토 히로부미의 손자였다.

* 사토 에이사쿠 수상 때 이뤄진 비밀, <핵개발 보고서>
1967년 사토 에이사쿠 수상은 핵무기를 제조, 보유, 반입을 금지하는 ‘비핵 3원칙’을 발표, 이 공로로 노벨 평화상(1974년)을 수상한다. 그런데, 사토는 또 다른 한편에선 핵무장가능성을 검토하는 비밀보고서를 만들게 하여 핵에 관한 일본의 이중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러한 일본의 이중성은 그 후로도 계속돼 1995년 사회당인 무라야마 총리 때에도 핵무장을 검토하는 비밀보고서를 만들어냈다.
즉, 핵에 관한 한 일본은 표면적으로는 비핵3원칙을 내세우면서도 내면적으로는 핵무장을 향한 준비를 끊임없이 준비해온 것이다.

* 일본 고속증식로의 설계자 오마에 겐이치의 충격적 발언
90일내에 핵무기 제조가능하다

1970년 일본 고속증식로를 직접 설계한 오마에 겐이치는 일본의 핵무기제조 기술력에 대해 “일본은 준(準)핵보유국이다. 일본은 90일 안에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놀라운 발언을 했다. 정치지도자들의 강력한 리더십과 재처리, 농축시설과 그리고 고속증식로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공식적인 정상회담 뒤에 벌어지는 비공식 정상회담의 의제 1순위가 바뀐 적이 없다고 한다. 바로 재처리와 농축시설 허가다. 특히 2005년 5월 30일 일본최고재판소에서는 고속증식로 원형로인 ‘몬주’의 가동을 합법화하는 결정을 내렸다. 몬주는 사용한 핵 연료보다 많은 핵연료를 다시 만들어내도록 돼 있어 이른바 ‘꿈의 원자로’로 불린다. 그런데, 이러한 고속증식로의 문제는 무기급 플루토늄의 생산 역시 가능해 진다는데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핵! 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 일본의 원폭개발 프로젝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출처:
http://blog.naver.com/korea213/80035152516
posted by 지나가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