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야기 2008.01.15 00:22
舊독일, 판터 포탑 유용 토치카진지(Panther turrets as pill-boxes)

2차대전 중반이후, 독일군은 대전이후에 연합군에 군세가 완전히 넘어간후 물밀듯이 쳐들어오는 연합군으로 부터 독일의 도시를 보호하고 진지를 강화하기 위해 판터전차의 포탑을 떼어내어 진지를 만드는데, 이것이 의외로 구축하는 값이 싸면서도 대전차/대인 효과가 있는 무기였다. 이러한 고정식 토치카 방어물은 소수의 보병에 의해 보호되었으며 토치카진지의 전체운용을 하였다. 토치카진지의 근처는 판터주포로도 관통이 가능한 연합군 전차인 처칠전차와 셔먼 전차의 묘지가 되었다. 분명히 이러한 진지는 무시무시한 것으로써 충분한 대비없이 접근하다가는 몰살당하기 일수였다.  또한 발견하기 어려워서 토치카진지로부터 한발을 맞기전에는 정확히 그 위치를 확인 할 수는 없었다. 이 토치카진지는 이탈리아전선과 유럽동부전선에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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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전선에서 사용된 판터포탑을 유용한 토치카진지는 이탈리아 방어작전 동안에 사용되었으며 이탈리아 전선에서 활동한 독일군은 판터전차의 포탑을 콘크리트 진지에 부착하여 대전차 방어용 고정식 방어물로 사용하였다. 이때 사용된 토치카진지는 값싸고 대전차능력을 갖추었으며 토치카진지의 천정은 40mm의 장갑을, 측면은 70mm의 장갑을 장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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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동부전선에서 사용된 토치카진지는 Narva에서 Crimea까지의 전선 강화를 위해 사용되었으며, 또한 독일의 도시들을 공격하는 연합군의 육상세력으로부터 방어하기 사용되었다. 유럽전선에서 사용된 토치카진지는 전투에서 피탄되어 기동이 불가능한 전차의 포탑을 떼어내어 부착하여 사용하거나 기동이 불가능한 전차를 그대로 파묻어 사용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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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Rep 2008.01.04 14:38
헷지호그는 WW2 대전당시 나날이 강성해지는 나치독일의 U보트를 사냥하기 위해 연합군이 제작한 대잠폭뢰로켓이다. 헷지호그는 유보트를 잡기 위한 용도로 첫 작전을 임한 후 꾸준히 보급되어 유보트 잡는 첨병 역할을 지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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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폭뢰투하 방식은 소나로 적 잠수함을 탐지하며 직접 수상함 자신이 적 잠수함 위를 지나면서 장착한 대잠 폭뢰 로켓을 떨어뜨리는 형식으로 이 폭뢰는 일점 심도까지 내려가면 자동으로 폭파하는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반면 헷지호그의 경우 굳이 적 잠수함 머리위까지 수상함이 이동할 필요가 없으며 사정거리가 무려 200m내지는 250m이므로 장거리 투하가 가능했고 폭뢰와는 달리 제한 심도가 없어 적 잠수함의 선체에 닿아야 폭파하기 때문에 적 잠수함이 아무리 깊이 잠수해도 소용없는 위협적인 무기였다. 하지만, 접촉되어야만 폭발을 하였기 때문에 접촉이 안되면 "길 잃은 양"이 되어야만 하는 단점을 가지고도 있었다. 적 잠수함에게도 위협적인 무기였지만 반대로 그렇지 아니기도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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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야기 2007.12.26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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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그라드에서의 교훈을 통해 히틀러는 1942년 11월 22일, 건물파괴용 전차인 Rammtiger 1대의 생산을 명령한다. 이에 대해 Porsche는 1942년 12월 7일에서 1943년 1월 5일까지 1달밖에 안되는 짧은 기간동안에 설계를 마치고 설계도면만을 가지고 Adolf Hitler에게 보인 결과 3대의 VK4501(P) 차체를 이용하여 Rammtiger/Raumpanzer Tiger(P) 생산 허락을 얻어낸다. 이 차량은 VK4501(P)의 포탑을 제거하고 차체에 자체 방어를 위한 MG34 기관총 1정만을 장비한 경무장이었지만, 차체 전체에 80~100mm 두께의 2차 장갑판을 삼각뿔 모양(드릴 모양)으로 덮어 두꺼운 건물 외벽을 뚫고 들어갈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스탈린그라드의 당시 폐허가된 건물 더미 속에서 저항하는 러시아의 저격수에 의해 작전 자체가 무산되고 커다란 인명 피해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대응무기가 없어 고전한 것을 타파하기 위해 생산된 것인데, Hitler의 판단으로는 향후의 전투 양상이 주로 시가전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하였고 벽 뒤에 숨은 소수의 저격병을 향해 뚫고 들어가 밟아 뭉게는 속시원한 전차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 외에도 시가전을 대비하여 3호 전차의 차체를 이용한 sIG-33B와 4호 전차의 차체를 이용한 Brummbaer 역시 비슷한 시기에 개발명령이 떨어졌다.

 

1943년 5월, 3대의 Rammtiger가 완성되었으며 8월까지 실험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1943년 8월 이후 이들 Rammtiger 3대의 행방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는데, 실전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니벨룽겐베르게 근교의 실험장에 남아있었다는 설과 함께 Rammtiger 생산된 시점인 1943년 5월에는 VK4501(P) 원형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Rammtiger는 1/10 또는 1/15 scale 의 mock-up model로만 존재하고 계획은 취소되었다는 설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독일은 전차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1/1 모크업을 제작하기도 하지만 실험성격이 강한 것에 대해서는 이보다 작은 1/10 또는 1/15 정도의 모크업을 제작하는 경우도 많아 모크업에 대한 신빙성을 높여주고 있다. 여하튼 확인 되지 않은 설에 의하면 Rammtiger 1대가 1943년 말, 동부전선에서 실전 평가를 받았는데, 독일 국내에서는 건물벽을 가볍게 뚫고 들어가 Rammtiger의 효용성을 입증하는 듯 했으나,  얼마뒤 동부전선에서 실시된 실험에서는 실패를 했다고 한다. 건물 벽을 뚫기는 했지만, 독일 건물보다 약한 벽 전체가 무너지면서 Rammtiger가 깔려 손실되고 말았으며, 이 차량이 나중에 소련군에 노획당하여 소련군의 전차개발에 힌트를 주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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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야기 2007.12.25 21:55
독일,음파대포(Germany, Sound-Gun)

독일군은 제2차세계대전中 실로 놀랄만한 신무기들을 많이 개발하였다. 그들이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었다면 전쟁의 양상은 전혀 누구도 예측불가능한 상태로 흘러가고 있을것이란 말이다.
V1무인항공유도폭탄,V2지대지단거리탄도탄,V3초장거리포,바써펄,라인보테,라인토흐터 등등..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신종무기들을 토해내면서 패전前까지도 연합국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독일군은 연합군들의 공중세력과 육상세력이 격해지자 이를 단번에 타개하고자 또 다른 신무기를  개발하는데 그것은 이른부 지대공/지대지 음파대포이다. 이 지대공 음파 대포는 보통 인간의 귀에 들리지 않는 초저음의 음파를 발산하여 음파가 발산된 지역을 걷는 군인이나 비행기 또는 탱크 안에 탑승하고 있는 군인들을 기절 혹은 죽게하는 장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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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을 이용해 음파 대포를 실험한 독일의 과학자들은 음파 영역을 걷는 동물들이 겉모습이 흉하게 일그러진뒤 몸이 풍선처럼 부풀다 끝내 폭발을 해버리는 끔찍한 모습을 봤다고 하며, 곧이어 빠른 시일내 음파대포가 실전에 배치될 수 있을것이라고 판단한 학자들은 실험 영상을 관람한 군의 장성들이 너무 무기가 끔찍하고 잔인하다는 결론을 내리자 도중 하차를 시키고 말았다.


그후 연구소의 지하실에 있던 실험용 음파대포는 후에 독일군 신무기 연구소 지역을 점령한 미군에 의해접수가 되었다. 고 하나 그 이후 음파대포는 더 이상 개발이 되지 않았거나 비밀스럽게 새 기종으로 개량된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제2차대전後 이 계획은 미군에 의해 압수되고 현재에 이르러 미군이 테러리스트 제거와 효율성 높은 전투를 위해 은밀히 음파대포의 계획을 재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방사형 스피커 직경 : 3m+
음파대포사정거리 : 50m   의 제원을 가진다고 한다..

요즘 미국이 고주파를 이용한 신무기를 개발하였다고 한다.
다음은 미국이 요즘에 만들었다는 음향포에 대한 설명이다.
이 대포는 고주파를 발산하기 때문에 적군 병사가 이 대포의 전후좌우 90 m반경 이내에 머무를 수 없다고 합니다. 또 포의 유효 사정은 270m이며, 고주파를 회피하기 위하여 귀를 막아도 쓸데 없다고 합니다. 음향포는 2100에서 3100 Hz의 고주파음을 발한다고 합니다. 이 음향포를 개발한 회사의 연구 개발자에 의하면, 이러한 소리에 장시간 노출해지면, 인체의 기능이 저하하고, 청력 장해등의 후유증이 남을 만큼 위험한 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다음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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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것과 크기만 차이날 뿐 거의 흡사 한 것으로 보여진다.
독일의 음향대포가 미국을 통해 다시 환생하였다고 보면 될까?

출처: 본문은 본인작성, 사진은 인터넷 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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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야기 2007.12.25 21:41
보르텍 대포라고 불리우는 대포는 독일군 신무기 연구소의 소장인 오스트리아계 자이머 마이어 박사에 의해 개발 되었다. 보르텍 대포의 특징은 작은 발전소에서 강한 공기압을 만들어 이를 하늘에 날아다니는 전투기와 폭격기등 근처에 발사한뒤 비행기들이 회오리 바람에휘말려 추락하게 만드는 신무기였다. 실험을 통해 실전에서 충분히 사용될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나 1945년 2월 스위스 국경에 있던 유일한 보르텍 대포의 모터 공장이 갑작스런 폭격을 받아 산산히 부서져버린 관계로 개발이 중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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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rel Length : 12m
Barrel Diameter : 700mm
Nozzle Size : 13mm
Range : 2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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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야기 2007.12.25 21:35
V-3호츠드르크품페(Hochdruckpumpe)

흔히들 V3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Hochdruckpumpe(호츠드르크품페)"이다. Hochdruckpumpe(이니셜은 HDP)는 영어로 High pressure pump(고압 펌프)라는 의미로, 이 포의 정식 분류 명은 "다중 연소 약실포"이다.


V-3 호츠드루크품페(Hochdruckpumpe)는 2차 세계대전 동안에 사르 로에츨링(Saar Roechling)에 의해 설계된 대포였다.140m나 되는 장포신의 이 15cm구경 대포는 140kg의 포탄을 165km까지 날리는 것으로 계획되어졌다고 전해진다.

 

V-3는 발사시에 포탄의 초구포속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본 피르퀘트(von Pirquet) 남작의 개념에서 나온 전기장치에 의한 순차적인 전기동작경사측면약실방식(=보조챔버방식)을 사용하였는데, 이 방식은 초구포속을 1500m/s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발사되는 길쭉한 모양의 포탄은 안정된 궤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꼬리날개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25년 후에 캐나다의 마틀렛(Martlet) 계열 투사체들이 사용한 방식과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미군의 리만(Lyman)과 하스켈(Haskell)은 1880년대에 이런 개념을 가진 시작품을 만들었으나 실패하였었다.근본적인 실패원인은 발화한 포연이 포탄이 지나가기 전에 미리 앞서나가 포탄의 추진력을 잡아먹기도 하고, 포탄이 지나간 다음에 발화하여 포탄에 추진력을 실어주어야 할 보조장약들이 미리 터져 방해가 되는 일이 생기고는 하였기 때문이다.그러나 1941년 사르 로에츨링이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전기동작방식을 제안하였다.

 

20mm 구경의 시작품이 폴란드의 미스드로이(Misdroy)에 있는 테스트 사이트에 만들어졌고, 1943년 4-5월에 걸쳐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히틀러는 이 대포가 V-1과 V-2를 보조하는 3번째의 테러무기가 될 수 있으며 1일 600t의 폭탄을 런던에 떨굴 수 있다는 말에 설득되었고, 영국을 포격하기 위하여 프랑스에 이것을 담을 50개의 콘크리트 벙커를 지을 것을 명령하였다. 우선 5개의 대포가 웨제(Wiese)작전이라는 이름 하에, 런던으로부터 165km 떨어진 칼레(Calais)근처의 미모에퀴즈(Mimoyecques) 지역에 설치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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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포들은 5.2m의 두꺼운 콘크리트로 방호된 30m의 석회함 언덕 안에 고정된 각도로 만들어졌다.경사측면연소실들은 내강의 3.65m간격마다 위치해 있었는데, 이 모듈화된 병기는 몇 발 발사후에는 수명이 된 측면 연소실을 부분적으로 교체할 수 있는 구조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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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명의 강제노동자들이 1943년 9월부터 석회암 산의 표면으로부터 30m아래에 최초의 터널을 파기 시작하였다. 프랑스의 저항세력들은 연합군에게 거의 즉시 공사에 대한 새 첩보를 보냈고, 공사가 시작된 지 2달만에 이 공사를 저지하기 위한 연합군 중폭격기들의 폭격이 시작되었다.그러나 공사는 연합군의 폭격(그중에는 전함 티르피츠(Tirpitz) 사냥에 썼던 5.4t의 톨보이(tallboy) 폭탄도 있었다고 한다)에 별 영향을 받지 않고 순탄하게 진척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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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44년 7월 6일, 3발의 톨보이 폭탄이 열려져 있던 포의 갱도를 따라들어가 30m정도 굴러들어간 다음에 폭발하는 사건이 터졌다.이 사건으로 수십 명의 일꾼들이 사망하였으며,공사는 이 시점에서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연합군은 폭격의 성공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미모예퀴스와 다른 벙커들을 날려버리기 위하여 새로운 방법을 구상했다.미 공군 측에서는 아프로디테 계획(Aphrodite Project) 미 해군 측에서는 모루 작전(Operation Anvil)이라는 이름 아래에, 무선으로 원격조종되는 비행기 B-17 이나 B-24에 10t정도의 폭탄을 싣고 목표물 근처에 떨어뜨린다는 계획이 연구되었다. 조종사와 부조종사는 비행기를 이륙시키고 동행하는 비행기가 이 (실제적으로)미사일을 목표까지 정확하게 유도하는 동안 낙하산으로 탈출한다는 계획이었다.그러나 작전은 실험 후에 낮은 성공 가능성과 몇 명의 사상자를 낸 이후 1944년 8월에 중단 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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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8월 말에 독일군은 영국군이 바로 앞에까지 진격해오자 이 시설들을 포기하였고,영국군은 미모예퀴스 단지를 접수한 다음 1945년 5월 9일 폭파시켜 버린다. 또한 2개의 작은 크기(포신 길이 45m)의 V-3가 1944년 12월 아르덴느 진격작전의 지원을 위하여 앤트워프(Antwarp)와 룩셈부르크(Luxemburg)에 만들어졌는데,신뢰성은 별로 없다는 것으로 판명되었고,몇발이 발사되기는 했으나 결과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출처:
http://blog.naver.com/korea213/80014631109 본인의 네이버 블로그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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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야기 2007.12.18 10:17
舊독일, 전차의 조준경 사용법.... 클릭하면 더 크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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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Rep 2007.12.18 10:11
스타디아 라인(stadia line)이 대체 뭐시다냐?

한글파일로 작성을 하여 첨부하였습니다.
별도의 포스팅은 하지 않았습니다..
작성은 본인이 하였습니다.
본인의 네이버블로그(http://blog.naver.com/korea213 에도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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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Rep 2007.12.17 10:49

JS-2, 스펙에서 밀리는 티이거-1을 실전에서 라이벌로 만들게 된 이유는?


소련군이 1943년 노획한 독일군 티이거-1을 정밀분석하여 당시 주력전차였던 T-34와 KV-1으로는 성능상 열세라고 판단해 개발을 시작 한 것이 JS전차의 탄생배경이다. JS전차 시리즈중에서 가장 먼저 빛을 보게 된 것은 85mm주포 장착의 IS-85(후에 JS-1)이다. JS-1은 1943년 8월에 스탈린의 직접적인 지시로 생산이 결정됐고, 당시 공산당서기장이었던 요제프 스탈린의 이니셜을 따서 JS重전차로 명명되게된다. 하지만, 85mm주포로는 독일군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여 JS-2전차를 기획하게 된다. 그러나 히틀러의 티이거-1을 구축하기 위해 태어날 JS-2전차는 주포 탑재 문제로 인해 그 임무가 기존의 대전차 구축 임무에서 보병지원용 임무로 변하면서 전차의 용도 또한 변하여 만들어지게 되었다. 주포는 기존의 85mm보다는 강화되었지만 전차포가 아닌 야포인 122mm포를 탑재하여 강력한 적(독일군)의 방어선을 공략, 돌파하는데 쓰이게 된다. JS-2전차는 JS-1전차의 특징에다가 장갑의 각도를 변화주어 피탄경시를 향상시킨 개량형의 전차이다. 기존의 전차인 JS-1보다는 방어력이 더 좋아졌다고 볼 수는 있는 것이다. 암튼, 이 전차는 JS-1보다는 더 개량되고 개선 된 점을 가지고 있었기에 보병지원으로서의 임무수행뿐 아니라 적(독일군) 주력전차인 티이거-1을 상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막상 실전을 치루다 보니 월등한 스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독일군의 티이거-1을 상대하면서 밀리는 양상을 보여주곤 하였다. 결국 JS-2는 JS-3로 버전업 당하는 신세에 내 몰리게 되는 신세로 전락한다. 그럼 왜? JS-2가 실전에서 티이거-1에게 절절 매면서 밀리는 양상을 보였으며, 실전에서는 막상 스펙이 딸리는 티이거-1과 라이벌 구도를 만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가 궁금하기에 좀 알아보기로 하자.

 

JS-2는 매우 심각한 결점이 있었다. 3가지정도로 분류 할 수가 있는데...

 

첫번째는 주포의 연사속도.
두번째는 주포의 원거리 사격시의 명중률.
세번째는 교전시의 사용가능한 포탄의 탑재량. 등이다.


첫번째는 주포의 연사속도이다.
JS-2의 주포가 전차포가 아닌 야포였기에 신속한 발사가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며, JS-2의 포탄은 대형이라서 분리장약식으로 운용되었는데, 이 때문에 포탄과 장약을 따로 따로 분류하여 전차내에 적재하여야만 하였다. 그런데 이게 너무도 내부용적을 잡아먹는 바람에 장전수를 위한 배려가 거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JS-2의 주포는 그 태생이 신속한 사격보다는 정밀한 사격을 하는 야포였기 때문에 연사속도면에서 엄청느렸다. 분당 발사속도가 아무리 빨라봐야 4발, 보통은 2발이 평균이었다. 그것도 전차가 정지하였을 때의 분당발사속도이고 전차가 기동중에는 전차포탄을 제대로 장전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1발을 발사하는데 2분이 넘게 걸렸다. 그 사이 적(독일군)전차인 티이거-1은 분당발사속도가 4발이기때문에 2분이라는 시간동안 최소 8발이상을 연사 할 수 있었다. 누가 보아도 누가 우세인지는 확연히 드러나는 항목이다.

 

두번째는 원거리 사격시 포탄의 명중률이다.
정밀하게 설계되고 제작되어진 독일전차보다는 구조적으로 간단하고 생산이 쉽게 만들어진 소련군에게 대개 해당되는 사항이다. 당시 소련 JS-2의 경우에는 1500m이상의 원거리 사격시 명중률이 거의 0이라고 봐도 무방 할 정도로 암울한 수준이었다. 독일군의 경우 3000m의 거리에서 포탄을 날리는 것과 비교하면 참 비교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독일군은 평균적으로 2000m거리에서 교전을 위한 포탄을 발사하였다고 전해지니 소련으로서는 참 막막하기만 할 따름인 상황이었던 것이다.


세번째는 사용가능한 포탄의 탑재량이다.
JS-2는 통상적으로 적 전차(티이거-1)을 격파하는데 포탄 3 ~ 5발을 소요하였는데, 이들 전차가 적재하고 다니는 포탄의 량은 고작 28발이다. 독일군의 티이거-1의 전기,중기형은 92발, 후기형이 110발을 적재하고 다니면서 넉넉한 포탄 수납량을 자랑하는데 비해 JS-2는 많지않은 포탄을 가지고 다녀야 하였으므로, 만성적인 포탄 수급의 곤란함을 겪어야만 했다. 적 전차(티이거-1)를 완파시키는데 필요한 포탄의 량을 3발기준으로 할 때, 9대의 티이거-1을 격퇴시키면, 포탄이 모자라 더 이상 전투가 불가능하였으며, 5발을 기준으로 하였을 경우에는 적 전차(티이거-1) 5대를 완파하고 6대째에 교전중에 포탄이 바닥나는 상황이 일어났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JS-2는 티이거-1을 상대로 하여 원거리에서 상대를 하자니 명중률이 크게 떨어지고, 근거리에서 상대를 하자니 피해가 월등하게 크게 날 거 같고, 기동전을 하자니 포탄의 명중률이 흔들리고, 또한 포탄의 탑재량도 넉넉지 않기 때문에 스펙에서 떨어지는 티이거-1을 실전에서는 라이벌 구도로 형성하게 되었다고 본다.

출처: 본인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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