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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Rep 2008.02.08 02:26
전차의 방활구에 대해서...
방활구란, 방어 활주용 구조물의 약칭이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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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야기 2008.02.03 23:59

영국군을 비롯한 연합군의 도버해협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구축한것이 바로 대서양 방벽으로 그 방벽의 거리만도 3860km에 달한다. 다른 이름으로는 도버해협을 방어하는 요새선이라고 하여 도버해협&노르망디방어선 이라고 한다. 노르망디는 왜? 꼈냐고 한다면... 노르망디까지 이 요새선이 구축되려고 계획상에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굉장하지 않은가.. 노르망디까지 연결이 될 뻔 하였다니.. 하지만 이 요새선 역시 다른 요새선들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구축되지 못하고 연합군에게 노르망디에 상륙을 허용하여 공사는 사실상 중지되고 만다. 다음은 대서양방벽의 일반적인 구성그림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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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본인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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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야기 2008.02.01 00:26
항공모함의 주요 제원을 살펴보자면,

배수량: 15만톤.
탑재항공기: 400여기.
탑재인원:  112000여명.
전체길이: 503미터.
(미국의 니미츠급 항공모함은 길이 330m)

최대너비: 68미터.
(한국의 구축함 KDX-2 1번함은 폭이 15m 정도.)

최대탑재기수: 456대.
(니미츠급 항공모함은 85대 정도 적재.)

기타탑재무장: 전차 300여대.
(한국의 LPX는(개발중) 전차 최대 적재량 70대.)

중화기 부대 1200여명.
(한국의 고준봉급은 완전무장한 군인 200여명 가능.)

곡사포 10문.

자체방어무기: 30밀리 쌍발 대공기관총 240여문(도합 30밀리 480문).
브래들리 장갑차 기관총이 30mm.

자함방어어뢰: 20문.
(현대식 잠수함의 대부분의 어뢰 발사관이 6발 및 8발.)

폭뢰운용갯수: 52개.
(현대의 구축함에 대한 정보에는 폭뢰 발사관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비교 불가능.)

400밀리 함포 6기.(거의 야마토급.)
(한국 해군의 KDX-2 1번함 이순신함의 함포가 127mm 급.)

이와 같이 일반 전함을 능가하는 전투력과 방어력을 갖춘 항모였다.
수상방어에는 유보트 30여대가 좌우로 방어하고, 주변에는 구축함 20여대가 방어진지를 구축한뒤 원래는 텔피츠 전함이 선두로 서서 방어하기로 했었다. (독일해군의 모든전력을 다 긁은 듯 한.....)
하지만 텔피츠가 피오르드 해안에서 침몰하자 독일 해군에서는 당황하여 함포를 달게 되었다.  장갑판도 워낙 막강해 측면 장갑은 1미터에 달하는 압연강판를 장착했었다.

상부 갑판은 폭탄에 맞아도 즉시 교체하기 쉽도록 아주 작은 강철판 형태로 부착했다.

함장포함 승무원은 10000여명 중화기 부대1200여명 총합 모두11200여명이 탈 예정이었다. (한국 광개토 대왕함 승무원이 317명.)

400여개의 방수구획실로나누어져있어서 100개의 방수 구획실이 침수되더라도 배는 부상 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서 절대 침몰하지않는 항모가 되려고 하였다.

이론적으로 이 항모를 파괴할려면 적어도 항공기 1000여대가 필요하고, 어뢰는 정통으로 맞지 않는한 200개 정도는 거뜬히 막을수 있다고 자랑했다.
(세계 최고의 불침함(不侵艦) 야마토도 어뢰 10발에 격침.)

만약에 독일이 이 거대 항모를 바다에띄웠다면, 영국은 아마 초토화 되었을것이다.
(영국뿐인가, 미국까지 위험했지.  소련은 벌써 작살났고.)

결론을 말하자면, 엔터프라이즈 항모 두대를 붙이고, 야마토 포를 얹은뒤에, 독일 공군기지를 덮어놓고, 비스마르크 승무원의 10배의 달하는 수병을 긁어모은 다음에, 온갖 잡무기들을 다 발라놓은 것.

이거 현역에서 뛰다가 침몰했으면 독일 해군 그날로 전멸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실행에 옮기려다 너무 많은 비용과 노르망디 상륙작전 성공으로 인해 실패했다. 너무나 많은 수의 승무원도 문제가 되엇다

1만명이나 되는 사람을 싫고 항해를 하다가 침몰이라도 한다면, 너무나 큰 손실이 될게 뻔했기 때문이엇다.

또한 독일은 실패를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는데, 이 사실들은 영국정보에 의해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수상함대 취소계획에 의해 제플린항모는 취소되었지만, 최대항모는 히틀러도 생각에 두었던 것이었다.

사실 히틀러도 처음엔 거대항모계획을 반대했지만 영국 점령이라는 임무아래 흔쾌히 허락하고 말았다.

우즈카이 비밀 조선소에서 조립만했다.

각 지역에서 열차로 수송된 함모 조각들은 차근차근 독일해군으로 인도되었고 90퍼센트 공정을 완성하자마자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인해 배를 뛰울수없어 폭파시켰다고 한다. (으이구 아깝다.. 거의 만들어 놓고 자폭처리라니...)

500미터나 되는 거대한 선채로 인해 다이너마이트 1000여개를 주여기관가 장갑판 사이에 끼워서 모두 3일에 걸쳐 폭파시켰다.

후에 영국 정보 기관과 미국 정보기관에 의하면, 이 항모가 영국해협에 떴더라면 영국은 쉽게 항복했으리라한다.

출처:red2.net
posted by 지나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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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Edit/Del  Reply 무섭다..;;

    저거 나오면 미해군도 두려워 하겟다.. 천하의 이지스함 60대 이상을 보유한
    미국이....;; 안돼 미국 꿇지마

    2008.10.12 22:13
    •  Addr  Edit/Del 지나가다가

      미국이건 러시아건, 누구건 다들 독일의 군사기술을 토대로 군수산업을 일으켰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2008.10.15 13:13 신고
  2.  Addr  Edit/Del  Reply 전쟁광

    근데 독일은 저항모를 만들지라도 승무원과전차그리고 함재기를 확보하지못할것이란게함정이죠

    2014.11.29 13:54

밀리터리Rep 2008.01.21 00:06
측면장갑에 3발정도를 정통으로 맞고, 큐폴라쪽에 정통으로 맞은 것 같습니다. 다만, 큐폴라에 맞은 포탄은 관통 구멍만을 낸채 튕겨나간것 같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지나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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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야기 2008.01.19 10:52

1. 전함 비스마르크와 티르피츠

군함의 연구에 있어서, 비스마르크와 티르피츠라는 이름은 하나의 전설이 되어 있다. 하지만, 계획만 있었고 실제로 건조되지 못했던 H급 전함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배들은 세계 최대의 전함이 될 수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현대의 니미츠급 원자력 항모보다도 크다.

나치 독일은 1936년까지 군비 확장을 빠르게 진행시켜 왔으며 그에 따라 해군도 세계 최강이 될 주력함을 설계하게 되었다. 해군은 잠수함대 건설 사업과 병행하여 두 척의 최신식 전함 F와 G의 건조를 시작한다. 이 두 척이 나중에 전함 비스마르크와 티르피츠가 된다. 기본 설계에 중요한 요인들 중의 하나는 평균 수심 36피트인 키일 운하였다. 이 운하는 전함의 건조가 이루어지는 함부르크와 빌헬름스하펜으로부터 시험 운항을 하게 될 발틱해를 이어주는 통로이다. 1936년의 런던 해군 조약에 의해 16인치(406mm) 포가 허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14.96인치(380mm) 포를 고려했다. 그 정도면 어떤 군함의 장갑도 뚫을 수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절약된 배수량으로 더 두꺼운 장갑 혹은 더 빠른 속도 혹은 더 얕은 흘수선 등의 이점을 얻을 수 있었다.




2. H-39의 설계
독일은 1938년에 영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자, 막강한 화력과 더 넓은 작전 범위를 가진 균형잡힌 수상함대 건설을 위한 Z-Plan을 채택한다. 해군은 이 계획은 10년 후인 1948-1949년에 완성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았고, 히틀러 자신도 1946년 이전에는 해군이 활약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전쟁은 너무 빨리 시작되었다.

Z-Plan 수상 함대의 가장 핵심은 6척의 H급 전함들(H, J, K, L, M, N)이었다. 1944년까지 6척 모두 취역시키라는 히틀러의 명령이 1939년에 있었고, 7월 15일에 H의 건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10월 10일, 3,500톤의 철강이 사용된 상태에서 건조가 중단되었다. 1940년, 조선대에 놓여졌던 용골은 해체되어 U 보트들의 건조에 사용되었다. 그 당시에는 U 보트의 건조가 더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나머지 5척의 건조는 시작되지 못했으며 1939년 말부터 1940년 사이에 건조 명령이 취소된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H급의 설계는 몇 단계에 걸쳐 진화하게 된다.

1937년 최초의 설계가 시작될 때, 독일 해군 지휘부가 요구는 다음과 같았다.

1) 5만톤 이상의 기준 배수량
2) 8문의 16인치 주포, 16문의 5.9인치 부포, 다수의 105mm(4.1인치) 및 37mm 대공포, 6문의 21인치 어뢰 발사관
3) 30노트의 최고 속도
4) 19노트 속도에서 16,000해리의 항속 거리
5) 16인치 포에 대한 대응 장갑 및 250kg(551파운드) 작약량의 어뢰를 방어할 수 있는 방어력

아돌프 히틀러가 초 거대 구경의 포를 장착할 것을 요구했으나 1939년까지는 H급의 주포는 16인치에 머물러 있었다. 16인치 함포에 대한 개발 작업은 1934년에 이미 시작되어 있었기 때문에 포대 사격 시험, 사거리 측정, 일제 사격 시험까지가 완료된 상태였다.

초 거대 구경 포에 대한 망상은 히틀러가 1941년 초에 800mm 포의 장착을 요구하면서 극에 달한다. (도라 열차포의 구경이 바로 800mm이다.) 그리하여, 에리히 레더 제독은 베르너 푹스 제독으로 하여금 800mm 포를 장착하게 될 경우 엄청나게 커질 전함의 크기와 그에 따른 막대한 건조 비용 및 시간의 지연을 들어 히틀러를 설득하도록 한다. 이러한 노력은 성공을 거두어 히틀러는 H-39 설계에서 채택되었던 16인치 쪽으로 물러 선다.

이제부터는 영국 왕실 해군이 주적이 되었기 때문에 대서양에 해외 기지를 하나도 가지지 못한 독일 해군에게는 항속 거리가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연료 소모율이 낮은 디젤 엔진이 채택된다. 증기 터빈 방식이 출력을 올리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데 비해 디젤 엔진은 짧은 시간에 최고 출력에 도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디젤 엔진을 위해서는 더 넓은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보다 큰 구경의 부포를 장착하려는 계획이 불가능해졌고, 부포는 5.9인치 포로 결정되었다.

기본적으로, H급은 비스마르크급의 화력 및 방어력 증가형 버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1939년 봄까지의 설계 제원은 다음과 같다.

* H-39의 제원 *
만재 배수량 : 65,592톤
전장 : 266m(흘수선)
전폭 : 37m(흘수선)
흘수선 : 11.2m
주포 : 16인치/50 8문
부포 : 5.9인치/55 12문
대공포 : 4.1인치/65 16문, 37mm/83 16문, 20mm 32문
어뢰 : 21인치 발사관 6문
정찰기 : 4대
속도 : 30노트
추진력 : 최대 147,950마력 (과부하시 162,750마력)
연료 : 10,000톤
항속거리 : 19노트로 16,000해리
장갑 : 상부 측면 장갑 5.9인치, 하부 측면 장갑 11.8인치, 상갑판 2인치, 하부 장갑 갑판 3.9인치


H-39의 라인 드로잉
16인치 SKC/34 주포는 포신이 매우 두꺼웠기 때문에 포구를 16.54인치로 깎아낼 수도 있었다. 이렇게 구경을 늘리면 구경장은 50에서 48로 줄어든다. 16.54인치/48 포는 나중에 H-41과 H-42의 주포로 채택된다. 독일은 다른 나라들이 버린 2연장 포탑 방식을 선호했는데, 그것은 하나의 포탑이 피격당했을 때 화력의 손실이 적기 때문이다. 3연장이나 4연장 포탑은 포문수에 비해 무게와 공간을 적게 차지하여 경제적이지만, 보다 복잡한 기계 장치의 설계 및 제작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독일 해군에게는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느껴졌다.

포탑은 제작되지 못했지만, 7문의 16인치 함포가 실제로 제작되었다. 이 포들은 아돌프 포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해안 포가 되었다. 그 중 3문은 노르웨이의 나르빅 항을 방어하기 위해 사용되었다가(원래 4문이 예정되었으나 1문은 수송 중 상실) 전후 노르웨이에 넘어가고, 1954년에 마지막 사격을 해 본 후 1968년에 팔렸다. 나머지 3문은 영국 해협 쪽에 설치되어 린데만 포대가 되었으나 전쟁에서 살아남지 못하였다.




3. H-40

H급 전함의 건조는 2차 대전 개전으로 인해 연기되었지만, 히틀러는 설계 작업은 계속할 것을 명했으며, 1940년 7월에는 해군에 새로운 설계안 개발을 시작할 것을 지시한다. 전쟁 중의 경험을 토대로 많은 개선점이 제시되었는데, 대부분이 방어력의 증가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H-40의 A형과 B형 설계안이 나온다.

H-40 A형
만재 배수량 : 64,575톤
전장 : 270m
전폭 : 38m
흘수선 : 9.8m
주포 : 16인치/50 6문
추진력 : 226,850마력
속도 : 30노트 이상

H-40 B형
만재 배수량 : 68,906톤
전장 : 287m
전폭 : 39m
흘수선 : 9.8m
주포 : 16인치/50 8문
추진력 : 236,700마력
속도 : 30노트 이상

A형은 H-39의 속도와 배수량을 유지한 채 장갑을 늘린 것이다. 함포 제작 회사인 크루프사는 다른 무기의 주문량도 많았기 때문에 16인치 함포를 제작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주포가 6문으로 줄어든 A형 설계는 주포의 공급 부담을 덜어주었을 것이다.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추진 방식에 있었다.

A형 설계는 크기와 배수량이 H-39와 비슷하지만, H-39 이상의 속도를 내도록 하기 위해 더 많은 출력을 필요로 했다. 출력의 증가를 위해선 H-39의 3축 추진 대신, 4축 추진이 필요했다. 그러나 A형 설계의 전폭 내에서 4축 추진을 위한 디젤 엔진 배치는 불가능했다. 그러한 배치는 어뢰 방어 구획을 줄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추진 방식을 증기 터빈으로 바꾼다면 3축 추진으로도 필요한 출력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기관실의 길이가 길어지게 되고 따라서 기관실을 보호하기 위한 측면 장갑도 길어질 수밖에 없어서 배수량이 더욱 증가하게 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래서 결국 해결책으로 4축 추진을 채택하되 2축은 디젤 엔진으로 2축은 증기 터빈으로 돌리는 방법이 제시되었다.

디젤 엔진 기술의 발달로 인해 보다 강력하면서 공간은 더 적게 차지하는 디젤이 사용 가능했기 때문에 B형 설계에는 디젤 엔진 사용이 가능해졌지만, B형에도 A형과 같은 디젤 엔진과 증기 터빈의 혼성 배치가 사용된다.

H-40의 두 가지 설계안은 어뢰에 대한 방어력의 증가가 두드러진다. 그 주된 시도는 함내의 주요 부분들을 어뢰가 맞아 폭발하는 곳으로부터 최대한 먼 거리에 둔다는 것이다. 그 거리가 늘어날수록 방어력은 향상되겠지만 함의 전폭이 증가하게 된다. 이것은 함의 외벽으로부터 함 주요부의 마지막 방어를 담당하는 격벽까지 6m 이상의 공간을 주는 것으로 성취되었다.




4. H-41

1941년에 히틀러는 전함 H와 J를 즉시 건조할 것을 명했는데, H-40 설계안은 파기되고 모든 노력은 전함 H의 방어력 향상에 집중된다. 방어력 향상으로 인해 배수량이 계속 증가되었기 때문에 기동력을 희생시키는 것이 허용되었다.
항공기의 위협이 더욱 증가된 전쟁 중의 경험으로, 전함의 수평 방어(갑판 장갑)이 중요하다는 것이 인식되었다. 갑판 장갑의 증가는 함포전에 있어서도 방어력의 향상된다는 장점이 있었다.

모든 독일 군함들은 수심이 얕은 북해를 항해해야 하기 때문에 흘수선이 11미터 정도로 제한되었다. 흘수선 제한 내에서 H급 전함의 갑판 장갑을 늘리기 위해서는 다른 부분에서의 경량화가 필요했다. 연료 탑재량을 줄이는 것이 가장 큰 몫을 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최대 항속 거리가 25% 정도 줄어들었으며, 결국 독일 해군 최고 사령부는 수심이 깊은 대서양의 정박지 획득이 곧 가능하리라는 희망으로 경량화를 포기하고 흘수선 제한을 초과하는 것을 허용하게 된다.
이러한 설계 변경들로 인해 H-41의 제원은 다음과 같이 커진다.

다음은 H-41의 제원이다.
만재 배수량 : 74,799톤
전장 : 275m(흘수선)
전폭 : 39m(흘수선)
흘수선 : 12m(만재시)
주포 : 16.54인치/48 8문
부포 : 5.9인치/55 12문
대공포 : 4.1인치/65 16문, 37mm/83 16문, 20mm 32문
어뢰 : 21인치 발사관 6문
정찰기 : 4대
속도 : 28노트
추진력 : 최대 162,750마력
연료 : 11,810톤
항속거리 : 20노트로 20,000해리
장갑 : 상부 측면 장갑 7.8인치, 하부 측면 장갑 11.8인치, 상갑판 3.2인치, 하부 장갑 갑판 4.7인치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16인치/50 SKC/34는 16.54인치로 개조가 가능하다. H-41에서는 16.54인치 포가 장착된다. 크루프사 측에서는 구경의 변화는 미미한 것이며 H-39 용으로 연구되었던 탄약 관련 장비들로 직경이 늘어난 새 탄약들도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16인치 포탄을 특수한 장약을 사용하여 16.54인치 포에서 쏘게 되면 사거리의 증가가 기대되기도 했으나 16.54인치 포는 실제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H-41은 H-39보다 크지만 출력은 같아서 속도가 희생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해군 최고 사령부는 속도는 방어력보다 중요한 요소가 아니며 희생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린다.
해군 최고 사령부는 1941년 5월 27일 전함 비스마르크 격침으로 충격에 휩싸인다. 그리하여 비스마르크가 당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에서 H급 전함의 프로펠러와 방향타를 방어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게 된다. 그에 따른 설계 변경 중에는 프로펠러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폭약으로 방향타를 분리해 버릴 수 있는 옵션도 있었다. 같은 시기에, 해군 설계자들은 여전히 어뢰에 대한 방어력에 만족하지 못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들과 수중 폭발에 대한 방어로 H-41 설계를 개선하였다.


* 1941년 11월 15일의 H-41 개선안 *
만재 배수량 : 77,752톤
전장 : 282m(흘수선)
전폭 : 40.5m(흘수선)
흘수선 : 12m(만재시)

1942년 2월 8일, 알베르트 슈페어가 군수성 장관이 된 이후부터 H급의 설계 연구는 덜 중요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많은 설계 팀들이 새로운 U 보트 및 다른 프로젝트들을 위해 재배치되었다. 이후의 H-42, 43, 44 설계는 토프 제독 휘하의 새로운 그룹에 맡겨졌다.



5. H-42
1942년 후반, 히틀러는 해군 최고 사령부에 초대형 전함의 건조 가능성을 검토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모든 크기의 제한을 배제하고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하는 설계가 시작되었다.

1) 약 30노트의 속도
2) 항공 투하 폭탄과 대낙각 포탄을 막아낼 수 있는 갑판 장갑
3) 기뢰의 수중 폭발에 대한 방어력, 특히 기관부
4) 다른 부분의 설계상 특징과 부합하는 구경의 주포

H-42 설계안으로부터 초거대 전함으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주포는 H-41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반면, 장갑은 끊임없이 증가했으며 그에 따라 점점 더 무거워지는 함을 30노트 이상의 속도로 움직이기 위하여 필요한 추진력도 계속 증가했다. 전쟁을 통해 항공 투하 폭탄과 대낙각 함포탄에 대한 전함의 취약성이 드러나면서 갑판 장갑은 최고로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배수량이 증가함에 따라 크기도 증가하였다.


* H-42의 제원 *
만재 배수량 : 96,451톤
전장 : 304m(흘수선)
전폭 : 42m(흘수선)
흘수선 : 12.7m(만재시)
주포 : 16.54인치/48 8문
부포 : 5.9인치/55 12문
대공포 : 4.1인치/65 16문, 37mm/83 16문, 20mm 24문
어뢰 : 21인치 발사관 6문
정찰기 : 6대
속도 : 31.9노트(과부하시 32.2노트)
추진력 : 최대 266,300마력(과부하시 296,000마력)
항속거리 : 19노트로 20,000해리
장갑 : 측면 장갑 15인치, 갑판 장갑 총 13인치, 주요부의 함 외벽으로부터 주 장갑 격벽까지 7.62m의 어뢰 방어용 공간

추진 방식은 4축 추진으로 안쪽 2개의 축은 디젤 엔진이 바깥쪽 2개의 축은 증기 터빈이 담당한다.

1942년, 레더 제독은 히틀러에게 아무리 큰 전함이라도 곧 구시대의 것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그라프 체펠린과 같은 항공 모함 건조에 더 집중할 것을 건의한다. 히틀러는 거기에 동의했음에도 여전히 18인치나 24인치 혹은 그 이상의 함포를 검토할 것을 명한다. 히틀러는 바다 위에 떠 있는 그 어떤 것보다도 강력한 함선을 원했다.



6. H-43
1943년, H-43 설계안이 제시된다. H-42와 추진부는 동일하지만 함의 크기는 또 증가하였다. 기본적인 장갑 구조도 H-42와 동일했지만 어뢰 및 기뢰에 대한 방어가 추가되었다. 비스마르크와 티르피츠가 피해를 견디어 내는 능력은 상당했고, H-43 설계에서의 구획의 증가 및 전폭의 증가에 의한 어뢰 방어력 개선은 그 점을 토대로 한다.


* H-43의 제원 *
만재 배수량 : 118,104톤
전장 : 330m(흘수선)
전폭 : 48m(흘수선)
흘수선 : 12.8m(만재시)
주포 : 20인치 8문
부포 : 5.9인치/55 12문
대공포 : 4.1인치/65 16문, 37mm/83 16문, 20mm 40문
정찰기 : 6대
속도 : 31노트
나머지 제원은 H-42와 동일



7. H-44
마지막 설계안인 H-44의 특징은 어뢰에 대한 방어가 더욱 증가한다는 점이다. 해군 설계자들은 어뢰가 전함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된다고 느꼈고 그래서 어뢰 방어를 위해 전례가 없는 엄청난 조치들을 취한다. 그러한 추가된 대책으로 인해 H-44는 작약량이 늘어난 연합군의 신형 어뢰라 하더라도 여러 발을 연속적으로 맞고도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H-44를 무력화하기 위해서는 전함 야마토를 격침시켰을 때와 비슷한 연속적인 어뢰 명중이 필요했을 것이다.

흘수선 아래가 깊어짐에 따라 비접촉 근접 폭발의 위협이 추가로 제기되었다. 그것은 영국 소형 잠수함이 정박해 있는 전함 티르피츠를 기뢰로 공격하여 피해를 입혔던 것에 의해서였다.

갑판 장갑을 더 추가하여 공중 투하 폭탄에 대한 방어력을 더욱 높이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들은 영국 공군의 톨보이 폭탄에 전함 티르피츠가 격침되면서 좌절되었다. 톨보이 폭탄은 무게가 5443kg에 작약량이 2540kg이다. 설계자들은 그러한 엄청난 폭탄을 막아내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H급의 갑판 장갑 개선 작업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 H-44의 제원 *
만재 배수량 : 139,264톤
전장 : 345m(흘수선)
전폭 : 51.5m(흘수선)
흘수선 : 13.5m(만재시)
속도 : 30노트
나머지 제원은 H-43과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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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야기 2008.01.19 10:48
독일,폭격기 투하 어뢰플랫폼 Blohm & Voß L 10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금으로 말하면, 한국군이 개발중인 대잠 장거리 어뢰 "홍상어"와 유사한 무기체계이다. (어뢰를 운반하는 플랫폼 역할이라는 차원에서는 말이다.)

독일군은 영국군의 수상함대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고, 수상함대를 궤멸시켜야만 독일이 자랑하는 U-Boot의 작전범위를 넓힐 수 있었다. 때문에 영국 수상함대의 궤멸을 위한 공격은 필수였고 독일공군은 폭격기를 동원한 對수상함대 공격작전을 고민하게 된다. 폭격기에서 투하하는 범용폭탄으로는 수상함대를 효과적으로 공격하기에는 어려웠다. 따라서 정밀한 공격수단이 강구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나온 방안이 폭격기에서 투하되는 글라이더와 어뢰가 조합된 형식의 공격무기였다. 이것은 폭격기에서 2500m의 고도에서 투하가 되면 글라이더가 비행을 하다가 어뢰를 투하시켜 적함을 공격한다는 개념의 무기였다. 글라이더가 어뢰를 운반하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U-Boot

가 사용하는 어뢰의 사정거리인 8.5km보다는 월등히 긴 11.8km의 사정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글라이더에서 분리되는 어뢰는 일정 간격 까지는 유선으로 전기적신호로 유도되다가, 일정간격이 넘으면 유선을 끊고 어뢰 스스로 목표물을 찾아 호밍하는 유도어뢰로 유도방식이 바뀌어 졌다. Blohm und Voß BV L 10 "Friedensengel"은 다음과 같은 제원을 갖는다.

 

○Blohm und Voß BV L 10 "Friedensengel"(air-ship)
Total length: 3.9 m
Wing span: 2.8 m
Total diameter: 0.588 m
Planes: He 177 A-5
Weight: 220 kg (ohne Torpedo)
Employeement range: ca. 3.3 km

 

출처:본인작성, 사진은 인터넷에서 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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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Rep 2008.01.17 20:58
소련, "독일의 쾨니히스 티이거는 걸레였다"

1945년 2월 16일에 노획한 쾨니히스 티이거를 대상으로 실험을 거듭한 결과 독일의 쾨니히스 티이거는 걸레였다고 발표하였다.
다음은 첨부파일이다.

posted by 지나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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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Edit/Del  Reply 김순기

    타이거가 아니라 펜저 전차아니가요?

    2008.02.04 22:17
  2.  Addr  Edit/Del  Reply 지나가다가

    소련군이 일부 타이거 전차를 노획하여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소련군이 얼마나 가혹한(??) 실험을 하였는지 타이거 전차를 걸레라고 하였더군요.. 아마도 독일군의 사기를 떨어트리기 위한 심리전의 일환으로 보입니다만..
    이게 1944년, 1945년의 일이었을 겁니다..

    2008.02.04 23:43 신고

밀리터리Rep 2008.01.17 20:47
리토리오 전함의 장갑구획에 대한 글인데 한글문서로 작업을 하여 올린다. 다음은 첨부파일이다.
posted by 지나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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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Rep 2008.01.17 20:45
리토리오 전함의 수중방어구획
리토리오 전함의 수중방어구획에 대한 글이다. 작성은 한글문서로 하였으며 포스팅은 안 하고 첨부파일로 올린다.
다음은 첨부파일이다
posted by 지나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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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8.01.17 20:42
舊일본육군의 100톤급 전차

1939년(쇼와 14년)에 발생한 일본육군 전차가 소련육군 전차에게 일방적으로 궤멸되어버린 노몬한 사건의 충격은 일본육군의 수뇌부들은 소련육군의 전차에 대항 할 수 있는 전차의 개발과 군의 재편성을 시도한다. 이때 소련육군에 대항 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전차를 만들게 되는데, 그게 중량이 100톤가량 나가는 重量급 전차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이 전차의 시제개발은 1939년에 시작되어 쇼와15년이던 1940년 요코하마의 환자공장(丸子工場,마리코 공장)에서 완성하였다.

 

이 전차의 특징이 외관상으로 98식中전차(九八式中戰車,伊號)를 5배가량 커진 것이었기 때문에 군 내부의 명칭은 대이차(대형이호차) 혹은 미츠차(미츠비시 도쿄 자동차)라고 불리워졌다. 이 시제차량은 주행시험을 위해서 개발이 된 상태였기 때문에 장갑은 없는 상태였고, 주행시험이 불가능 할 정도의 차체중량이 오바하면 포탑만 따로 떼어내서 지중에 묻고, 본토방위에 사용을 하였다. 차체는 다시 공장으로 가져와서 재 설계작업,조립작업을 하여야만 했다. 가속클러치는 기계식의 다단 클러치이며, 트랜스미션 또한 전진3단 후진2단의 5단구조였다.

 

중량이 많이 나가는 전차를 움직이기 위해선 변속이 쉽지는 않아서, 한손이 아닌 두손으로 변속을 위해 레버를 조작하여야만 했다. 이외에 조향 트랜스미션이 따로 있었는데, 이것은 방향조절을 위한 것으로 톱니바퀴식 구조를 한 기계식의 변속기였다. 이런 일련의 동력장치,동력제어장치들은 엔진과 함께 차체의 후부에 장착되어 후륜구동방식의 전차가 되고 말았다. 이 전차의 주포는 105mm 캐논포 1문에다가,75mm 부포 2문, 7.7mm중기관총 3정을 장비 할 예정이었다. 장갑외판은 연강철이 사용되었으며, 전면장갑의 두께는 75mm, 측면장갑의 두께는 외측장갑 35mm + 내측장갑 35mm 도합70mm정도의 장갑효과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앞에서 이미 밝혔듯이 연강철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장갑판의 강도는 형편없이 약하였으며, 연합군의 重기관총 세례에 장갑판이 벌집이 되는 수준의 장갑판이었다. 전차內의 공간이 넓은편이라, 전차에 탑승하는 탑승인원은 꽤 많았고 11명을 탑승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탑재포탄의 갯수는 약 100발정도를 격납 할 수 있었다. 전차의 차체는 전방운전실, 중안전투시르 후부기관실로 3등분으로 나뉘어졌으며, 이들 사이에는 16mm정도의 격벽으로 구분하고 있었다.

 

1940년에 요코하마의 환자공장(ㅋㅋㅋ.丸子工場,마리코 공장)에서 완성한 시제차량은 상당한 크기로 제작이 되어, 전차에 탑승을 하려면 사다리를 이용하여 전차에 탑승해야만 되었다. 기동력을 기대 할 수 없는 차량이었던 것이다.

시제차량은 11명이 모두 탄 상태에서 주행시험을 치뤘으나, 전차의 중량을 이겨내지 못한 차체의 궤도가 차례차례 주저 앉는 사태가 일어났다. 주포탑의 선회만을 하는데에도 전차의 궤도가 가라앉는 등의 심각한 사태가 벌어졌다. 또한, 전차가 한번 지나간 콘크리트도로는 모두 전차의 궤도에 의하여  콘크리트가 파열되고 침하하는 등, 주행시험이 끝난다음엔 모두 파괴가 된 상황이었다.

주행시험에서 이렇게 험한 꼴을 선보인 기대를 모았던 이 초중량의 전차는 실전 투입에는 어렵다는 결론이 내려졌고, 계획을 중단시키고, 차내 창고에 방치시키고 있다가, 패전 직후인 쇼와 20년에 미군의 명령으로 해체하였다.

 

전차의 제원
전체길이:10m
전체너비:4.2m
전체높이:4m
최고속도:25km/h
승차인원:11명
전면장갑:75mm
측면장갑:35mm×2
무장상태:105mm캐논포×1문, 75 mm전차포×2문(계획), 7.7 mm중기관총×3문(계획)
생산수량:1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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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Rep 2008.01.17 20:40
일본 90식전차에 대한 단상

90식 전차의 목적은 소수의 아군이 다수의 적을 어떻게 패배시킬까에 최대의 목표가 놓여져 있다. 쉽게 말하면 소수의 전차로 다수의 적 전차를 패배시키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그 해답은 이동간 사격 능력과 발사 속도의 증대였고 자동 장전 장치는 그것을 위한 것이며 적외선을 이용하여 탐지 이미지를 자동 추적 하는 기능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사격 통제 장치는 열선 영상 장치와 대용량 디지탈·컴퓨터에 의해 구성되어 있으며 측거는 YAG(이트륨 -알루미늄 -가닛) 레이저·거리계에 의해 이루어진다.

포수용 외에 전차장용의 안정화 된 전용 잠망경 사이트를 가지고 있어 목표를 전차장이 발견했을 경우는 그 목표를 우선적으로 처리 할 수 있는 오버라이드(override)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한 번 레이더 추적 한 목표를 자동 추적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 목표가 전차가 기동을 계속 하고 있는中에서도 포를 계속 유지 할 수가 있다. 이동간 사격 능력 포탑상에는 레이저 검지 장치가 장비 되어 레이저를 검지하고 경보를 발표함과 동시에 그 방향을 표시해 , 자동적으로 포탑 측면으로 장비 된 연막탄을 쏘아 연막을 전개할 수가 있다.

엔진은 파워팩화 되어있어 미츠비시 수냉 2사이클 V형 10기통 디젤엔진을 채용해 터보를 병용 하는 것으로써 1,500마력을 얻어 톤당 30마력이라고 하여 제3세대 전차로 가장 비싼 값을 자랑 하고 있다. 주행 장치는 유체 변속기식 자동 변속기와 하이드로 스태틱식조향 장치에 의해 74식 전차와 같게 바(bar)핸들로 조작하는 것으로  61식 전차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있는 편이다. 또 74식 전차와 같게 기름유압식 서스펜션을 이용하고 있어 좌우는 불가하나, 차체의 상하, 전후방향을 기울일 수가 있다. 그리고 특이한것은 90식전차의 높은 제동능력이다. 이것은 급제동과 급발진을 반복하는 것으로 적 전차로부터 표적이 되었을 경우에 상대의 위치 예측을 예측 불가능하게 하여 자동추적을 제외하고는 수동조작으로서의 전차추적을 따돌리는 전차곡예조차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실정이다.

주포는 독일·라인메탈社製 44구경 120밀리활강포를 일본 제강소에서 라이센스 생산하고 있는것으로 당초는 일본 제강소에서 국내 개발을 목표로해 시작했지만 비교평가결과  라인메탈社製 44구경 120밀리활강포를 채용하고 있다.

사용탄종은 HEAT -MP(High Explosive Anti Tank-Multi Purpose:다목적 대전차 유탄) 와 APFSDS(Armor Piercing Fin Stabilized Discarding Sabot:분리식 날개 안정형 철갑탄) 로 , APFSDS의 탄심은 미국이나 영국과 같이 열화 우라늄 합금이 아니고 , 텅스텐 합금을 사용하고 있다. 이 포탄은 연소약협 방식에서 포탄 저부만이 금속제로 불타고 남아 자동적으로 차내에 배출된다. 그리고 배출된 포탄 저부가 흩어지지 않게 차내에는 넷이 쳐지고 있다. 그리고 부공격으로서 포탑상에 캐리버 M2 기관총(12.7mm) 과 주포와 같은 축에 74식 7.62mm 차량탑재 동축기관총 을 장비 하고 있다. 이 전차의 매력인 자동장전 장치는 포탑 바술내에 장비되어 차밖및 차내로부터16+1발을 장전할수 있는 행정은 바술로부터 나올 때까지 승무원과는 완전하게 격리되고 최단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때문에) 안전해 동작이 빠르다. 바술의 표면에는 피탄시를 대비하여 블로우 오프·패널이 설치되어 있다. 또한 휴대 되는 포탄은 바술과 차내 합해 40발 정도이다.

복합 장갑은 포탑 전면및 차체 전면에 베풀어져 HEAT 및 APFSDS탄 방어를 고려한것 이라고 말해지고 있어 내용은 방탄 강판의 사이에 세라믹스계 재료에 의해 정제 된 비교적 용량이 큰구조체를 고강도의 티타늄제방범위에 압입한 플레이트를 사이에 둔것 같고 시작 차량의 정면 장갑에 대해서 120밀리활강포에 의한 제로 거리 피탄 시험이  실시되어 HEAT-MP 및 APFSDS탄이 다수 피탄 되어도 더 주행이 가능하여 전차시험평가를 지켜보던 시험 관계자를 놀라게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장갑은 수직으로 구성하지만 장갑을 비스듬하게 하는 것으로 실질적으로 장갑을 증대시키는 수법이 유효한 것은 APDS(분리식 철갑탄) 까지의 이야기로 현대의 APFSDS와 이 초고속으로 착탄 하는 경우는 도탄이 될 가능성은 매우 낮고 , 오히려 빛의 굴절에 유사한 현상이 발생해 보다 중심방향에 대해서 먹혀들 가능성이 높고, 침철장을 다소 길게 하는 정도로 방탄 성능의 향상에는 대부분 공헌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다소의 디메리트는 있지만 싸고·가벼워지는 수직 구성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90식 전차의 단순한 평면형에 의한 구성은 제조 공정수의 저감도 의도되고 있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경사 장갑을 채용하고 있는 챌린저2나 M1는 금속계의 복합 장갑을 채용하고 있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금속계 재료(M1에 도달해 장갑에 열화 우라늄을 채용)해 경사장갑을 채용하고 있기때문에, 일제히 60톤급의 차체가 되고 있다. 그 중에 90식 전차의 50톤이라고 하는 무게는 장갑이 얇다고 하는 측면은 확실히 면할 수 없지만, 다른 전차가 심하다고 하는 생각도 반드시 잘못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말하면, 90식 전차의 장갑은 높은질량 효율을 가진 우수한 장갑이다고 하는 것이다. 현대의 기술에 의하면, 차체중량이 가벼운것은 곧 장갑이 얇아 방어력이 취약하고 약하다는 도식은 나와야 하나 이는 반드시 성립하지 않는다. 그것은 90식 전차는 제3세대 전차 중에서 가장 늦게 출현한 전차인 것을 잊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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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야기 2008.01.17 12:23
舊독일, Walter HWK 109-500이륙보조로켓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글파일로 작성 한 것입니다...
출처; 본인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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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야기 2008.01.17 12:16
舊독일, 쾨니히스티이거에 대한 분석

1)공격력
쾨니히스 티거는 적전선 돌파용의 74구경장 88mm고사포인 Flak41을 탑재하는 중전차를 개발하라는 히틀러의 지시에 따라 개발된 전차이다. 하지만 VK45(45톤급 시제전차)를 개발하던 포르쉐사와 헨셀사 모두 티거와 같은 56구경장 88mm포를 탑재하는 것을 전제로 설계를 했기때문에 결국 라인메탈사제 71구경장 88mm전차포인 KwK42로 주포가 변경됐고 이 71구경장의 88mm포를 탑재해 제작되었다. 두 회사의 시제 전차들을 비교 테스트한 후 양산은 헨셀사제 시제전차였던 VK4503(H)로 선정됐기 때문에 이 전차가 6호 B형 쾨니히스 티거로서 제식화돼 양산 되었다. 양산시점에서 포르쉐사가 자기회사 전차가 채택될 경우 사용할 생각으로 발주해 제작해 뒀던 약 50대분의 포탑이 있었기때문에 이 포탑들도 헨셀사에서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헨셀사제 쾨니히스 티거外에 포르쉐 회사제의 포탑을 장착한 쾨니히스 티거도 약20량 생산되었다.


2)방어력
피탄경시를 중시한 설계대형포탑을 채택한 쾨니히스 티거의 장갑두께는 한차례 설계변경을 거쳐 경사진 장갑으로 설계된 포탑전면 180mm, 포탑측면 80mm, 차체전면 110mm로 피탄경시를 거의 생각하지 않고 직선으로 설계된 6호E형(티거)와 비교해도 장갑두께는 물론 방어력 면에서 월등히 향상 된 전차였다. 당시 연합군의 주력이었던 M4셔먼의 장갑이 가장 두꺼운 부분이 51mm, T-34/85가 90mm정도였으니 쾨니히스티거의 방어력이 어땟는지 추정이 가능 할 것이다.
문제는 포탑상부의 장갑이 불과 40mm였고 엔진부는 이물질 투척방지용의 얇은 철망망을 부착했기 때문에 이 무겁고 둔한 커다란 쾨니히스 티거는 이미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한 연합군 항공기들에게 너무나 취약하였다는 점. 이 때문에 후기 생산차량중에는 큰 피해를 입고 있던 일선부대들의 건의에 따라 항공기의 기총소사로부터 엔진을 방어하기 위해 얇은 장갑판이 엔진상부에 부착되어 생산 되었다. (※2차대전 독일 주력 전차중 피탄경시를 중시해 장갑판에 경사각을 고려해 제작된 전차는 5호(판터)와 5호의 연장선상에 있는 6호 B형(쾨니히스 티거)뿐이다.)


3)기동력
쾨니히스 티거는 기동성측면에선 2차대전 각국의 중전차중에서도 가장 형편없는 성능을 갖고 있다. 전투중량이 68톤으로 현대 주력전차들과 비교해도 중량면에선 무거운 전차로 꼽을만한 쾨니히스 티거인데 엔진은 5호전차와 같은 700마력엔진을 사용했기때문에 출력중량비는 1톤당 10.6마력에 불과하다. 1톤당 10.6마력이라는 것은 2차대전 당시 각국 중전차와 비교해도 가장 낮은 출력 중량비에 해당된다. 쾨니히스 티거의 중량을 생각해 보면 최소한 1,200~1,500마력급의 엔진이 필요하지만 당시 기술로선 무리였기 때문에 당시 독일 엔진중 가장 신뢰도가 높고 출력이 좋았던 <마이바하 HL230P30(700마력)>을 탑재할 수 밖에 없었다. (쾨니히스 티거는 5호전차계열과의 부품 호환을 중시했다는 점도 판터전차의 엔진이 사용된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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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야기 2008.01.17 12:14

舊독일, 티이거-I에 대한 분석?

1)전체적인 성능
티거 전차가 유명해 진것은 그 강력한 화력과 방어력으로 인한 것이다. 등장 당시 타이거는 방어력과 공격력에서 타국의 전차의 수준을 한단계 넘는 것이었고 종전시까지도 타국의 전차에 대해서 우위를 확보 할수 있었다. 대전 종전시에는 러시아군의 JS-2 스탈린 중전차가 티거보다 조금 우위를 보일수 있었지만 티거는 좀더 우수한 기동성과 승무원의 넓은 거주 공간, 우수한 전술과 좀더 우수한 광학장치, 우수한 명중률과 40형 철갑탄 같은 신형탄의 사용등으로 스탈린전차에 대응 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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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공격력
티거 전차는 본래 대공포로 나왔던 88mm 고사포 FLAK-36의 전차 포형인 kwk-36을 주포로 채용했다. 이 포는 프랑스 전격전이나 북 아프리카 러시아 전선에서 그 대전차포로서의 우수함을 되었으며, 구경 88mm에 포신장이 L56이며 APCBC탄 사용시 포구초속 810m/s로 당시 독일군의 모든 전차포중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처음 개발 단계에서는 이 외에도 좀더 강력한 17Cm K-18이나 88mm이지만 포신이 74구경이나 되는 FLAK-41등이 거론됐지만 전차포로서 부적당하고 크기로 인하여 탑재에 많은제약점이 있어서 결국 채용돼지 못했다. 당시 이 포는 1000m거리에서 30도 경사진 100mm철판을 관통 시킬수 있었고 소련군의 T-34는 1500m에서 2000m정도에서 격파 할수 있었고 중 장갑의 KV-1전차도 1000m거리에서 격파 할수 있었다. 대전 초에는 경금속의 내부에 텅스턴의 관통자가 들은 APCR탄(40형)은 거의 사용이이루어 지지 못했지만 러시아 군의 전차의 장갑 강화로 대전 후반부에는 소량의 APCR탄이 탑재 돼서 중장갑의 전차나 돌격포(JS-2전차, JSU-122/152)등에 대해서 사용됐다. 이 포탄을 사용할때에는 포구 초속 910m/s로 1000m에서 140mm의 30도 경사 장갑을 관통 시킬수 있었다. 이 외에는 HEAT탄(일본에서는 성형 작약탄이라고 하고 국군에서는 대전차 고폭탄이라고 하는 탄)이 있는데 관통력은 거리에 상관없이 90mm로 대전 초기에는 안 사용돼다 후반부에 사용이 이루어 졌다. 관통력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지만 고폭탄 대용으로 사용 할수 있고특히 콘크리트 건물이나 경장갑의 차량에 매우 효과적이었다. 대인이나 비장갑 목표에 대해서 HE탄(유탄/고폭탄)을 사용했다.따라서 대전 초반에는 HE탄과 APCBC탄을 사용했으며, 대전 후반에는 서부 전선에서는 APCBC탄, HEAT탄과 HE탄을 러시아 전선에서는 여기에 소량의 APCR탄을 사용했다.주포탄은 처음 92발을 탑재하여 러시아군의 전차에 비하면 2-3배 탑재량을 자랑했지만 대전 후반의 격화되는 전선의 수요로 포탄을 110발까지 탑재하게 개량 됐다.하지만 개량 이전에도 이미 야전에서는 토션바 사이에 탄약을 더 적재하여 110발에 가까운 수량을 적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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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방어력
티거 전차는 맨틀과 일부 부분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균질 압연 강판을 사용했다.
당시 철강기술에서 독일의 기술은 타국에 비해서 앞서 있었으며 특히 냉각 기술상의 우위로 장갑판의 재질은 연합군의 같은 두께의 장갑에 비해서 우수한 방어력을 보였다.
차체 전면은 102mm였으며 측면과 후방은 80mm였다. 포탑은 맨틀의 두께가 얇은데는 92mm였으며 주포 주위는 200mm였다. 얼마 안 있어 조준구 부분의 구멍이 방어력이 취약하다고 하여 두터워 졌으며 거의 160mm에 이른다.
포탑 전면은 위아래로 막고 있는데 이 두께는 30도 경사로 100mm였다. 단 가운데 부분은 주포의 가동을 위하여 뚤려 있다.포탑의 측,후방은 80mm이며 말굽형으로 한장의 철판이 휘어 있다.포탑 상면은 독일전차가 모두 26mm였지만 이 부분이 러시아군의 152mm 포탄의 직격에 뚤리는 경우가 발생하여 44년 중반부터 40mm로 강화 됐다.
당시 가장 강력한 적이었던 러시아군의 T-34/76이나 KV-1의 주포는 F-34 76.2mm/L42로 포구 초속이 650m/s에 500m에서 69mm, 1000m에서 61mm의 관통력을 가지고 있어서 티거 전차의 전면은 물론 측면 역시 격파 할수 없었다. 1942년부터 포구초속 965m/s의 포구 초속을 같는 텅스텐 관통자가 도입됐는데 이 포탄은 500m에서 92mm로 역시 전면 격파는 거의 불가능 하지만, 측면이라면 어느정도 거리면 격파가 가능했다.단 이 포탄은 독일군과 마찬가지로 수량이 매우 적었으며 원거리 관통력은 오히려 저하되는 경향이 있었다.

북 아프리카에서는 가장 강력한 미국의 M-4 셔먼 전차의 75mm/L40전차포가 있었으며 이 포는 성능에서 F-34와 유사 했다. 단 이 포는 끝내 텅스텐 관통자는 개발돼지 않았다. 하지만 아주 근접 거리에서 영국군의 6파운드 대전차 포(57mm)가 새로 개발된 분리 관통자의 텅스턴 철갑탄으로 매우 근접 거리에서 측면을 관통시킨 기록은 있다. 연합군이 44년 6월 노르망디에 상륙할때 연합군은 일종의 티거전차와 88mm포에 대한 공포증에 시달렸다. 당시 이에 대한 대책으로 미군은 셔먼 전차가 티거 1대당 5대 이상이 돼지 않으면 교전을 회피 할 것을 지시 했으며 전차포의 강화에 주력했다. 영국군은 새로운 강력한 17파운드 대전차 포를 셔먼 전차에 장비한 파이어 플라이 전차를 개조하여 재조 했는데 이포는 티거 전차의 전면 장갑을 1000m정도의 거리에서 격파 할수 있었다. 미군도 기존의 75mm포 보다 강력한 76.2mm/L51포를 등장 시켰는데 새로 개발된 텅스텐 관통자의 HV-AP탄(독일군의 APCR과 흡사한 탄)을 사용한다면 티거 전차의 전면을 700m정도에서 격파 할수 있었다. 단 이 포탄은 매우 부족하여 초기에는 전차대는 물론 TD부대도 거의 장비 할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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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이 적기는 하지만 미군의 TD들이나 영국군의 파이어 플라이는 1000m내에서는 티거 전차의 격파를 시도해 볼수 있었다. 러시아군도 1943년 중반의 쿠르스크 전때에는 152mm ML-20 야포를 KV전차에 직접 장비하여 SU-152 중 돌격포를 개발했다. 이 포는 너무 크고 포구 초속이 느린 반면 분리 장약에 탄의 무게도 커서 대전차 용으로 적합하지는 않았지만 워낙 구경이 커서 티거 전차의 전면을 격파 할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무기는 그다지 효율적이지는 않았다. 1943년 후반에는 T-34전차의 차대에 85mm포를 장비한 SU-85 돌격포가 등장했으며 이 포는 700m거리에서 티거 전차를 격파 할수도 있었다. 1943년 말 부터는 이 포를 장비한 T-34/85가 등장했으며,1944년초에 드디어 122mm포를 장비한 소련군 최강의 스탈린 중 전차가 등장했다. 이 전차포도 본래 야포였지만 152mm포 보다는 포구 초속이 빠르고 명중률이 우수했다. 관통력도 88mm포의 APCR탄 사용시를 약간 상회해서 티거전차를 1500m정도에서 격파 시도 할수 있었다.하지만 전차병들의 훈련 부족과 조준장치의 성능부족, 주포 자체의 명중률 부족등이 겹쳐서 티거 전차에 큰 타격은 입히지 못했다.

1944년이 넘어 서면서 티거 전차를 1000m정도 내에서 격파 가능한 연합군의 전차들이 등장은 했지만 방어력이 부족하여 티거 전차의 공격에 1500m에서 2000m거리에서 격파 당할수 있었다.티거전차 자체가 42년도에 등장했다는 점을 생각 한다면 이 전차의 공격력과 방어력은 탁월 했다고 할수 있다. 1944년 7월까지는 적의 보병으로 부터 근접 방어를 위하여 차체 주위에 S 마인 발사기를 장비 했다. S마인은 독일육군의 표준 대인 지뢰로 현재 국군이 사용하는 미제 M-16대인 지뢰 같은 이중 비산식 지뢰의 원조 였다. 이 지뢰는 본래 지상에 약간의 스위치를 내 놓고 있다가 밟을 경우 지뢰는 하늘로 비산하여 사람의 키 정도의 높이에서 아래쪽으로 파편을 뿌리는 지뢰였다. 차량에 이 지뢰발사기를 근접 장비하여 차내에서 조작 적의 보병이 근접했을 경우 사용하였다.하지만 44년 부터는 포탑에 90도 각도로 돌아가는 차내 발사기 1개를 장비 했다.그외 초기형은 포탑 양 측면에 3개씩의 스모크 디스챠져 발사기를 장비 했다. 이는 흔히 말하는 연막탄 발사기로 발사 후 차량 근처에 연막을 쳐 주는 것이었지만 중기형부터는 이 장비가 적의 소화기 사격에 손쉽게 작동하여 오히려 자신의 조준을 방해 한다고 하여 폐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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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기동력
티거 전차의 엔진은 초기에는 650 마력의 마이바하 HL-210 P-45를 사용했다. 이 엔진은 12기통의 가솔린 수냉엔진으로 당시로서 매우 우수한 엔진임에는 분명했지만 가솔린 엔진의 특징인 연비저하의 문제는 어쩔수 없었으며 특히 티거의 중량이 57톤이나 나가 톤당 마력에서는 12마력/톤 정도였다. 엔진은 곧이어 판터 전차에 사용된 출력 700마력의 마이바하 HL-230 P-45엔진으로 교체 됐는데 에어필터등의 형상에서 세부적인 차이가 있다. 트랜스미션에서는 티거는 매우 기념비적인 전차로서 다중 클러치와 유압을 이용한 무단 변속방식의 트랜스 미션을 사용하고 있다. 이 트랜스 미션은 타국의 싱크로 매슈 방식이나 판터전차의 AK 7-200이 사용한 단일 클러치 방식에 비해서 동력의 손실이 적으며 원할한 조향능력을 제공하며 특히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더욱 우수한 신뢰성을 보인다고 한다. 최고 속도는 42km/h로 돼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이론상 속도 였고, 트렌스미션에 무리가 안가는 범위는 노상 38km/h였다. 항속거리는 노상 180km이지만 특히 러시아의 진흙등에서는 80km정도까지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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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야기 2008.01.17 12:07

독일의 '쾨니히스티이거는 강력했지만 결점투성이 전차였다'

독일_쾨니히스티이거 '전차전에는 강력했지만 단점 투성이의 전차였다.'

영어로는 킹타이거라고 불리우는 벵골호랑이인 쾨니히스티이거는 2차대전당시의 구축전차를 제외한 모든 전차와의 1:1 전차전에서는 상대 할 전차가 없는 무적의 전차였다. 연합군에 의해 폭파된 쾨니히스 티이거의 숫자보다 자폭에 의해 폭파된 쾨니히스 티이거의 숫자가 더 많은 정도이니, 얼마나 연합군이 쾨니히스 티이거를 사냥하지 못하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 사실은 또 다른 점을 시사해 준다. 그것은 쾨니히스 티이거는 기계적 결함의 집합체였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바와 마찬가지로 연합군에 의해 폭파된 티이거의 숫자보다 독일군 자신들이 연합군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자폭을 실시하였다고 하였는데, 독일군이 왜? 자신들의 애마와 같은 쾨니히스 티이거를 자폭하였을까? 그것은 쾨니히스 티이거가 화력은 강하겠지만 너무 무거운 중량때문에 트랜스미션,엔진 등이 이겨내지 못하고 과부하가 걸리는 바람에 잦은 기계고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쾨니히스 티이거는 기존의 잦은 기계적 고장을 일으키는 티이거를 교체하고자 신뢰성을 더하면서 화력과 장갑을 강화한 전차이다. 쾨니히스 티이거의 무장은 71구경 88mm 포로 56구경 88mm포의 티이거 보다 더욱 강했고, 장갑은 180mm 라는 엄청난 장갑을 지녔다. 이러한 쾨니히스 티이거는 전면승부에서는 152mm 포 이상이 아니면 전면장갑에 흠집을 못 내는 정도의 장갑방어력을 가졌다. 키 쾨니히스 티이거는 서부전선과 동부전선 약간에서 활약을 하면서 괴물로 연합군으로 부터 괴물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하지만, 기계적 신뢰성을 높였다고는 하나 티이거전차가 58톤이었던데 비해 쾨니히스 티이거는 68톤에 달하는 중량의 증가로 인해 더 더욱 트랜스미션에 과부하를 주게 되었다. 이외에도 쾨니히스 티이거에는 다음과 같은 결점이 존재한다.


1) 측면장갑과 후면장갑의 얇음.
쾨니히스 티이거는 전면장갑은 무지막지하게 두껍고 두텁다. 연합군의 모든 전차들이 쾨니히스 티이거의 전면장갑을 시원스럽게 관통하질 못하였다는데 그 전면장갑 방어력의 무지막지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연합군 전차의 주포가 향상되지 않았을때 가능한 일이었다. 독-소전쟁을 치루는 소련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쾨니히스 티이거의 장갑을 관통하는 전차의 주포를 만들어야만 했고 그래서 나온 것이 T-34/85 중전차의 주포로 활용되는 54.6mm ZIS-S-53이다. 쾨니히스 티이거의 장갑은 전면장갑 180mm, 후면장갑 80mm, 측면장갑 80mm로 전면장갑 빼고는 티이거-I 때와 변함이 없는 상태에서 T-34/76전차의 주포보다 더욱 강력한 85mm주포로 무장한 T-34/85 중전차에게는 600m에서 쾨니히스 티이거의 측면장갑을 강타하여 명중시키면 격파 할 수 있다. 장갑이 얇은 후면장갑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또한 연합군이 서부전선에서 활용한 90mm 포를 장비한 M36 잭슨 대전차 자주포로 약400m 거리에서 킹 티이거의 측면장갑에 손상을 입힐 수 있었다. 즉, 티이거에서 쾨니히스 티이거로 진화하면서 장갑의 두께는 그대로 놔둔게 실수였다는 것이다.


2) 저속의 속도
쾨니히스 티이거의 중량은 68톤이다. 중량이 68톤이나 나가는 이 무거운 전차의 시속은 약 36km/h. 티이거보다 출력이 강한 엔진을 장착했지만, 중량이 티이거보다 10톤이나 증가되는 바람에 엔진의 출력 향상은 꾀 할 수 없었다. 속도가 느리니까 연합군 전차로부터 기동성면에서 약하고 협공을 당하기도 하였다. 또한 숫적으로 불리하게 적전차로에게 포위되었을때 전속력으로 달아나는 것은 아예 애시당초 불가능하다는 점도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그에 비하여 소련의 T-34/85 중전차의 속도는 55km/h 로 쾨니히스 티이거의 주포 공격을 피하면서 쾨니히스 티이거의 후면장갑이나 측면장갑을 향해 공격 할 만한 시간적 여유를 확보 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연합군의 대전차 자주포인 M36 잭슨의 속도는 50km/h이어서 사정거리 안에 가둬 둘 수 있었다. 이뿐인가? 제공권을 장악한 연합군 공군이 공중에서 무차별적으로 공격해 오는데에는 눈 뜨고 당하는 수 밖에 없었다.

 

3) 포탑의 저속 회전속도
주포를 상대에게 겨눠 포탄을 날리려면 빠른 탐지에 따른 빠른 주포의 회전이 필수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쾨니히스 티이거의 포탑회전은 유압으로 작동된다. 티이거 전차와 같은 방식이다. 유압식 포탑회전방식은 전기식 포탑회전방식보다는 분명 신뢰성면에서는 앞선다. 그러나 적전차를 바로 앞에두고 포탑을 회전시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면, 그리고 그 시간동안 적전차가 이미 사정권에서 안전한 지역으로 대피한다면 완전 도로묵이다. 쾨니히스 티이거는 포탑이 360도 회전하는데 빠르면 19초 아주 느리면 75초가 걸린다고 하며, 포탑을 한바퀴 완전히 회전시키려면 포수석의 핸들은 700바퀴, 장전수석 핸들로는 680바퀴를 돌려야 했다고 한다.

※ 이러한 약점이 많았던 쾨니히스 티이거는 그에 비해서 신뢰성이 매우 뛰어났으며, 그렇기에 모든 독일군 에이스 전차병들이 타기를 원했던 전차였고, 그 무시무시한 화력때문에 왠만한 전차들은 근접도 못하고 파괴 되었다

posted by 지나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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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야기 2008.01.17 00:31
舊독일의 A4/V2 단거리 탄도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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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나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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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Edit/Del  Reply さり気無い優しさアピール

    으로 서두에 보여드린 이미지는 디자인로그의 포토샵 강좌 게시물을 운영 중인 페이스북 'Design' 페이지로 공유한 모습입니다. 아주 깔끔하게 링크 업데이트가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겁니다. 여러분도 페이스북 '코멘트(commets)' 소셜 플러그인을 완벽하게 설치하셔서 많은 페이스북 사

    2011.06.15 19:51

독일이야기 2008.01.17 00:19
舊독일의 해상형 A4/V2 단거리 탄도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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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페네뮌데 에서 V2의 공개실험을 참관한 독일 노동자 전선의 임원 중 하나인 라페렌츠라 는 사람이 이 V2 미사일을 수납한 운송겸 운반용 방수 수납통(컨테이너)을 잠수함으로 미국의 뉴욕 항까지 예함하고, 그곳에 향해 발사, 공격할 것을 제안 하였다. 미국 대잠방어망 외곽에서 공격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이 기발한 아이디어는 페네뮌데의 고위층들에게까지 화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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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으로 극복하지 못할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였지만, V2의 본체의 트러블 해결에 주력하고 있었으므로 오랜 기간동안 그의 아이디어는 방치되었다. 그러나 1944년말에 Prufstand XII와 불칸베르프트(Vulkanwerft)라는 코드명으로 개발이 시작되었다. 이 발사 시스템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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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2를 1기 수납하고. 관제실과 V2용 연료 탱크를 설치한 수납통 3기를, 발사 해면까지 XXI형 잠수함으로 예인한다. 수납통은 발사 중량 상태에서 거의 부력이 0 가 되도록 만들어져 잠수함의 예인 속도에 의해 잠항 상태를 유지한다. 또한 항해중의 잠수함으로부터 수납통의 잠한상태를 컨트롤하는 것도 가능했다고 한다. V2와 그 연료 외에 잠수함의 항해력을 연장시키기 위한 보급용 연료 (디젤유)도 탑재된다.

잠수함은 약 30일 동안 평균 12노트의 스노켈 항주로 대서양을 횡단하고, 뉴욕에서 약 300 해리 이내의 발사 해면에서 도달한다. 한편 예인되는 수납통을 1기로 감소하면 당연히 속도가 휠씬 빨라진다. 잠수함이 발사해면에 정지 , 부상하면 수납통도 자연히 해면에 부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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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잠수함으로부터 각 수납통에 기술병이 각 2명씩 옮겨가 통내의 관제실 에서 밸브를 열고 밸러스트 탱크에 주수, 수납통을 두부가 위로 향하도록 직립상태로 만든다. 그리고 함으로부터 공급전원을 접속하고 V2에 연료주입, 자이로 유도 시스템의 설정, 탄두의 전동식 도어를 개방하는 등 발사 준비를 한 뒤 함으로 돌아온다. 발사는 잠수함의 함상에서 원격조작으로 행하여, 부상에 서 발사까지 소요시간은 30분 이내로 계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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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나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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