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야기 2008.01.17 00:10
舊독일, 방공 고사포 타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지나가다가
독일이야기 2008.01.16 14:26
舊독일, 도르니에 우랄 폭격기
사용자 삽입 이미지
Luftwaffe(독일 나치스 공군)의 가장 심각한 결점은 효과적인 중(重)폭격기 비행단의 부족이었다. Dornier Do.19는 몇가지 원인 때문에, 흥미를 돋구는 가능성이었으나, 결코 성사되지 않았다.
Luftwaffe의 최초 참모장인, 공군소장 Walther Wever는  영국과 미국에서 개발되어 존재하고 있는 그것들과 같은 독일 장거리폭격비행단의 가장 집요한 주창자였다. 주로 Wever 때문에, RLM Technisch Amt(RLM 기술부)는 4개의 엔진인 중(重)폭격기를 위한 설계명세서를 발행하였다. 양쪽 Dornier사와 Junkers사는 계약을 위한 경쟁자였고, 각각은 1935년말에 3가지 시제품을 위한 주문을 받았다. Dornier 설계는 Do.19의 설계번호가 주어졌고, 한편 Junkers 시제품은 Ju-89가 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Dornier Do.19는 중앙 캔틸레버식 날개였고, 건조는 대개 금속이었다. 그것은 직사각형 접합부분 기체와 보강된 한쌍의 수직안정판 및 방향타를 갖춘 미부(尾部)가 있었다. 이것들은 수평 꼬리 날개의 위쪽 표면에 설치되었다. 그것은 또한 꼬리 바퀴를 포함하여, 접어 넣을수 있는 랜딩기어가 있었다. 동력장치는 날개의 앞 가장자리에 나셀(비행기·비행선의 기관실·승무원실)에 설치된 것인, 4개의 BMW 332H-2 방사형 구조 엔진이었다. 그것은 9명의 승무원이 있었는데, 그것은 조종사, 부조종사, 비행사, 폭격수, 무선 통신수 및 5명의 포수로 이루어질 것이었다.


V1 시제품은 1936년10월28일에 날았다. 공군소장 Wever가 비행기 추락으로 죽었을때, 중(重)폭격기 계획은 그것의 추진력을 잃었고, 원상태로 되지 않았다. Luftwaffe가 뒤덮
듯이 영국의 하늘에 격렬한 타격을 주었을때, 중(重)폭격기 부재의 실책이 명백했다. 그러나 그때까지 필요한 중(重)폭격기를 개발하기에는 때가 너무 늦어버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Wever의 후임자인, Albert Kesselring은, 독일은 더 많은 전투기와 전술 폭격기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 결과 V2 및 V3 시제품은 폐기되었다. 그 최초의 V1은 1938년에 화물 수송기가 되었다. Dornier Do.19는 단지 시제품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유용한 장거리 폭격기일 뿐만 아니라 항복을 시킬수 있는 아직도 그것은 장래성이 있는 설계였지만, 절박하게 야전에서 경험이 필요했는데 거기서 Luftwaffe는 실패한 것이었다.

데이터 
만든회사: Dornier Flugzeugbau
기종타입: 장거리 전략 폭격기
기관동력: 4개의 533-kW (715hp) Bramo 332H-2 방사상 피스톤 엔진
기종성능: 해수면에서 최대속도 315km/h (196mph) 3500m에서 365 km/h.
상승한도: 5600m (18,370ft)
항속거리: 1600km (994 miles)
전체중량: 아무것도 싣지 않았을 때 11850kg (25,125lb)
최대중량: 18500kg (40,786lb)
날개너비: 35.00m (114ft 10in)
전체길이: 25.45m (83ft 6in)
전체높이: 5.77m (18ft 11in)
날개면적: 162.00m 스퀘어 (1,743.81 sq ft)
탑재병기: 2문의 7.92mm (0.31in) MG 15 기관총
기수와 꼬리날개 위치에 각1문

2문의 20mm 기관포 (하면(下面) 및 배후의 회전포탑을 조종하는 2사람에 각1문씩). 내 격실에 폭탄 1600kg (3,527lb)까지

posted by 지나가다가
독일이야기 2008.01.16 13:47

舊독일, 초중전차 마우스 전차에 대한 이야기

유명한 티이거-1 전차의 개발에서 포르쉐 박사와 헨셀사의 모델이 경쟁을 하였으나 결국 포르쉐 박사의 제안모델이 경쟁에서 패하게 됩니다. 소위 페르디난트 티이거라고 불리우며 엘레판트라고 불리우는 71구경 88mm포를 장착한 자주포가 바로 이 경쟁에서 패한 모델의 차체로 제작된 것은 이미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이고....여하간 티이거 개발경쟁에서 보여준 포르쉐 박사의 능력을 눈여겨본 히틀러는 당시 러시아의 중전차 개발에 대한 첩보입수로 인해 이 러시아 중전차에 대항할 100톤급 초중전차의 개발을 포르쉐 박사에게 맡기게 됩니다. 이 초중전차의 생산은 크룹(krupp)사에서 맡게 됩니다.

code number.205 'MAUS'라는 덩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이러니칼한 프로젝트 이름으로 개발이 시작된 이 초중전차는 최초에 구데리안의 간섭등으로 100톤 미만으로 결정되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장갑의 두께는 기하급수적으로 두꺼워졌고 포르쉐 박사는 이 전차의 차체와 공냉식 디젤엔진(1500마력급)을 개발하게 됩니다.

1943년 1월 목업이 제작되고 1943년 12월 1호차 1944년 4월에 2호차가 완성되었는데 포탑에는 128mm 주포(분리장전탄으로 35발분의 탄약을 탑재....이놈은 야크트 티이거의 주포였던 그놈과 동일한 것으로 .....무려 4km거리에서 셔먼을 격파했다고 합니다.)와 보조무장으로 75mm포(보조 무장이라지만 4호 전차의 주포인 놈입니다. 탑재탄수 무려 250발) 그리고 MG34 1정을 장비하게 되었습니다. 무장은 처음에 여러 가지가 논의되었으나 의외로 마우스의 내부가 매우 협소한 관계로 128mm/75mm로 결정되었고 128mm탄도 위력이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향후 150mm급의 거포를 장착하려고 계획되기도 했습니다.

중량은 180톤에 달해서 포탑정면 200mm 측면 210mm 차체측면 150mm 상면 50mm에 달해서 거의 티이거-1의 갑절에 해당하는 무게와 방어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장갑이 다소 부실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정도 중장갑이면 당시 어떠한 전차대 전차의 전투에서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결코 상대가 될 수 없는 것은 확실합니다.

엔진은 원래 포르쉐 박사가 1500마력급 공냉 디젤엔진을 개발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끝내 개발에 실패했고(전쟁이 끝나고 나자 개발이 성공했다고 합니다.) 마우스1호차는 12실린더 4행정 900마력 정도의 수냉식엔진을 2호차는 DB603A2이라는 Ta-152c용 항공기 엔진을 개조한(항공기에 탑재된 녀석은 1750~2000마력급이지만 이것을 1500마력급으로 다운그레이드 한 것으로 보입니다.)모델을 탑재하고 있었는데 티이거1/2에 비해 출력이 두배라 해도 중량또한 2.5배가 넘어서 기동력은 매우 떨어졌다고 합니다. 최고시속 20km정도에 험지/순항속도는 10km정도로 거의 1차 대전 전차수준의 기동력이지만 독일의 우수한 트랜스밋숀 기술로 인해 양 트랙의 역주행이 가능해서 기동성 자체가 크게 떨어지는 편은 아니였다고 합니다. 속도가 느리긴 해도 운동성은 좋았다는 뜻이죠. 연료는 1500L정도를 탑재하고 차체 후부에 러시아 전차처럼 증가연료 탱크를 장비해서 더욱 늘릴 수도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전차는 다른 수많은 나치의 비밀병기중에 완성까지 된 비교적 드문 케이스고 나름대로 합리적인 설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너무 전세가 나빠진 대전중반 이후에야 개발이 된 관계로 미처 양산이 되기 전에 전쟁에 끝나 버렸고 그들의 적인 러시아에 전리품으로 노획된채 한때 그들의 적국이었던 러시아 쿠빙카 박물관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마우스 전차의 제원
중량: 188000kg(188톤)
승무원 : 6 men
엔진: Daimler-Benz MB 509 / 12-cylinder / 1080마력 (V1 즉 1호차사양)
Daimler-Benz MB 517 Diesel / 12-cylinder / 1200마력 (V2 2호차 사양)
연료 탑재량: 2650-2700 리터 + 1500 리터 증가 연료탱크
속도: 13-20km/h
항속거리: 노상: 160-190km 야지: 62km
길이: 10.09m
폭: 3.67m
높이: 3.63m
주무장: 128mm KwK 44 L/55
부무장 : 75mm KwK 44 L/36.5 과 7.92mm MG34(동축 기관총)
탄약: 128mm 포탄 55-68발/75mm포탄  200발
장갑(두께mm/각도angle):
포탑상면: 60/90
포방패: 250/round
포탑전면: 220-240/round
차체상면: 50-100/9
차체 전면 경사면: 200/55
차체전면: 200/35
차체 전면 커버 : 100/90
포탑 측면: 200/30
차체 측면 상부: 180/0
차체 측면 하부: 100+80/0
포탑후방: 200/15
차체 후면 상부: 150/37
차체 후면 하부: 150/30
Belly Plate Aft: 50/90


주포인 128mm PAK 44 L/55의 관통력(Panzergranate 40/43철갑탄 40/43형을 사용했을 때) :

30도 각도의 입사각을 가진 장갑판에 대한 관통력 수치임.

거리/관통력

100m     500m     1000m    1500m    2000m    3000m    4000m
223mm   212mm  200mm   189mm   178mm   156mm   140mm

posted by 지나가다가
독일이야기 2008.01.16 00:48
舊독일, 돌격포 헤처의 차내원격조종 기관총 MG34/42

헤처에는 부무장으로 원격으로 조종되는 기관총 포트가 설치되어 있다. 360˚전 방향으로 사격이 가능한 MG34/42 1정을 헤처 차체의 상부에 장착하였다. MG34/42의 바로 아래인 헤처의 내부에서 사수가 외부를 볼 수 있는 잠망경이 설치되어 있어 이 잠망경을 선회하면서 기관총의 고저를 조종하면서 목표물을 사격하였다. 목표물에 대한 고저의 조종은 왼손으로 조작하는 레버를 통해 조작하였고, 오른손으로 조작하는 레버로는 목표물에 대한 발사버튼이 있었다. MG34/42 총신의 회전은  사수의 몸이 회전하는대로 MG34/42도 따라서 움직이며, 탄약이 떨어졌을시에는 내부에서 원격으로 장전까지는 할 수 없으므로 직접 해치를 열고 나와서 수동으로 교체하여 주면 되었다. 헤처를 운용하였던 승무원들은 상체를 내 놓지 않고 기총을 움직이는 이 장치에 상당한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헤처의 차내원격조종 기관총 MG34/42 개략그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본문은 본인작성, 그림은 인터넷수집
posted by 지나가다가
독일이야기 2008.01.16 00:45
舊독일, 현대식 전차 사이드스커트의 원형 "쉐르첸"

독일전차가 채용하였던 쉐르첸HEAT탄의 충격을 크게 약화시켜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 시키는데 사용되는 용도를 가지고 있다. 즉, 쉐르첸은 HEAT탄을 방호하기 위한 용도로 독일전차가 채용한 방호무기인 셈이다. HEAT탄은 균일한 장갑은 쉽게 관통한다. 그러나, 철망이나 혹은, 얇은 철판과 같은 쉐르첸을 설치하여 중간에 빈 공간을 주면 그 성능이 현저하게 떨어져서 전차의 본체에는 별로 피해를 주지 못하게 된다. 쉐르첸과 전차의 본체사이의 빈 공간이 중공장갑 역할을 하여 HEAT탄의 위력을 대폭적으로 감소시키는 것인 셈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때문에 2차대전 중에 독일전차는 약한 전차 차체의 장갑을 보강하기 위해 쉐르첸을 두른 것이 많다. 특히 4호전차 이후 개발된 전차들은 장갑의 중간에 빈 공간을 준 중공장갑을 채용하거나, 공구함을 포탑 주위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쉐르첸을 대신하기도 하였다. 물론 무지막지하게 장갑의 두께를 최대로 두껍게하거나 최대한 지면과 수직이 되지 않도록 경사장갑을 설계하는 방식을 취한 전차도 많다. 철로 만든 쇠 사슬로 된 쉐르첸도 있는게 아니고, 철제 장갑판을 차체 측면에 덧대어 차체 본체와의 빈 공간을 둔 장갑판 형태의 쉐르첸도 있다. 장갑판형태의 쉐르첸에 직격된 포탄은 차체 본체에 닿기전에 그 파괴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posted by 지나가다가
독일이야기 2008.01.16 00:38
舊독일, 보병 이동용 제트배낭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독일에서 대전중 전쟁터에서 보병들이 지뢰밭이나, 철조망등의 장애물 돌파를 위해 연구 되었던 아이디어. 2차세계대전 후반 독일의  실험으로, 다루기 쉬운 간단한 개인보병용의 로켓팩이다. 이 로켓팩은 두개의 덕트로 구성된다. 하나의 덕트는 제트배낭 이용자의 가슴에 묶어져 있고, 다른 하나의 덕트는 이용자이 등뒤에 달려있다. 이 로켓배낭은 작을뿐만 아니라 저출력이지만 꾸준히 추력을 발휘하는 제트로켓이었다.  슈미트 펄스 튜브와 같은 패턴으로 조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무기는 페이퍼플랜으로 그쳤다.
posted by 지나가다가
독일이야기 2008.01.15 00:35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독일 U-BOAT에게 연합군의 소나와 레이더는 치명적인 무기였다. 왜? 치명적이냐 하면 연합군의 수상함 혹은 정찰기의 소나와 레이더에 걸리면 독일의 U-BOAT를 찾아 내려고 주변을 찾아다니던 연합군의 구축함,전함,잠수함,항공기 등이 몰려와 소나와 레이더의 궤적을 추적하면서 탐색범위를 점점 좁혀 U-BOAT를 압박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항공기에 의한 탐지를 안 당하기 위해 신경을 매우 썼다. 때문에 U-BOAT의 입장에서는 이 치명적인 무기에 탐지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이 치명적인 무기를 피하려면 연합군의 연합군 항공기가 탑재한 레이다를 먼저 탐지하여 경고를 알려주는 기계가 필요했다. 즉, anti radar detection receiver인 것이다. 적의 레이더를 먼저 탐지하여 아군의 함에게 경고를 울려주어 아군의 함정이 여기에 대처 할 수 있게 하는 장비였다. Tunis라고 불리는 이 장비는 3cm의 파장을 갖는 수신기였다. 수신기의 모양은 잠수함에 탑재되다 보니 잠망경처럼 폭은 좁고 수직으로 길쭉하고 수신하는 곳은 마치 나팔관 처럼 생긴 모습이었다. 잠수함이 잠수하여 항해 중 일때 Tunis는 자동식으로 움직이는 기계는 아니어서 조종수가 일정한 시간마다 정기적으로 회전해 주어야 했다.
posted by 지나가다가
독일이야기 2008.01.15 00:33
舊독일, 음향흡수타일 알베리히(Alberich)를 개발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음향흡수타일은 잠수함 내부에서 발생하는 소음원을 어느정도 흡수하는 기능을 가지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적의 수상함이나 어뢰가 잠수함 추적용으로 방사라는 고주파/중주파 음파를 흡수하여 적의 탐지를 어렵게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과 같은 흡음타일은 제2차세계대전때, 독일군에 처음으로 개발되었다. 독일의 미군, 영국군의 Sonar,Asdic에 대응하여 잘 탐지 되지 못하도록 잠수함의 선체에 4mm두께의 고무타일을 붙여 음파를 흡수하도록 실험 한 적이 있었다. 코드네임 알베리히(Alberich)라고 불리우는 이 흡음타일은 두께 4mm정도의 합성고무타일로 제작때 부터 합성고무에 쇠가루, 철가루를 집어넣어 어느정도 적합한 열로 가열하여 내부에 작은 구멍이 생기도록 만든 것이었다.

이렇게 작은 구멍들을 가지게 된 고무타일은 적의 Sonar,Asdic이 발사하는 능동음파의 전달을 차단함과 동시에 방사되는 음파의 방향을 왜곡시켜 Sonar,Asdic의 접촉 가능한 거리를 감소시키게 만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석이라는 말이 있듯이 성능이 좋은 고무타일 일지라도 독일 잠수함의 장교들은 이 고무타일을 붙이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이 고무타일의 접착력때문인데 잠수함의 선체에 부착하고 잠항과 부상을 몇번 하고나면 금방 고무타일이 벗겨져서 탈락되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이런 약점은 곧 잠수함의 유체소음 증가와 잠수함의 수중저항의 증대를 가져와서 좋지 않은 효과만을 가져왔다. 이로서 이 고무타일을 잠수함의 선체에 부착시키고 작전을 하려는 잠수함장교는 극히 드물어졌다. 그렇게 지지부진하게 실전에서의 사용이 미뤄지다가, 독일이 항복하고 나서 소련군이 독일에 들어온 후, 이 기술을 접수하여 훗날, 탱고급 잠수함에 처음으로 음향흡수타일을 접목 실용화 시킨다.

출처: 본인작성

posted by 지나가다가
독일이야기 2008.01.15 00:25
舊독일, 노즈플레이트[차체전방장갑철침]

6호전차를 제외한 독일전차를 보면 차체의 전방 부분이 경사를 진 것을 볼 수가 있다. 이것은 대전차화기 혹은 상대 적 전차의 공격에 의한 피탄을 경시하기 위한 차체의 설계로 인한 것이었다. 사실, 독일은 T-34쇼크에 시달리기 전까지는 차체전방 부분을 수직장갑으로 채용하는 것이 대부분을 이루었다. 그러다가, T-34의 공격력에 속절없이 독일군 전차의 전방부분이 뚫리고, 반대로 T-34전차는 독일군의 포탄을 퉁겨내어 버리는 것을 목격하고 경악한 이후 부터는 T-34전방과 비슷한 차체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독일적이지 못하다는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지만, 속절없이 독일전차가 깨지는 것을 일정부분 상쇄시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차체 전방부분이 경사진 차체를 가지고, 거기다가 날카롭고 뾰족한 형상의 철로 된 것을 배열하였는데, 이것은 상대 적 전차가 날린 철갑탄 혹은 HEAT탄을 무력화하는데 사용하기 위한 용도였다. 경사진 차체의 전면에 노즈플레이트라고 불리는 날카롭고 뾰족한 형상의 철로 된 요철같은 달았으니, 전명방어력만 놓고보면 매우 강력했다고 보여진다. 경사진 차체로 인해 차체內의 용적은 줄어들었지만, 그 만큼 방어력은 높아졌다. 그러나, 차체의 측면은 경사지게 하질 못 하였는데 그 이유는 경사지게 할 경우, 충분한 전투실의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결국, 측면은 수직장갑, 공구상자와 쉐르첸으로 장갑을 보강하여  방호력을 높였고, 전면부분은 경사진차체+두꺼운장갑+노즈플레이트의 조합으로 막강한 방호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posted by 지나가다가
독일이야기 2008.01.15 00:22
舊독일, 판터 포탑 유용 토치카진지(Panther turrets as pill-boxes)

2차대전 중반이후, 독일군은 대전이후에 연합군에 군세가 완전히 넘어간후 물밀듯이 쳐들어오는 연합군으로 부터 독일의 도시를 보호하고 진지를 강화하기 위해 판터전차의 포탑을 떼어내어 진지를 만드는데, 이것이 의외로 구축하는 값이 싸면서도 대전차/대인 효과가 있는 무기였다. 이러한 고정식 토치카 방어물은 소수의 보병에 의해 보호되었으며 토치카진지의 전체운용을 하였다. 토치카진지의 근처는 판터주포로도 관통이 가능한 연합군 전차인 처칠전차와 셔먼 전차의 묘지가 되었다. 분명히 이러한 진지는 무시무시한 것으로써 충분한 대비없이 접근하다가는 몰살당하기 일수였다.  또한 발견하기 어려워서 토치카진지로부터 한발을 맞기전에는 정확히 그 위치를 확인 할 수는 없었다. 이 토치카진지는 이탈리아전선과 유럽동부전선에서 사용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탈리아 전선에서 사용된 판터포탑을 유용한 토치카진지는 이탈리아 방어작전 동안에 사용되었으며 이탈리아 전선에서 활동한 독일군은 판터전차의 포탑을 콘크리트 진지에 부착하여 대전차 방어용 고정식 방어물로 사용하였다. 이때 사용된 토치카진지는 값싸고 대전차능력을 갖추었으며 토치카진지의 천정은 40mm의 장갑을, 측면은 70mm의 장갑을 장착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유럽의 동부전선에서 사용된 토치카진지는 Narva에서 Crimea까지의 전선 강화를 위해 사용되었으며, 또한 독일의 도시들을 공격하는 연합군의 육상세력으로부터 방어하기 사용되었다. 유럽전선에서 사용된 토치카진지는 전투에서 피탄되어 기동이 불가능한 전차의 포탑을 떼어내어 부착하여 사용하거나 기동이 불가능한 전차를 그대로 파묻어 사용하기도 하였다.

posted by 지나가다가
밀리터리Rep 2008.01.04 14:38
헷지호그는 WW2 대전당시 나날이 강성해지는 나치독일의 U보트를 사냥하기 위해 연합군이 제작한 대잠폭뢰로켓이다. 헷지호그는 유보트를 잡기 위한 용도로 첫 작전을 임한 후 꾸준히 보급되어 유보트 잡는 첨병 역할을 지속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반적인 폭뢰투하 방식은 소나로 적 잠수함을 탐지하며 직접 수상함 자신이 적 잠수함 위를 지나면서 장착한 대잠 폭뢰 로켓을 떨어뜨리는 형식으로 이 폭뢰는 일점 심도까지 내려가면 자동으로 폭파하는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반면 헷지호그의 경우 굳이 적 잠수함 머리위까지 수상함이 이동할 필요가 없으며 사정거리가 무려 200m내지는 250m이므로 장거리 투하가 가능했고 폭뢰와는 달리 제한 심도가 없어 적 잠수함의 선체에 닿아야 폭파하기 때문에 적 잠수함이 아무리 깊이 잠수해도 소용없는 위협적인 무기였다. 하지만, 접촉되어야만 폭발을 하였기 때문에 접촉이 안되면 "길 잃은 양"이 되어야만 하는 단점을 가지고도 있었다. 적 잠수함에게도 위협적인 무기였지만 반대로 그렇지 아니기도 하였던 것이다.
posted by 지나가다가
독일이야기 2007.12.26 01:22

사용자 삽입 이미지

스탈린그라드에서의 교훈을 통해 히틀러는 1942년 11월 22일, 건물파괴용 전차인 Rammtiger 1대의 생산을 명령한다. 이에 대해 Porsche는 1942년 12월 7일에서 1943년 1월 5일까지 1달밖에 안되는 짧은 기간동안에 설계를 마치고 설계도면만을 가지고 Adolf Hitler에게 보인 결과 3대의 VK4501(P) 차체를 이용하여 Rammtiger/Raumpanzer Tiger(P) 생산 허락을 얻어낸다. 이 차량은 VK4501(P)의 포탑을 제거하고 차체에 자체 방어를 위한 MG34 기관총 1정만을 장비한 경무장이었지만, 차체 전체에 80~100mm 두께의 2차 장갑판을 삼각뿔 모양(드릴 모양)으로 덮어 두꺼운 건물 외벽을 뚫고 들어갈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스탈린그라드의 당시 폐허가된 건물 더미 속에서 저항하는 러시아의 저격수에 의해 작전 자체가 무산되고 커다란 인명 피해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대응무기가 없어 고전한 것을 타파하기 위해 생산된 것인데, Hitler의 판단으로는 향후의 전투 양상이 주로 시가전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하였고 벽 뒤에 숨은 소수의 저격병을 향해 뚫고 들어가 밟아 뭉게는 속시원한 전차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 외에도 시가전을 대비하여 3호 전차의 차체를 이용한 sIG-33B와 4호 전차의 차체를 이용한 Brummbaer 역시 비슷한 시기에 개발명령이 떨어졌다.

 

1943년 5월, 3대의 Rammtiger가 완성되었으며 8월까지 실험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1943년 8월 이후 이들 Rammtiger 3대의 행방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는데, 실전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니벨룽겐베르게 근교의 실험장에 남아있었다는 설과 함께 Rammtiger 생산된 시점인 1943년 5월에는 VK4501(P) 원형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Rammtiger는 1/10 또는 1/15 scale 의 mock-up model로만 존재하고 계획은 취소되었다는 설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독일은 전차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1/1 모크업을 제작하기도 하지만 실험성격이 강한 것에 대해서는 이보다 작은 1/10 또는 1/15 정도의 모크업을 제작하는 경우도 많아 모크업에 대한 신빙성을 높여주고 있다. 여하튼 확인 되지 않은 설에 의하면 Rammtiger 1대가 1943년 말, 동부전선에서 실전 평가를 받았는데, 독일 국내에서는 건물벽을 가볍게 뚫고 들어가 Rammtiger의 효용성을 입증하는 듯 했으나,  얼마뒤 동부전선에서 실시된 실험에서는 실패를 했다고 한다. 건물 벽을 뚫기는 했지만, 독일 건물보다 약한 벽 전체가 무너지면서 Rammtiger가 깔려 손실되고 말았으며, 이 차량이 나중에 소련군에 노획당하여 소련군의 전차개발에 힌트를 주기도 하였다.

posted by 지나가다가
독일이야기 2007.12.25 21:55
독일,음파대포(Germany, Sound-Gun)

독일군은 제2차세계대전中 실로 놀랄만한 신무기들을 많이 개발하였다. 그들이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었다면 전쟁의 양상은 전혀 누구도 예측불가능한 상태로 흘러가고 있을것이란 말이다.
V1무인항공유도폭탄,V2지대지단거리탄도탄,V3초장거리포,바써펄,라인보테,라인토흐터 등등..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신종무기들을 토해내면서 패전前까지도 연합국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독일군은 연합군들의 공중세력과 육상세력이 격해지자 이를 단번에 타개하고자 또 다른 신무기를  개발하는데 그것은 이른부 지대공/지대지 음파대포이다. 이 지대공 음파 대포는 보통 인간의 귀에 들리지 않는 초저음의 음파를 발산하여 음파가 발산된 지역을 걷는 군인이나 비행기 또는 탱크 안에 탑승하고 있는 군인들을 기절 혹은 죽게하는 장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동물들을 이용해 음파 대포를 실험한 독일의 과학자들은 음파 영역을 걷는 동물들이 겉모습이 흉하게 일그러진뒤 몸이 풍선처럼 부풀다 끝내 폭발을 해버리는 끔찍한 모습을 봤다고 하며, 곧이어 빠른 시일내 음파대포가 실전에 배치될 수 있을것이라고 판단한 학자들은 실험 영상을 관람한 군의 장성들이 너무 무기가 끔찍하고 잔인하다는 결론을 내리자 도중 하차를 시키고 말았다.


그후 연구소의 지하실에 있던 실험용 음파대포는 후에 독일군 신무기 연구소 지역을 점령한 미군에 의해접수가 되었다. 고 하나 그 이후 음파대포는 더 이상 개발이 되지 않았거나 비밀스럽게 새 기종으로 개량된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제2차대전後 이 계획은 미군에 의해 압수되고 현재에 이르러 미군이 테러리스트 제거와 효율성 높은 전투를 위해 은밀히 음파대포의 계획을 재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방사형 스피커 직경 : 3m+
음파대포사정거리 : 50m   의 제원을 가진다고 한다..

요즘 미국이 고주파를 이용한 신무기를 개발하였다고 한다.
다음은 미국이 요즘에 만들었다는 음향포에 대한 설명이다.
이 대포는 고주파를 발산하기 때문에 적군 병사가 이 대포의 전후좌우 90 m반경 이내에 머무를 수 없다고 합니다. 또 포의 유효 사정은 270m이며, 고주파를 회피하기 위하여 귀를 막아도 쓸데 없다고 합니다. 음향포는 2100에서 3100 Hz의 고주파음을 발한다고 합니다. 이 음향포를 개발한 회사의 연구 개발자에 의하면, 이러한 소리에 장시간 노출해지면, 인체의 기능이 저하하고, 청력 장해등의 후유증이 남을 만큼 위험한 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다음은 사진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독일의 것과 크기만 차이날 뿐 거의 흡사 한 것으로 보여진다.
독일의 음향대포가 미국을 통해 다시 환생하였다고 보면 될까?

출처: 본문은 본인작성, 사진은 인터넷 수집

posted by 지나가다가
독일이야기 2007.12.25 21:41
보르텍 대포라고 불리우는 대포는 독일군 신무기 연구소의 소장인 오스트리아계 자이머 마이어 박사에 의해 개발 되었다. 보르텍 대포의 특징은 작은 발전소에서 강한 공기압을 만들어 이를 하늘에 날아다니는 전투기와 폭격기등 근처에 발사한뒤 비행기들이 회오리 바람에휘말려 추락하게 만드는 신무기였다. 실험을 통해 실전에서 충분히 사용될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나 1945년 2월 스위스 국경에 있던 유일한 보르텍 대포의 모터 공장이 갑작스런 폭격을 받아 산산히 부서져버린 관계로 개발이 중지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Barrel Length : 12m
Barrel Diameter : 700mm
Nozzle Size : 13mm
Range : 200m

posted by 지나가다가
독일이야기 2007.12.25 21:35
V-3호츠드르크품페(Hochdruckpumpe)

흔히들 V3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Hochdruckpumpe(호츠드르크품페)"이다. Hochdruckpumpe(이니셜은 HDP)는 영어로 High pressure pump(고압 펌프)라는 의미로, 이 포의 정식 분류 명은 "다중 연소 약실포"이다.


V-3 호츠드루크품페(Hochdruckpumpe)는 2차 세계대전 동안에 사르 로에츨링(Saar Roechling)에 의해 설계된 대포였다.140m나 되는 장포신의 이 15cm구경 대포는 140kg의 포탄을 165km까지 날리는 것으로 계획되어졌다고 전해진다.

 

V-3는 발사시에 포탄의 초구포속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본 피르퀘트(von Pirquet) 남작의 개념에서 나온 전기장치에 의한 순차적인 전기동작경사측면약실방식(=보조챔버방식)을 사용하였는데, 이 방식은 초구포속을 1500m/s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발사되는 길쭉한 모양의 포탄은 안정된 궤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꼬리날개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25년 후에 캐나다의 마틀렛(Martlet) 계열 투사체들이 사용한 방식과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미군의 리만(Lyman)과 하스켈(Haskell)은 1880년대에 이런 개념을 가진 시작품을 만들었으나 실패하였었다.근본적인 실패원인은 발화한 포연이 포탄이 지나가기 전에 미리 앞서나가 포탄의 추진력을 잡아먹기도 하고, 포탄이 지나간 다음에 발화하여 포탄에 추진력을 실어주어야 할 보조장약들이 미리 터져 방해가 되는 일이 생기고는 하였기 때문이다.그러나 1941년 사르 로에츨링이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전기동작방식을 제안하였다.

 

20mm 구경의 시작품이 폴란드의 미스드로이(Misdroy)에 있는 테스트 사이트에 만들어졌고, 1943년 4-5월에 걸쳐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히틀러는 이 대포가 V-1과 V-2를 보조하는 3번째의 테러무기가 될 수 있으며 1일 600t의 폭탄을 런던에 떨굴 수 있다는 말에 설득되었고, 영국을 포격하기 위하여 프랑스에 이것을 담을 50개의 콘크리트 벙커를 지을 것을 명령하였다. 우선 5개의 대포가 웨제(Wiese)작전이라는 이름 하에, 런던으로부터 165km 떨어진 칼레(Calais)근처의 미모에퀴즈(Mimoyecques) 지역에 설치되기 시작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대포들은 5.2m의 두꺼운 콘크리트로 방호된 30m의 석회함 언덕 안에 고정된 각도로 만들어졌다.경사측면연소실들은 내강의 3.65m간격마다 위치해 있었는데, 이 모듈화된 병기는 몇 발 발사후에는 수명이 된 측면 연소실을 부분적으로 교체할 수 있는 구조로 제작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수백 명의 강제노동자들이 1943년 9월부터 석회암 산의 표면으로부터 30m아래에 최초의 터널을 파기 시작하였다. 프랑스의 저항세력들은 연합군에게 거의 즉시 공사에 대한 새 첩보를 보냈고, 공사가 시작된 지 2달만에 이 공사를 저지하기 위한 연합군 중폭격기들의 폭격이 시작되었다.그러나 공사는 연합군의 폭격(그중에는 전함 티르피츠(Tirpitz) 사냥에 썼던 5.4t의 톨보이(tallboy) 폭탄도 있었다고 한다)에 별 영향을 받지 않고 순탄하게 진척되고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나 1944년 7월 6일, 3발의 톨보이 폭탄이 열려져 있던 포의 갱도를 따라들어가 30m정도 굴러들어간 다음에 폭발하는 사건이 터졌다.이 사건으로 수십 명의 일꾼들이 사망하였으며,공사는 이 시점에서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연합군은 폭격의 성공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미모예퀴스와 다른 벙커들을 날려버리기 위하여 새로운 방법을 구상했다.미 공군 측에서는 아프로디테 계획(Aphrodite Project) 미 해군 측에서는 모루 작전(Operation Anvil)이라는 이름 아래에, 무선으로 원격조종되는 비행기 B-17 이나 B-24에 10t정도의 폭탄을 싣고 목표물 근처에 떨어뜨린다는 계획이 연구되었다. 조종사와 부조종사는 비행기를 이륙시키고 동행하는 비행기가 이 (실제적으로)미사일을 목표까지 정확하게 유도하는 동안 낙하산으로 탈출한다는 계획이었다.그러나 작전은 실험 후에 낮은 성공 가능성과 몇 명의 사상자를 낸 이후 1944년 8월에 중단 되게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44년 8월 말에 독일군은 영국군이 바로 앞에까지 진격해오자 이 시설들을 포기하였고,영국군은 미모예퀴스 단지를 접수한 다음 1945년 5월 9일 폭파시켜 버린다. 또한 2개의 작은 크기(포신 길이 45m)의 V-3가 1944년 12월 아르덴느 진격작전의 지원을 위하여 앤트워프(Antwarp)와 룩셈부르크(Luxemburg)에 만들어졌는데,신뢰성은 별로 없다는 것으로 판명되었고,몇발이 발사되기는 했으나 결과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출처:
http://blog.naver.com/korea213/80014631109 본인의 네이버 블로그 임..

posted by 지나가다가
독일이야기 2007.12.18 10:17
舊독일, 전차의 조준경 사용법.... 클릭하면 더 크게 보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지나가다가
밀리터리Rep 2007.12.18 10:11
스타디아 라인(stadia line)이 대체 뭐시다냐?

한글파일로 작성을 하여 첨부하였습니다.
별도의 포스팅은 하지 않았습니다..
작성은 본인이 하였습니다.
본인의 네이버블로그(http://blog.naver.com/korea213 에도 올린 글입니다.)

posted by 지나가다가
밀리터리Rep 2007.12.17 10:49

JS-2, 스펙에서 밀리는 티이거-1을 실전에서 라이벌로 만들게 된 이유는?


소련군이 1943년 노획한 독일군 티이거-1을 정밀분석하여 당시 주력전차였던 T-34와 KV-1으로는 성능상 열세라고 판단해 개발을 시작 한 것이 JS전차의 탄생배경이다. JS전차 시리즈중에서 가장 먼저 빛을 보게 된 것은 85mm주포 장착의 IS-85(후에 JS-1)이다. JS-1은 1943년 8월에 스탈린의 직접적인 지시로 생산이 결정됐고, 당시 공산당서기장이었던 요제프 스탈린의 이니셜을 따서 JS重전차로 명명되게된다. 하지만, 85mm주포로는 독일군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여 JS-2전차를 기획하게 된다. 그러나 히틀러의 티이거-1을 구축하기 위해 태어날 JS-2전차는 주포 탑재 문제로 인해 그 임무가 기존의 대전차 구축 임무에서 보병지원용 임무로 변하면서 전차의 용도 또한 변하여 만들어지게 되었다. 주포는 기존의 85mm보다는 강화되었지만 전차포가 아닌 야포인 122mm포를 탑재하여 강력한 적(독일군)의 방어선을 공략, 돌파하는데 쓰이게 된다. JS-2전차는 JS-1전차의 특징에다가 장갑의 각도를 변화주어 피탄경시를 향상시킨 개량형의 전차이다. 기존의 전차인 JS-1보다는 방어력이 더 좋아졌다고 볼 수는 있는 것이다. 암튼, 이 전차는 JS-1보다는 더 개량되고 개선 된 점을 가지고 있었기에 보병지원으로서의 임무수행뿐 아니라 적(독일군) 주력전차인 티이거-1을 상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막상 실전을 치루다 보니 월등한 스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독일군의 티이거-1을 상대하면서 밀리는 양상을 보여주곤 하였다. 결국 JS-2는 JS-3로 버전업 당하는 신세에 내 몰리게 되는 신세로 전락한다. 그럼 왜? JS-2가 실전에서 티이거-1에게 절절 매면서 밀리는 양상을 보였으며, 실전에서는 막상 스펙이 딸리는 티이거-1과 라이벌 구도를 만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가 궁금하기에 좀 알아보기로 하자.

 

JS-2는 매우 심각한 결점이 있었다. 3가지정도로 분류 할 수가 있는데...

 

첫번째는 주포의 연사속도.
두번째는 주포의 원거리 사격시의 명중률.
세번째는 교전시의 사용가능한 포탄의 탑재량. 등이다.


첫번째는 주포의 연사속도이다.
JS-2의 주포가 전차포가 아닌 야포였기에 신속한 발사가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며, JS-2의 포탄은 대형이라서 분리장약식으로 운용되었는데, 이 때문에 포탄과 장약을 따로 따로 분류하여 전차내에 적재하여야만 하였다. 그런데 이게 너무도 내부용적을 잡아먹는 바람에 장전수를 위한 배려가 거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JS-2의 주포는 그 태생이 신속한 사격보다는 정밀한 사격을 하는 야포였기 때문에 연사속도면에서 엄청느렸다. 분당 발사속도가 아무리 빨라봐야 4발, 보통은 2발이 평균이었다. 그것도 전차가 정지하였을 때의 분당발사속도이고 전차가 기동중에는 전차포탄을 제대로 장전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1발을 발사하는데 2분이 넘게 걸렸다. 그 사이 적(독일군)전차인 티이거-1은 분당발사속도가 4발이기때문에 2분이라는 시간동안 최소 8발이상을 연사 할 수 있었다. 누가 보아도 누가 우세인지는 확연히 드러나는 항목이다.

 

두번째는 원거리 사격시 포탄의 명중률이다.
정밀하게 설계되고 제작되어진 독일전차보다는 구조적으로 간단하고 생산이 쉽게 만들어진 소련군에게 대개 해당되는 사항이다. 당시 소련 JS-2의 경우에는 1500m이상의 원거리 사격시 명중률이 거의 0이라고 봐도 무방 할 정도로 암울한 수준이었다. 독일군의 경우 3000m의 거리에서 포탄을 날리는 것과 비교하면 참 비교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독일군은 평균적으로 2000m거리에서 교전을 위한 포탄을 발사하였다고 전해지니 소련으로서는 참 막막하기만 할 따름인 상황이었던 것이다.


세번째는 사용가능한 포탄의 탑재량이다.
JS-2는 통상적으로 적 전차(티이거-1)을 격파하는데 포탄 3 ~ 5발을 소요하였는데, 이들 전차가 적재하고 다니는 포탄의 량은 고작 28발이다. 독일군의 티이거-1의 전기,중기형은 92발, 후기형이 110발을 적재하고 다니면서 넉넉한 포탄 수납량을 자랑하는데 비해 JS-2는 많지않은 포탄을 가지고 다녀야 하였으므로, 만성적인 포탄 수급의 곤란함을 겪어야만 했다. 적 전차(티이거-1)를 완파시키는데 필요한 포탄의 량을 3발기준으로 할 때, 9대의 티이거-1을 격퇴시키면, 포탄이 모자라 더 이상 전투가 불가능하였으며, 5발을 기준으로 하였을 경우에는 적 전차(티이거-1) 5대를 완파하고 6대째에 교전중에 포탄이 바닥나는 상황이 일어났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JS-2는 티이거-1을 상대로 하여 원거리에서 상대를 하자니 명중률이 크게 떨어지고, 근거리에서 상대를 하자니 피해가 월등하게 크게 날 거 같고, 기동전을 하자니 포탄의 명중률이 흔들리고, 또한 포탄의 탑재량도 넉넉지 않기 때문에 스펙에서 떨어지는 티이거-1을 실전에서는 라이벌 구도로 형성하게 되었다고 본다.

출처: 본인작성

posted by 지나가다가
한국이야기 2007.12.15 21:23

한국은 지금 1800톤급 손원일급 잠수함 사업을 진행중에 있다. 이 사업은 9척의 1800톤급 214급 디젤잠수함을 확보하는 사업이다. 원래는 3척만 조달하려 하였으나 잠수함의 수중 발사 대함미사일의 기술 확보 때문에 독일과 협상을 진행중에 있었는데, 독일측이 기술을 전수시켜주는 대신 214급 디젤잠수함의 척수를 6척 더 건조 해 줄 것을 요청하여 이를 받아들여 기존의 3척에다가 신규 6척을 더하여 9척의 214급 디젤 잠수함을 확보하게 되는 사업이다. 그래서 척수가 3척에서 6척이 불어난 9척으로 된 것이다. 아뭏든 손원일급 잠수함 사업은 현재 순조롭게 진행중이다. 그리고 이 사업을 뒤잇는 사업이 장보고-3 사업이다. 장보고-3 사업은 비로소 중형급 잠수함의 확보를 원하는 한국해군에 부합되는 사업으로 2018년 이후에나 진행이 될 사업이다. 그럼 장보고-3 사업은 어떻게 진행될까? 장보고-3 사업에서 확보될 잠수함인 중형 잠수함의 특징은 아래와 같이 크게 4가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1. 3000톤급의 잠수함
2. AIP기관을 채용한 본격적 잠수함
3. 디젤잠수함
4. 수직발사체계(VLS)를 통한 수중에서의 순항미사일 발사.

 

위의 내용을 보듯이 한국이 원하는 장보고-3사업에서의 잠수함은 3000톤급 잠수함이면서, AIP기관을 가지고 있으며, 디젤기관이지만, 수직발사체계를 갖춰 순항미사일 발사기능을 가진 잠수함이다. 즉 원양에서의 작전이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음이 있는 잠수함을 한국해군은 원하는 것이다. 사실, 수상함처럼 잠수함은 바람과 기상의 영향에 크게 좌우되지 않고 수중항행을 할 수 있다. 수상함 같은 경우에는 기상조건때문에 대형, 중형, 소형함의 구분, 성능이 뚜렷하게 나타나지만 잠수함의 경우에는 전체 작전일수만이 영향을 받을뿐이지, 기상때문에 수중에서의 활동 폭을 제약 받는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 같은 사실은 이미 한국의 209급(장보고급) 잠수함이 무 보급으로 하와이까지 잠항을 하여 항행한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은 3000톤급의 잠수함을 확보하려 한다니 이는 더 더욱 원양에서의 작전활동 일수를 더 확대하기 위한 것이며, 더구나 수중에서의 순항미사일을 발사 할 수 있다는 점을 본다면 어뢰,기뢰만을 운용하는 외발잡이 잠수함에서 진정한 타격력을 갖는 잠수함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한국은 매우 든든한 수중전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이로 말미암아 한국은 이 3000톤급의 잠수함 확보사업을 통하여 대양해군을 떠 받치는 수중전력의 기초를 탄탄하게 하는 근간을 마련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출처: 본인작성

posted by 지나가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