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야기 2008.01.02 00:22
특공병기(항공): 공중 낙하 토치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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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부대는 근대전의 인기이다.그러나 그 강하에 임하고, 공중으로부터, 지상으로부터, 당연히적 맹 반격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을 격퇴하기 위해서 출현한 것이 이 공중 토치카이다. 이것은 대형의 수송기로부터 낙하되어 개산 후 공중에 떠 있는 동안은 적기를 격퇴, 또는 아군 강하 부대를 보호해, 착륙 후는 토치카가 되어 아군을 보호한다. 쉽게말하면, 강하낙하산부대+토치카차량의 임무를 합성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강하 부대의 위기는 착륙 후부터 공격에 옮기는 순간에 있으므로,이전의 아군 원호를 인수하여,토치카차량에 태운후 바퀴가 달려있는 그 주행성을 이용하여 이동 군사지역까지 안전하게 이송을 한후 목표물을 요격할 수 있도록 하게 지원해준다. 이 공중 토치카는 강철혹은 강화목에 만들어져 표면은 충분히 장갑 되어 있다.기동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움직이면서 지상토치카의 역할도 완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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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하여 지상에 착지 할 때의 충격을 흡수하기 위하여, 유압완충기를 가진 충격흡수장치를 아래에 달고있으며, 착지 후에는 자주적인 이동이 가능하도록 50마력의 전동기를 달고 있다. 무선통신을 하기 위한 단파라디오 장비를 하고 있고, 기관총보다 강력한 위력의 30mm쌍열 기관포를 장비하고 있다. 또한 공중토치카의 방호력은 강화유리와 강철등으로 이루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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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은 페이퍼 플랜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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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7.12.28 23:53
舊 일본군의 원폭개발계획

▣ 끝나지 않은 비밀 프로젝트, 일본의 원폭개발

* 일급비밀!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원폭개발
미드웨이 해전에서의 패배 후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일본 군부는 전세를 단번에 역전시킬 원폭을 개발하기로 하고 이를 동경대 이화학연구소에 지시한다. 당시 핵물리학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이었던 이화학연구소는 입자가속기와 우라늄 분리통을 도입하여 본격적으로 원폭개발에 나서게 된다.

* 흥남의 비밀 공장, 그 안에서는 무엇이 개발되었나?
1945년 3월 동경 대공습으로 일본 내에서의 개발이 어렵게 되자 일본은 북한지역에 있는 흥남에서 원폭개발을 계속한다. 당시 흥남은 질소비료공장, 화학공장등 대단위 공단이 들어선 신흥도시로 원폭개발에 필요한 중수와 전기가 아시아에서 가장 풍부했으며 해군기지가 들어서 있었다.
흥남공단은 평시에는 비료나 화학약품을 만들지만, 전시에는 바로 군사용으로 전용이 가능한 것이었다. 흥남에서의 원폭개발 비밀프로젝트 이름은 바로 < NZ프로젝트 >였다.
< NZ프로젝트 >는 수소화합물을 이용하여 항공기, 잠수함, 인간 어뢰 등의 제트엔진 연료를 개발하는 것이 주목적이었으나, V1, V2라는 장거리미사일도 비밀리에 개발하고 있었다.

* 1945년 흥남 앞바다에서 원폭 실험이 있었다?
1947년 연합군사령부 정보 보고서는 놀라운 내용이 들어있다.
1945년 8월 12일 흥남 앞바다에서 섬광과 버섯구름을 동반한 폭발이 있었으며 천 야드 정도 되는 직경의 불덩이가 하늘로 솟았다는 것이다. 섬광과 버섯구름은 바로 원폭실험의 가장 유력한 징표이고 다른 무기는 버섯구름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 보고서는 상당한 논란을 증폭시켜왔다.
8월 12일은 바로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폭을 맞은 직후여서, 일본이 흥남의 원폭실험 때문에 항복을 늦추고 있었다는 의혹을 낳았다. 또한 일본은 원폭개발에 성공했다면 인간어뢰, 풍선폭탄, 잠수함 등에 원폭을 탑재해 가미가제식으로 미국을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첫 목표는 하와이였고, 최종 목표는 미국 본토였다.

* 기상천외한 ‘풍선 폭탄’ 공격, 미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다
1940년대 미국 역사상 최초로 본토가 공격을 받아 6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9.11테러보다 무려 60여 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맨하탄 프로젝트에 따라 핵무기를 만들고 있던 공장’의 변압기가 풍선 폭탄으로 인해 멈추는 사고까지 있었다. 주범은 바로 ‘풍선폭탄’이었다.
일본은 Z기류를 이용해 9천 개의 풍선폭탄을 미국을 향해 날렸다. 이중 1천여 개가 미국 본토에 떨어져 미국 본토를 유린했다. 미국은 이 풍선 폭탄 안에 세균무기가 들어 있을까봐 초긴장상태였다.
풍선폭탄을 요격하기 위해 전선에 나가있던 전투기를 회항시키고 화생방부대를 각 산악지대에 출동시키는 등 법석을 떨었다. 그리고 이 풍선폭탄의 최종목표는 원폭을 탑재하는 것이었다.

* 잠수함  U-234호, 우라늄 560kg의 정체는?
1945년 5월. 독일 잠수함이 각종 기밀자료를 싣고, 일본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다 한가운데서 독일이 항복하자 대원들은 격론 끝에 미국에 가서 항복하기로 한다.
한편, 이 배안에는 우라늄 560kg이 들어있는 것이 밝혀지자, 미국은 경악했다. 각종 첩보로만 듣고 있던 일본 원폭개발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 우라늄 발견과 히로시마 원폭투하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미국의 히로시마투하 원폭에 이 우라늄이 포함된 것은 아닐까?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은 이 사건에 대해 많은 역사가들은 “일본이 재료(우라늄)를 받으려다 완제품(원폭)을 받았다”고 평하기도 한다.

* 일본 핵무장의 기초를 닦은 나카소네 야스히로의 야심
원자력 예산 2억3천5백만엔의 비밀

패전의 상흔이 아물기도 전인 1954년 당시 국회의원인 나카소네의 주도로 일본은 원자력기본법을 통과시킨다. 이로써 2차대전때 원폭개발의 전력을 지닌 일본은 또 한 번 핵무장의 기초를 쌓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당시 원자력기본법안의 예산이 바로 2억3천5백만 엔이었다. 나카소네는 이는 우라늄 235를 겨냥한 것이었다고 밝혀 핵무장의 의지를 드러냈다.
이 기본법통과로 인해 일본은 도카이무라(東海村) 원자력발전소를 비롯 원전건설에 박차를 가하게 되는데, 이는 에너지난 해결 뿐 만 아니라 군사용으로 전용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나카소네는 70년 방위청장관 재직 시에도 핵무장에 관한 비밀보고서를 만들었는데, 이때의 실무책임자는 이토 히로부미의 손자였다.

* 사토 에이사쿠 수상 때 이뤄진 비밀, <핵개발 보고서>
1967년 사토 에이사쿠 수상은 핵무기를 제조, 보유, 반입을 금지하는 ‘비핵 3원칙’을 발표, 이 공로로 노벨 평화상(1974년)을 수상한다. 그런데, 사토는 또 다른 한편에선 핵무장가능성을 검토하는 비밀보고서를 만들게 하여 핵에 관한 일본의 이중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러한 일본의 이중성은 그 후로도 계속돼 1995년 사회당인 무라야마 총리 때에도 핵무장을 검토하는 비밀보고서를 만들어냈다.
즉, 핵에 관한 한 일본은 표면적으로는 비핵3원칙을 내세우면서도 내면적으로는 핵무장을 향한 준비를 끊임없이 준비해온 것이다.

* 일본 고속증식로의 설계자 오마에 겐이치의 충격적 발언
90일내에 핵무기 제조가능하다

1970년 일본 고속증식로를 직접 설계한 오마에 겐이치는 일본의 핵무기제조 기술력에 대해 “일본은 준(準)핵보유국이다. 일본은 90일 안에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놀라운 발언을 했다. 정치지도자들의 강력한 리더십과 재처리, 농축시설과 그리고 고속증식로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공식적인 정상회담 뒤에 벌어지는 비공식 정상회담의 의제 1순위가 바뀐 적이 없다고 한다. 바로 재처리와 농축시설 허가다. 특히 2005년 5월 30일 일본최고재판소에서는 고속증식로 원형로인 ‘몬주’의 가동을 합법화하는 결정을 내렸다. 몬주는 사용한 핵 연료보다 많은 핵연료를 다시 만들어내도록 돼 있어 이른바 ‘꿈의 원자로’로 불린다. 그런데, 이러한 고속증식로의 문제는 무기급 플루토늄의 생산 역시 가능해 진다는데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핵! 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 일본의 원폭개발 프로젝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출처:
http://blog.naver.com/korea213/8003515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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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7.12.28 23:51

다이아타리(體當たり).

 

일본 특공의 시조 혹은 근본이 되는 것으로 다이아타리(體當たり)의 직접적인 뜻을 헤아려보면, 직접충돌이라고 해석 할 수 있겠다.상대방에게 나의 몸을 돌격하여 직접 타격을 입히는 것이다.

 

나의 몸을 직접 상대방에게 돌격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돌격하는 본인도 적지않은 상당한 피해를 입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럼에도 다이아타리가 일본 특공의 원조로 사용되게 된 것은 다이아타리를 이용하여 전과를 올려 일본군 전체의 사기를 끌어올리는데 일조를 하여, 미군을 격멸하는데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사실, 다이아타리(體當たり) 전술이 나오게 된 것은 타이완 항공전에서 대부분의 해군기를 잃고 10분의 1에 지나지않는 기체를 보유하고 있던차에 고육지책으로 나온 상대 타격전술이었다.

 

다이아타리(體當たり) 전법은 주로 일본 해군기에 의한 돌격공격용으로 쓰였는데, 대개 통상적인 다이아타리(體當たり) 공격전술을 보면, 자신의 기체 혹은 동체를 가지고 적기의 주익(날개)의 끝부분을 스치듯이 가격하고 달아나는 방법을 썼다. 자신의 기체의 날개부분을 단단히 한후 돌격을 하기 때문에 상대를 타격하는데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종종 타격을 가하던 자신의 기체 주익이 부러져 오히려 추락사 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럼에도, 다이아타리(體當たり) 공격전술을 통해 상대방 미군기를 꽤 많이 떨어뜨리고도 정작 자신은 살아서 돌아오는 경우도 있어 일본해군은 이들을 특공의 영웅으로 칭하여 일본군의 사기를 앙양하는데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훗날, 이 다이아타리(體當たり) 직접충돌 전법은 카미카제라고 불리우는 神風전술에 응용되기도 하였다.

 

 

 

출처: 본인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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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7.12.28 23:43
특공(特攻)의 뜻

특공이란 특수공격 혹은 특별공격의 준말이다. 특수공격,븍별공격이란 말은 상대와의 정공법에서 밀리기 때문에 뒤쳐진 전세를 만회하기 위해 감행하는 공격법이다. 특공이 많을수록 그 만큼, 아군이 상대와의 전쟁에서 밀린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특공은 사람목숨을 담보로 하여 실행되는 공격법이다. 따라서 자발적으로 특공에 자원하고 지원한 사람들이 있다면 크게 대접받고 칭찬받아 마땅 할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특공에 동원된 사람들은 식민지하에서 억압을 받던 식민지 젊은이들로 구성되어 허망하게 최후를 맞이했던 것을 본다면 특공에 동원된 사람은 결코, 지원자에 의한 것이 아닌 강요와 압박에 의한 결과물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미국과 독일에서도 특공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은 사람의 탈출이 가능하게 여지를 남겨둔 채 특공을 감행 하였으나, 일본은 탈출조차 하지 못하도록 잠금장치를 하였다는 점이 틀린점이다. 그리하여 일본이 얻은 것은 인명경시를 하는 자폭국가의 원조라는 점이다.

출처: 본인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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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7.12.28 23:38

舊 일본군의 회심의 필살병기 '풍선폭탄'


When General Jimmy Doolittle led his B-25 bombers in a sneak raid over Japan in the spring of 1942, he set into motion a chain of events that would result in one of the more bizarre stories of World War II: the Japanese attempt to attack the continental United States by bomb-carrying balloons, floating across the entire Pacific Ocean.
1942년 봄, 지미 둘리틀 장군이 B-25 폭격기들을 이끌고 일본을 폭격했을 때,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 벌어진 더욱 기상천외한 이야기 중 하나가 입안 중에 있었다. 즉, 일본인들이 태평양 전체를 가로질러 떠다니게 될 ‘폭탄을 운반하는 풍선’으로 미국 전체를 공격하려고 기획한 것이 그것이다.  

From the late fall of 1944 through the early spring of 1945, the Japanese launched more than 9,000 of these "fire balloons", of which 300 were found or observed in the US. Some guesswork gives the total number that made the trip at about 1,000. Despite the high hopes of their designers, the balloons were totally ineffective as weapons, and survive in memory only as an ingenious and malevolent curiosity.
1944년 늦가을에서부터 1945년 초봄까지, 일본인들은  ‘화염 풍선들’을 무려 9000개 이상 발사했다. 일부 추측에 따르면 그중 약 1000개 정도가 미국까지 도달했을 것이라 보고 있다. 일본인 설계자들의 높은 희망에도 불구하고, 그 풍선들은 무기로서의 효과가 별로 없었으며, 단지 ‘아주 독창적이면서도 비웃음이 터져 나오는 진기한 생각’ 정도로 기억될 따름이었다.


The Japanese performed a small number of attacks on the American mainland through World War II. In February 1942, Japanese Submarine I-17 shelled an oil field up the beach from Santa Barbara and damaged a pump house. That following June, Submarine I-25 shelled a coastal fort in Oregon, damaging a baseball backstop, and in September, that submarine's crew assembled and launched a small float plane that dropped incendiary bombs, starting a few small forest fires.
일본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실제로 미국 본토에 대해 몇 차례의 공격을 실시한 바 있다. 1942년 2월, 일본 잠수함 I-17은 산타 바바라의 해안에 떠올라 유전지대에 포격을 가하여 유정油井 펌프 하나를 파괴한 바 있다. 같은 해 6월에는, 잠수함 I-25가 오레곤 해안 부대를 포격하여 야구장의 백네트를 파괴하였고, 9월에는 잠수함 승무원들이 조립하여 날리는 소형 수상기 한대가 소이탄 몇 개를 투하하여 아주 작은 규모의 산불을 일으켰다.


The fourth and final attack, using balloons carrying incendiary bombs, was the most earnest of them all. The concept was the brainchild of the Japanese Ninth Army Technical Research Laboratory, under Major General Sueyoshi Kusaba, with work performed by Technical Major Teiji Takada and his colleagues. The balloons were intended to make use of a great strong current of winter air that the Japanese had discovered flowing at high altitude and speed over their country, which would someday be known as the jet stream.
소이탄을 운반하는 풍선들을 사용한 4번째이자 마지막 공격은 전반적으로 가장 큰 위력을 가졌었다. 이런 풍선폭탄의 발상은 수에요시 쿠사바 소장 휘하의 기술 장교 테이지 타카다 소령과 그의 동료들 및 부하들로 구성된 일본 육군 제9군 기술 연구소의 작품이었다. 그 풍선들은 겨울 공기의 대단히 강력한 흐름(바람)을 사용하도록 고안되었는데, 일본인들은 그러한 바람이 그네들 나라의 높은 고도에서 대단한 속도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으며, 그 바람은 오늘날 ‘제트기류’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The jet stream blew at altitudes above 9.15 kilometers (30,000 feet) and could carry a large balloon across the Pacific in three days, over a distance of more than 8,000 kilometers (5,000 miles). Such balloons could carry bombs to the United States and drop them there to kill people, destroy buildings, and start forest fires. In this way the Japanese would punish the impudence of the Americans for the Doolittle raid against Tokyo and other Japanese cities in 1942. They named the weapon "fusen bakudan", which literally means "fire bombs", but which has been translated as "fire balloons".
제트기류는 태평양 상공 9.15킬로미터(30,000 피트) 정도에서 불고 있었으며 8000킬로미터(5000마일) 이상의 거리를 3일 만에 돌파하여 커다란 풍선을 운반할 수 있었다. 이러한 풍선들은 미국까지 폭탄을 운반할 수 있었으며, 투하되기만 하면 사람들을 죽이거나 건물들을 파괴하고 또한 산림지대에 불을 낼 수 있을 것이었다. 일본인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1942년에 도쿄 및 일본의 여타 도시들에 대한 둘리틀 장군의 폭격 덕에 기고만장해진 미국인들에게 화끈한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보았던 것이다. 그들은 ‘후센 바쿠단’이라는 이름을 그 무기에 붙였는데, 이는 문자 그대로 ‘화염 폭탄’이라는 뜻이었지만, 그러면서도 실제로는 ‘화염 풍선’이라는 의미로 번역되어 왔다.
     
Building a balloon that could survive a trip across the Pacific and then automatically drop its war-load was technically challenging. A hydrogen balloon expands when warmed by the sunlight and rises, then contracts when cooled at night and falls. The engineers devised a control system driven by an altimeter that discarded ballast to maintain altitude.
태평양을 횡단하는 여행에서 살아남게 해야 할 뿐만 아니라 폭탄을 자동적으로 투하하도록 하기 위한 풍선의 제작은 기술적인 모험이었다. 수소가스로 부풀린 풍선은 대낮에 태양광선에 의해서 따뜻해졌을 때 부풀어나는 데다 필요이상 상승하게 되며, 그런 다음에는 밤이 되어 시원해졌을 때는 쪼그라들면서 위험할 정도로 하강하기까지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기술자들은 풍선을 적당한 고도에 있도록 안정시켜주는 고도계에 의해서 운행되는 조종 시스템을 고안해 내었다.


When the balloon descended below 9 kilometers, it electrically fired a charge to cut loose sandbags. The sandbags were carried on a cast-aluminum four-spoked wheel, and discarded two at a time to keep the wheel balanced. Similarly, when the balloon rose above about 11.6 kilometers (38,000 feet), the altimeter activated a valve to vent hydrogen. The hydrogen was also vented if the balloon's pressure reached a critical level.
풍선이 고도 9킬로미터 아래로 내려가게 되었을 때, 풍선의 전기장치가 불을 뿜어 모래주머니들을 잘라내어 풍선을 가볍게 만든다. 모래주머니들은 주조된 알루미늄으로 된 4개의 바퀴모양 휠로 운반되었으며, 휠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한번에 두개가 버려지도록 되어있었다. 비슷한 모양으로, 풍선이 약 11.6킬로미터(38,000피트) 이상의 필요 이상으로 높은 고동에 이르게 되었을 때, 고도계는 밸브를 열어 수소가스를 새어나가도록 알아서 움직이게 된다.        

The control system ran the balloon through three days of flight. At that time, it was likely over the United States, its ballast expended. The final flash of gunpowder released the bombs, also carried on the wheel, and lit a 19.5 meter (64 foot) long fuze that hung from the balloon's equator. After 84 minutes, the fuze fired a flash bomb that destroyed the balloon.
그러한 조종 시스템은 3일간의 비행 동안 풍선을 조종하게 된다. 드디어 미국 상공에 도착하게 되면, 수소가스는 모두 소비된 상태가 된다. 화약에 의한 최종 섬광이 모래주머니와 함께 휠 위에 적제 되어 운반되어 온 폭탄들을 투하하게 되며, 그리고 풍선의 중간부분에 매달린 19.5미터(64피트) 길이의 퓨즈에 불이 붙게 된다. 84분 뒤에, 퓨즈는 풍선을 파괴하기 위한 섬광폭탄을 점화하게 된다.


The balloon had to carry about 900 kilograms (1,000 pounds) of gear, which meant a hydrogen balloon with a diameter of about 10 meters (33 feet). At first, the balloons were made of conventional rubberized silk, but there was a better way to make an envelope that leaked even less. An order went out for ten thousand balloons made of "washi", a paper derived from mulberry bushes that was impermeable and very tough. It was only available in squares about the size of a road map, so it was glued together in three or four laminations using paste derived from a tuber with the Japanese name of "devil's-tongue".
이는 결국 지름이 약 10미터(33피트)나 되는 수소가스로 가득 찬 풍선으로 약 900킬로그램(1,000파운드) 가량의 장비를 운반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초의 풍선들은 재래식으로 고무가 입혀진 비단으로 만들어졌으나, 나중에는 수소가스가 새는 구멍까지 줄어든 봉투를 만드는 더욱 혁신적인 방법이 생겨났다. 그 다른 방법에 의해서 1만개에 이르는 풍선들이 만들어졌는데, 그 재료는 ‘와시’(일본 한지)라고 불리는 뽕나무 가지를 원료로 한 종이로서 이는 습기가 스며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우 질기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종이는 오직 도로 지도 크기 정도의 네모난 모양으로밖에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일본인들이 ‘악마의 혀’라는 이름으로 부르던 감자 같은 식물에서 채취한 풀을 사용하여 세 장이나 네 장씩 겹쳐서 붙여야 했다.        

Hungry workers stole the paste and ate it. Many workers were teen-aged girls, whose fingers were nimbler than any class of people. They were told to wear gloves, to keep their fingernails short, and not to use hairpins. They assembled the paper in many parts of Japan. Large indoor spaces, such as sumo halls, soundstages, and theatres were required for the envelope assembly.
굶주린 직공들이 그 곤약으로 만든 풀을 훔쳐 먹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십대 소녀들이었으며, 그들의 손가락들은 그 어떤 계층의 사람들의 손가락보다 민첩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장갑을 착용하라는 지시를 받았으며, 그들의 손톱은 반드시 짧게 유지되어야 했고, 머리핀 같은 것은 절대 사용되어서는 안 되었다. 그들은 일본의 여러 지역에서 그 종이들을 조립했다. 예컨대 ‘스모 경기장’, ‘가수들의 공연장’, 그리고 극장 같은 닫혀져 있으면서도 거대한 공간에서 그 종이 봉투들을 조립할 것이 요구되었다.        

The workers had no idea of the purpose of their work. When rumors suggested the truth to them, that they were making "fusen bakudan" that would fly all the way to America and start fires, they laughed. Somehow, secrecy was preserved.
그 일에 동원된 노동자들은 그들이 하는 일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다. 나돌아 다니던 소문들이 그들에게 진실을 알렸을 때, 즉 그들이 미국으로 날아가서 불을 지르게 될 ‘후센 바쿠단’(풍선 폭탄)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는 이야기를 알려주었을 때, 그들 모두가 킬킬 웃어대었다. 알게 모르게 풍선폭탄에 대한 비밀은 지켜진 셈이었다.

출처: http://blog.naver.com/korea213/80020323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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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야기 2007.12.25 21:55
독일,음파대포(Germany, Sound-Gun)

독일군은 제2차세계대전中 실로 놀랄만한 신무기들을 많이 개발하였다. 그들이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었다면 전쟁의 양상은 전혀 누구도 예측불가능한 상태로 흘러가고 있을것이란 말이다.
V1무인항공유도폭탄,V2지대지단거리탄도탄,V3초장거리포,바써펄,라인보테,라인토흐터 등등..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신종무기들을 토해내면서 패전前까지도 연합국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독일군은 연합군들의 공중세력과 육상세력이 격해지자 이를 단번에 타개하고자 또 다른 신무기를  개발하는데 그것은 이른부 지대공/지대지 음파대포이다. 이 지대공 음파 대포는 보통 인간의 귀에 들리지 않는 초저음의 음파를 발산하여 음파가 발산된 지역을 걷는 군인이나 비행기 또는 탱크 안에 탑승하고 있는 군인들을 기절 혹은 죽게하는 장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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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을 이용해 음파 대포를 실험한 독일의 과학자들은 음파 영역을 걷는 동물들이 겉모습이 흉하게 일그러진뒤 몸이 풍선처럼 부풀다 끝내 폭발을 해버리는 끔찍한 모습을 봤다고 하며, 곧이어 빠른 시일내 음파대포가 실전에 배치될 수 있을것이라고 판단한 학자들은 실험 영상을 관람한 군의 장성들이 너무 무기가 끔찍하고 잔인하다는 결론을 내리자 도중 하차를 시키고 말았다.


그후 연구소의 지하실에 있던 실험용 음파대포는 후에 독일군 신무기 연구소 지역을 점령한 미군에 의해접수가 되었다. 고 하나 그 이후 음파대포는 더 이상 개발이 되지 않았거나 비밀스럽게 새 기종으로 개량된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제2차대전後 이 계획은 미군에 의해 압수되고 현재에 이르러 미군이 테러리스트 제거와 효율성 높은 전투를 위해 은밀히 음파대포의 계획을 재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방사형 스피커 직경 : 3m+
음파대포사정거리 : 50m   의 제원을 가진다고 한다..

요즘 미국이 고주파를 이용한 신무기를 개발하였다고 한다.
다음은 미국이 요즘에 만들었다는 음향포에 대한 설명이다.
이 대포는 고주파를 발산하기 때문에 적군 병사가 이 대포의 전후좌우 90 m반경 이내에 머무를 수 없다고 합니다. 또 포의 유효 사정은 270m이며, 고주파를 회피하기 위하여 귀를 막아도 쓸데 없다고 합니다. 음향포는 2100에서 3100 Hz의 고주파음을 발한다고 합니다. 이 음향포를 개발한 회사의 연구 개발자에 의하면, 이러한 소리에 장시간 노출해지면, 인체의 기능이 저하하고, 청력 장해등의 후유증이 남을 만큼 위험한 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다음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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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것과 크기만 차이날 뿐 거의 흡사 한 것으로 보여진다.
독일의 음향대포가 미국을 통해 다시 환생하였다고 보면 될까?

출처: 본문은 본인작성, 사진은 인터넷 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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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야기 2007.12.25 21:41
보르텍 대포라고 불리우는 대포는 독일군 신무기 연구소의 소장인 오스트리아계 자이머 마이어 박사에 의해 개발 되었다. 보르텍 대포의 특징은 작은 발전소에서 강한 공기압을 만들어 이를 하늘에 날아다니는 전투기와 폭격기등 근처에 발사한뒤 비행기들이 회오리 바람에휘말려 추락하게 만드는 신무기였다. 실험을 통해 실전에서 충분히 사용될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나 1945년 2월 스위스 국경에 있던 유일한 보르텍 대포의 모터 공장이 갑작스런 폭격을 받아 산산히 부서져버린 관계로 개발이 중지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Barrel Length : 12m
Barrel Diameter : 700mm
Nozzle Size : 13mm
Range : 2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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