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Rep 2008. 1. 15. 20:21

일본, 90식전차는 해안방어용의 전차이다.

일본의 육상자위대 90식전차는 주로 홋카이도... 북부방면대에 배치되어 있다. 다른 곳에는 90식은 잘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건, 소련군의 홋카이도 상륙을 감안하여 만들어져서 그렇다. 소련군이 홋카이도에 만일 상륙을 한다면 곱게 상륙을 할까?
처음엔 기습적으로 야음을 틈타 상륙을 하려고 하겠지만, 그것이 용이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무차별적인 공격세례를 퍼부으면서 상륙을 하려 할 것이다. 이런 소련군의 공세를 막아내면서, 소련군에게 저항을 하기위해선 강력한 화력을 가지면서, 전면장갑이 두터운 무기가 필요 할 것이다. 토치카는 안되고,,,, 지상에 고정 설치 된 토치카는 적에게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아 궤멸되는 것은 자명한 일...따라서, 기동하면서, 적에게 상당한 타격을 안겨주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전차"이다. 그것도 두터운 장갑을 가져 좀 처럼 전면장갑이 파괴되지 않는 전차이다. 그런 전차를 개발하다 보니, 전면장갑은 육중하게 만들어 졌으나, 양쪽의 옆 장갑은 그에 비해, 약한장갑을 가진.... 약간 언 밸런스한 모습을 가진 전차를 만들게 된다. 측면장갑까지 두텁게 하려고는 하였으나, 그러면, 기동성에서 뒤쳐지는 바람에 오히려 소련군(지금은 러시아군이다..)에게 덜미를 잡힐 수 도 있어,  측면장갑은 약간 희생을 하더라도, 적의 포탄을 앞으로부터 직접 부딪치는 전면장갑의 강화에 치중하여, 전차를 만들게 되었다. 그렇게 나온 전차가 90식 전차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의 90식 전차는 전체적으로는 방호력이 약간 언 밸런스한 구조를 지닌 전면장갑만 놓고보면 당시 세계최강의 전차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이후, 90식전차는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가 신생되어지면서, 홋카이도에 적군이 침입 할 가능성이 점점 적어지면서, 90식전차의 효용성이 의심되기 시작하였고, 이 때문에 차세대의 일본전차를 연구,개발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솔솔~ 나오는 일본차기전차가 그런맥락에서 나온전차이다. 하지만, 차세대의 전차를 연구,개발,생산,완료하기 이전까지는 90식전차를 계속적으로 사용해야 하였기에 측면장갑을 보완,강화하게 되었던 것이다.

 

참... 그리고, 세계적인 전차들의 부앙각들은 아래와 같다고들 한다...

 

미국의 M1A1            +20/-10
독일의 Leopard2      +20/-9
이스라엘의 Merkava +20/-8.5
영국의 Challenger2  +20/-10
프랑스의 Leclerc      +15/-8

일본의 90式전차          +10/-7

 

위에서 보듯이, 90식전차의 부앙각이 세계적인 전차들의 부앙각에 비해, 상당히 각폭이 적다는 알 수 있다. 포신의 부앙각 폭이 적다는 것은, 다양한 방법으로 돌진 해 오는 적에게 적절하게 대응을 할 수 없다는 단점을 노출한다. 약점인 것이다. 90식전차가 그렇다고 하는데, 소련군의 해안침투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전차가 그런 단점을 가지고 있다는것이 이해가 안되는 대목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궁금한 대목이다.....아무튼,,,,

아래의 그림은 90식전차의 부앙각을 나타내주는 그림이며, 90식전차의 실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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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전차는 K시리즈 전차처럼 차체를 기울이거나 낮추는 자세제어 기능을 가지고 있어 부앙각을 조절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저렇게 차체가 낮으면 아무래도 부앙각에 제어가 따를 수 밖에 없겠지요. 그것을 자세제어로 커버 가능합니다. 고각이 필요하면 앞을 들고 뒤를 낮추고 저각이 필요하면 앞을 낮추고 뒤를 들면 되죠. 또한 고지에서 저지로의 사격을 상정하기 때문에.. 이러면 상당히 유리해지죠.

    2010.06.20 19:51

일본이야기 2008. 1. 15. 12:54
특공병기(수상): 재활용 어뢰정 (特攻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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特攻筏 간이 어뢰정
쇼와 18년(1943년)말기, 일본의 전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일본의 카미카제 공격으로 쓸만한 항공기도 부족하고, 미해군의 의한 수상함들의 침몰로 어뢰발사관도 부족 해 지자, 일본의 구레 해군공창 어뢰 실험부에서는 남아도는 어뢰의 사용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심사숙고하다가 남아도는 어뢰로 적군의 함정에 다가가 어뢰공격을 하는 형식의 공격방식을 제안하기 이른다. 그러나, 적함에 어떻게 다가 가느냐가 문제였는데, 개전 전보다 열악해진 공업력은 더 이상 수상함을 만들어 내기 불가능하였고, 결국은 어뢰정을 간이로 만들어 여기에 2발의 어뢰를 양현에 탑재하고 적함에 다가가 어뢰로 뇌격을 하는 공격방식을 채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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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짧은 사정거리의 어뢰를 탑재 하였을 경우에는 적함 가까이까지 다가가야 했기 때문에 적군의 초계시스템에 발각되어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장거리의 어뢰를 탑재하였을 경우에만 효과를 보이는 공격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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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어뢰정은 평평한 목재로 된 널판지에 수상모타를 단 형태였으며, 양현에는 각각 1기씩의 어뢰를 장비하고 있었다. 최고속도는 12
노트정도. 그러나 운용상에도 난점이 없지않아 있는데, 그것은 어뢰의 발사시, 어뢰가 정확히 발사되지 않고 다운트림이 걸리면 어뢰의 프로펠라가 목재로 된 널판지를 파괴하여 탑승원에게도 피해를 입히는 일이 종종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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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8. 1. 15. 12:15
특공병기(수상): 자폭 고속정 신양神洋(しんりゅ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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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승의 1형 자폭고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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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승의 2형 자폭고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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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요는 일본해군이 수상특공병기로는 유일하게 채용되어 운용되었던 병기로서, 일본해군 내부에서는 마르욘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자폭 고속정 신요는 목재로 만든, 정확히 말하면 베니어 합판으로 만들어졌으며 가벼운 목재 고속 선박에 토요타 자동차用 80마력 엔진 1기를 장착하였고, 목재 고속정의 앞 부분에다가는 250kg의 폭탄을 탑재하여 미 해군의 군함등에 육탄공격을 하는 특공병기이다. 이 자폭고속정은 가벼운 베니어 합판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수상항주時 기동성은 매우 좋았으며, 이 신요 자폭고속정에의 종류에는 한명이 탑승하는 1형과 두사람이 탑승하는 2형이 존재하는데 1인승의 1형은 최고속도가 33노트이고, 2인승인 2형의 최고속도는 35노트이다.

신요의 공격방식은 주로 야간에 기습을 하는 단순한 공격형태를 띠고 있다. 미해군 함대가 모여있는 함대진영에 밤 늦게 엔진을 끄고 흘러 들어가 가까운 사정거리까지 접근 한 다음, 집단적으로 기습을 하여 공격을 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하였다. 미해군의 전함의 경우에는 4 ~ 6대의 신요 자폭고속정이 집단으로 공격하는 형식을 띠었으며, 미해군의 구축함을 격침하기 위해서는 3 ~ 4척의 신요 자폭고속정이 집단으로 공격하는 형식을 띠었다. 종전시까지 약 6,200척이 건조되었다.

[진양]이라고 하는 이름은 메이지 유신의 군함의 이름으로부터 채용되었으며, "적함을 격침하고 태평양을 뒤흔든다"라고 하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수상함의 가미가제라고나 할까?..

선박형태: 자폭용 고속정
선박엔진: 토요타 자동차 엔진용 80마력엔진 1기
전체길이: 5.10m
전체중량: 1.40ton
전체너비: 1형:1.67m  2형:1.86m
폭탄탑재: 1형: 250kg 2형: 250kg
탑재무장: 1형:120mm로켓탄 2발. 2형:13mm기관총 1정탑재
최고속도: 1형: 33노트  2형: 35노트
공격형태: 야음을 틈 탄 집단적 기습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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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8. 1. 15. 12:07
특공병기(수중): 자기기뢰 설치 잠항정 진해震海(しんかい)
震海(しんかい) - 時限式 機雷(磁氣吸着爆雷)設置 攻擊潛航艇

震海(しんかい)는 구 일본제국해군의 특수 잠항정이다. 이 잠항정은 시한폭발식 자기 흡착 기뢰를 함수에 장착하고 잠수하여 적함에게  다가가 적한의 선저(배 밑부분)에 자기 흡착기뢰를 설치하여 공격을 하는 목적으로 설계되었다.
시한식 자기 흡착기뢰를 설치한 잠항정은 유효거리까지 빠져나온 후 무선조정을 통해 자기 흡착기뢰를 폭발시켜 적함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게끔 설계되었다. 그러나, 한번 나가 여러 적함에게 이런 공격을 다수 실행하기 위해선 기뢰의 수납능력이 뛰어나야 하는데, 기뢰의 수납능력이 떨어지면서 공격이 일회성으로 끝나고, 호위 잠수함 없이 단독으로 공격을 하는것이 매우 곤란하다하여 제식 채용은 안되었으며 따라서 건조대수는 매우 적은 실정이다.

공격방식만 놓고보면 실용적인 최초의 잠수함인 미국의 헌리호와 같은 공격방식이라 볼 수 있다.

전체길이:12.5m
전체너비:1.65m
전체직경:1.2m 
수중배수량:11.5t
수중속도:9kt 
항속거리:불명
추진체계:20마력짜리 전동기
최대출력:20마력
연료체계:축전지
무장병장:時限式機雷(磁氣吸着爆雷)(炸藥1,200kg)


출처: 본인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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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8. 1. 15. 12:04
특공병기(수중): 유익 잠항정 해룡 海龍(かいりゅう)
특수잠항정(날개달린 잠항정, 有翼特殊潛航庭, 特殊潜航艇 海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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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명칭인 “SS金物”이라고 지정되었던 잠항정이다. 2인승의 잠항정으로 98식 450mm어뢰를 양현에 1기씩, 총 1기를 장비하였으며, 이를 이용하여 침투공격을 감행했던 잠항정이기도 하다.
잠항정의 조종 장치는 쌍발 폭격기 "銀河"의 것을 유용하여 조종성이 비행기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잠항정 양쪽에 날개가 달려 있어서, 날개의 상하조절을 통해 잠항의 상하조절을 하였으므로 다른 잠수함들이 부력탱크에 의해 잠수, 항행을 하는 것과 비교하였을 때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 즉, 이 "海龍" 잠항정은 부력탱크가 필요없이 잠항時 상하 수심조절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항공기"銀河"의 조종 장치를 유용한 덕분에 잠항정의 조종 장치로 침로를 쉽게 운전 할 수 있었다. 또한, 날개가 날린 덕분에 기동성은 다른 보통의 잠수함과 비교하여 뛰어난 편에 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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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항주時에는 디젤엔진을 돌려 항주를 하였으며, 수중에 항행을 할 때에는 디젤을 돌려 얻은 전력을 축적한 축전지와 모터를 이용하였다.

"海龍" 잠항정은 본토 결전용의 무기로 계획, 개발 된 것으로 이 "海龍" 잠항정은 전기型은 수중속도의 향상을 위해 잠항정의 함수 부분이 매우 날카롭게 생긴 반면에, 후기型은 함수 부분이 유선형으로 매끄럽게 처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前期형의 잠항정 함수부분이 날카롭게 만들어진 것은 어뢰를 다 사용하고 최후의 수단으로 육탄돌격을 해서 적함에게 damage를 주기 위함이었다. "海龍" 잠항정은 본토 비밀기지 발진用으로서 운용될 계획이었지만 실전에서의 사용은 거의 전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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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8. 1. 15. 11:59
특공병기(수중) - 갑표적 정형 蛟龍(こうりゅ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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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標的(特殊潜航艇 ,특무잠항정) 丁型(蛟龍)전체 건조수가 115척이며 배수량 60.30톤, 전체길이 26.25m, 전체직경 2.04m에 수상150마력/수중500마력짜리 디젤엔진 1기를 채용하였으며, 역시 1축으로 된 이중반전 프로펠러를 돌려 추진을 하였다. 항속거리는 수상에서는 8노트를 기준으로 하여 1000해리를 갈 수 있었고 수중에서는 8노트를 기중으로하여 125해리를 항행 할 수 있었다. 안전잠항심도는 마찬가지로 100m이며, 2개의 어뢰발사관을 통해 450mm어뢰 2기를 발사 운용 할 수 있었다. 최고속도는 수중에서 19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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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標的(特殊潛航艇)·정형(蛟龍)

 정식명칭    甲標的(特殊潛航艇)·정형(蛟龍)
 건조대수  115척
 총배수량   60.3톤(수중)
 전체길이    26.25m
 전체직경    2.04m
 동력기관    디젤 1기 
 동력추진  1축
 동력출력    150 마력(수상)/500 마력(수중)
 계획속력   8 노트(수상)/19.0 노트(수중)
 항속속력  8 노트로 1000리(수상)/2.5 노트로 125리(수중)
 승무인원    5명
 안전심도   100m
 공격무장    45센치 어뢰 발사관 2기(탑재뢰수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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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8. 1. 15. 11:56

甲標的(特殊潜航艇 ,특수잠항정)은  태평양전쟁 당시 미드웨이 해전을 기점으로 미 해군에게 밀리던 판도를 순식간에 뒤엎을 생각으로 만들어진 특공 잠항 폭파무기이다. 이 甲標的(特殊潜航艇 ,특수잠항정) 甲型 과 丁型(蛟龍)으로 나누어져 버전이 존재하는데, 이 무기는 미 해군의 주력함대 진영에 몰래 잠입하여 장착 한 2기의 4500mm 어뢰를 소진하여 공격 한 후 자폭공격을 하는 공격방식을 채택하는 2인승의 소형 특무잠항정으로 볼 수 있다.  배수량이 1만톤이 넘는 치토세, 치요다급 함정을 모함으로 하여 특무잠항정이 위 함정에서 운용되었다. 이 같은 소형 특무잠항정들은 전쟁의 대세가 기울어 가는 것을 느낀 일본군이 일본에 상륙 할 미군에게 큰 타격을 줄 목적으로 고안되어진 본토결전용 특공무기이며, 이를 甲標的(特殊潜航艇 ,특무잠항정) 甲型 이라 부른다. 그리고 원양에서의 공격을 목표로 제작 된 것이 甲標的(特殊潜航艇 ,특무잠항정) 丁型(蛟用)으로 甲型보다 승무인원이 3명이 늘어난 5명이 탑승한다.

아래는 甲標的 丁型(蛟龍)의 特殊潛航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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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標的(特殊潜航艇 ,특무잠항정) 甲型은 시제 잠항정을 제외하고 36척이 건조되었으며 배수량이 46톤, 전체길이 23.90m, 전체직경 1.85m에 600마력 출력을 내는 전동기 1기를 주기관으로 1축의 이중반전 프로펠러로 추진되어지며, 최고속도가 19.0knot, 항속거리는 수중에서 6노트로 8해리를 갈 수 있을정도이며 안전잠항심도는 100m, 그리고 2기의 어뢰발사관을 통해 450mm어뢰 2기를 발사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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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8. 1. 15. 11:52
특공병기(수중): 자폭 잠수구 복룡 伏龍(ふくりゅ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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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류는 적(미군)의 상륙을 저지 할 목적으로 개발 된 특공병기이다.
오랫동안 잠수 할 수 있는 산소통을 맨 잠수부가 길다란 죽창 끝에 폭발력이 강한 접촉기뢰를 매달고 적(미군)의 상륙정이 해안가에 당도하기 직전에 상륙정의 하부에 접촉기뢰를 갖다대어 폭발을 일으켜 상륙정을 수장시키는 용도로 쓰이는 무기체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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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복을 입은 잠수구들이 10명을 한 조로 편성하여 작전을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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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촉기뢰(기계수뢰)를 매단 길이 2미터의 뾰족한 봉으로 적 함선의 선저(배 밑바닥)를 찔러 접촉기뢰를 발화, 적 함선을 격침시키는 비장한 결의를 가진 특공대중에서도 특공적인 병기이다.
그러나 실전에서는 잠수부들이 상륙정에 다가서기 위해서 접근하다가 상륙정에 치여 사망하는 일이 다수 발생하여 이 특공병기의 활용도는 극히 낮은 편에 속하였다.

출처: 본인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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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야기 2008. 1. 15. 00:42
북한의 방첩, 보안부서

북한의 보안/첩보 기관

국가안전보위부, 보위사령부, 인민보안성

노동당 작전부, 통일전선부, 대외연락부, 대외정보조사부

1) 국가안전보위부
◆ 국가안전보위부장 김정일 겸임? / 제1부부장 ? (제1부부장 김영룡이 부장대행이었으나 수년전 숙청)
◆ 평양특별시 서성구역 연못동 22층건물 (모란봉구역에도 청사가 있음, 창광산여관등 안가 다수)
◆ 국가정치보위부->국가보위부(82년 명칭개정)-> 국가안전보위부(93년 명칭개정)
◆ 반탐과 국내사찰이 주임무
◆ 한국의 국가정보원과 유사해 보이지만 국가정보원보다 담당 임무 범위가 좁다.
한국의 국가정보원(안전기획부)에 해당하는 사찰 및 첩보기관이다. 1973년 사회안전부에서 분리 독립하였다. 1987년 국가보위부장 이진수의 사망이후 보위부장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는데 김정일이 겸임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을 하고 있으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국가안전보위부의 주임무는 반탐 (국내방첩)으로 북한 내의 정치 및 사상동향 이상자 및 외국 간첩을 적발하는 조직이다. 국가안전보위부는 김부자 비방사건 수사 및 정치범수용소 관리, 반국가 행위자 및 대간첩수사, 공항·항만 등의 출입통제 및 수출입품 검사와 밀수 단속, 해외정보 수집·공작, 호위사령부의 협조아래 김정일을 비롯한 고위간부 호위 등의 임무를 맡고 있다. 따라서, 적극적인 대외 공작은 국가안전보위부의 주임무가 아니다. 다만, 반탐 임무와 관련하여 중국 동북지방, 홍콩, 마카오 등지에 해외조직도 운영한다.

조직 체계로는 부장아래 조직·수사·검열 등 수명의 부부장이 있고 산하에 행정체계에 따라 도(직할시)·시(군) 보위부를 두고 리단위에 까지 보위부원이 상주하고 있으며 기관·기업소 등에도 보위부 요원을 파견하고 있다.

특히 국가안전보위부 제2국은 해외반탐국 (82년창설)이다. 제4국은 해외공작을 책임지고 있다고하며 제8국은 일본 출신 북송교포를 담당한다고 한다. 제2국-해외반탐국은 모두 4과로 구성되는데 1과는 유럽, 2과는 북미, 3과는 총괄, 4과는 동아시아를 담당한다. 대외공작을 담당하는 노동당 35호실 등의 별도 조직이 있기 때문에 한국의 국정원보다는 임무 관할범위가 좁은 편이다.

국가안전보위부의 해외공작원 (2국 요원중 해외활동자) 한명에 공작토대 구축을 위한 협조자, 즉 `앞잡이'는 최고 10명까지 둘 수 있도록 허락되어 있는데 임의로 둘 수는 없다. 협조자의 신분과 가족사항, 사상, 이용가치 등을 면밀히 검토하고 수많은 테스트를 거쳐 변절 가능성이 없다는 심증을 굳힌 뒤 상부의 결재를 받은 다음에야 비로소 정식 협조자로 거느릴 수 있다. 협조자 포섭에 필수불가결인 공작금은 공작원마다 매달 미화 50달러가 지급되었다고 한다.

◆ 국가안전보위부 요원 양성과정 (내외통신 자료를 요약 전재)
평양시 용성구역에 있는 `국가보위부 정치대학' (보위대학)은 특수공작원을 양성하는 곳이다. 각종 특수훈련으로 전천후 공작원을 만드는 곳이라고 하면 이해가 쉽다. 이곳은 당원만이 입학할 수 있으며 당이나 기관 등에서 필요로 하는 정치간부를 양성하는 곳이기도 하다. 보위대학 정문에는 학생들이 무장 경비원과 함께 경비를 서고 교원부터 후방부성원 (대학 직원)까지 모두 허리춤에 권총을 차고 다닌다. 학생들외에는 모두 군인신분이며 평소에는 사복을 입고 다닌다. 학생들은 졸업하면서 군사칭호를 받는다.

보위대학은 5년과정으로 `정치학' `군사학' `심리학' `인간사회철학' `사회주의경제학' 등 12과목을 배운다. 그중 제일 중요하게 취급하는 과목은 `정치학'이다. 국가보위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혁명역사'라든가 `로작'같은 과목을 열심히 공부하여 투철한 사상으로 정신무장해야 한다. 입학후 처음 1학기동안은 제식동작같은 기초 군사훈련을 받고 2학기가 되면 학과가 나뉘어진다. 이때 학생의 의견은 참고하지 않는다. 다만 1학기때의 성적과 적성 등을 살려 임의로 배치할 뿐이다. 2학년에 올라가면 `군사학'이론을 한 학기동안 배우고 다음 학기때에는 보충훈련을 받는다.모든 훈련을 하기 전에는 반드시 입을 모아 이런 구호를 외친다. "투지전 전격전 섬멸전으로 충성으로 보답하자" 그런 다음 `왁' 소리를 질러 기합을 올리고 훈련을 시작한다.

`군사학'은 크게 투지훈련 심리훈련 사격훈련 장비훈련으로 구분된다. 투지훈련에는 항공육전 (낙하) 도하 일격필살법 정찰술 방화훈련 (불속 뚫기) 등이며, 심리훈련에는 심리술 미행술, 사격훈련에는 사격술과 저격술, 그리고 장비훈련에는 화기통신기 차량 등을 다루는 법을 배운다. 이 가운데 사격훈련이 흥미롭다.사격훈련은 우선 보총 (장총)과 권총쏘는 법을 배운다. 보총중에는 자보 (자동보총)와 반자보가 있으며 사격거리는 500m 기준에 30발이 격발된 보총을 연발 4발 단발로 조절해 놓고 쏜다. 권총은 브로닝 (총알이 돌아가면서 나가는 총)이나 떼떼 (소련제) 또는 붉은별 38호 (떼떼권총을 북한에서 개량하여 만든 총) 등을 사용한다. 사격술을 배울 때 우선 조준판을 3개월동안 이용한다.

50m거리의 과녁에 빈총을 들이대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긴 다음 이렇게 소리친다. "8번 명중!" "2번 명중!" 빈총으로 하니 흔적이 남을 리도 없고 모두들 명중했다고 큰소리친다. 과녁은 미국인 모습을 그린 다음 그 아래 심장처럼 동그라미를 그려놓는다. 사격술이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것이라면 저격술은 사람을 살린 채 저항을 못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사람을 살려서 정보를 얻어내야 할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다. 저격술에는 목표물이 취하고 있는 자세에 따라 조준하는 곳이 각각 다르다. 목표물이 서 있을 때에는 지상에서 20~60cm를, 앉아 있을 때에는 10~20cm를, 엎드려 있을 때에는 5~10cm를 맞춰야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 이런 원칙은 야간에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 기준이 지상이 아니라 얼굴이 된다.

특별히 위장하지 않는 한 조금이라도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그걸 기준으로 5~10cm정도 밑으로 쏘면 쉽게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다. 심리훈련은 심리를 읽거나 그걸 이용하여 조종하는 법을, 미행술은 글자 그대로 상대방을 몰래 따라가면서 행적을 파악하는 법이다. 미행술은 상당히 수준높은 능력이 필요하며 공작원들에게는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기술이다.

2) 보위사령부 (보위사, 인민무력성 대열정치안전보위국)
◆ 보위사령관 원응희 대장
◆ 사령부 - 평양시 대성구역 용북동
◆ 감시·수사 ·체포· 도청등으로 반혁명음모 감시하는 부대
◆ 한국의 기무사령부에 해당
보위사령부는 한국의 기무사령부 (보안사령부)에 해당하는 부대로 군내 감시 임무를 담당하고 있다. 사령관은 원흥희 대장이다. (사진은 원응희 대장)

북한을 비롯한 공산권에서는 정치장교들이 군내부의 감시 임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북한은 이와 별도로 보위사령부를 설치해 놓고 있다. 총정치국을 비롯한 군내 정치부서와 보위사령부의 임무를 비교하자면 정치부서가 주로 선전,선동에 치중하고 일상적인 당성, 충성심 평가에 주력하는데 반하여 보위사령부는 도청 등 보다 비밀 감시에 치중하고 있다. 또한, 정치부서들이 실제 수사, 체포에 관련된 임무는 처리하지 않는데 반하여 보위사령부는 수사, 체포 등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결국 일반 사회는 국가안전보위부, 군 내부는 보위사령부가 각각 담당하는 체제이며, 국가안전보위부와는 분리된 별도의 지휘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보위사는 김정일이 군부대를 방문할 때 경호하는 일도 담당한다. 군관 (장교)과 장령 (장군)들이 사용하는 전화를 도청하고 이들에 관한 주민등록 업무도 맡는다. 즉 군관과 장령들의 자녀가 대학이나 직장에 들어갈 때 필요한 주민등록 문건을 발급하는 것이다. 군인과 군인가족의 주민등록을 사회안전성에서 관할하지 않고 보위사에서 관할하는 것은 군사보안의 일환으로 추정된다. 중·러 국경지역과 휴전선과 인접한 전연 지역 (전방 지역)에서는 군인과 민간인의 이동 상황을 점검하며 군 복무 기피자를 색출하는 일도 한다.

보위사령부는 구 인민무력부 직속국 형태로 설치되어 있어 총참모장, 총정치국장, 후방총국장등과 유사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정식명칭은 분명하지 않으나 구 인민무력부 시절 정치안전국, 대열정치안전보위국, 정치안전대열보위국 등의 이름으로 불리운 것 같고 96년에 정식으로 보위사령부로 확대되었다. 평양시 대성구역 룡북동에 있는 보위사령부 지휘부는 평양외국어학원과 울타리를 맞대고 있다. 그외 평양 시내에 독립청사가 분실 격으로 몇 군데 개설되어 있다.

보위사의 기원은 48년 인민군이 창설될 때 반탐(反探) 조직으로 만든 안전기관이다. 안전기관은 한국전쟁 때 인민군 내의 간첩과 반당·반혁명 분자를 색출하는 일을 했다. 60년대말 김창봉 숙청시의 활약으로 인해 안전기관은 정치안전국으로 독립했다. 70년 정치안전국은 보위국으로 명칭을 바꾸고, 96년 다시 보위사령부로 승격했다. 89년부터 현재까지 원응희 대장 (前 공군 및 反항공사령부 정치위원)이 보위사령관을 맡고 있다.

◆ 보위사의 조직
-1부 조직계획부 전체 업무를 통제, 군단과 사단 이하 각 보위부대로 내보내는 지휘 문건 발송
-2부 수사부 간첩과 반당·반혁명 분자를 색출
-3부 예심부 2부가 색출한 범죄자를 전문적으로 심문
-4부 감찰부 탈영과 군사 물자 절취·횡령 등 군 관련 범죄 담당
-5부 사건종합부 2·3·4·6부가 다루는 사건을 분석·평가
-6부 미행부 오랫동안 행방이 묘연한 범죄자를 추적
-7부 기술부 장령들의 집과 자택 그리고 주요 호텔 전화를 도청
-8·9·10부 군수공장과 인민무력부 내의 특수기관을 담당. 군관들에 대한 주민등록 업무도 관장
-11부 국경검열초소, 외국에 파견되는 북한 무관과 인민무력부 산하 외화벌이 일꾼을 감시

이밖에 간부부는 보위 군관을 선발하고 임명하는 일을 맡는다. 정치부는 보위사령부원들의 사상을 통제하는 곳으로, 보위사 속의 보위사라고 할 수가 있다. 보위사 직할 기관으로는 과거 국가안전보위부 휘하에 있던 3개 국경 경비 여단과 김정일이 군부대를 방문할 때 경호를 맡는 경호대(군관 3백명으로 구성)가 대표적이다. 신의주를 비롯한 국경 지역에 있는 국경 검열 초소 60여 개와 군인들의 편지를 검열하는 검열대(1개 대대의 여군으로 구성)도 직속 기관이다.

그외 보위부대원을 양성하는 보위대학 등이 있다. 모든 북한군 부대에는 보위 군관과 비밀 정보원이 들어가 있다. 군단과 사단에는 군단 보위부와 사단 보위부가 있어, 군단장과 사단장의 일거수 일투족을 점검한다. 군단장과 사단장은 실병력 지휘관인 만큼 이들이 사조직을 구성해 반김정일 결사체를 구성하는지, 또는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에 변화가 있는지를 주로 감시한다. 연대와 대대에는 보위 군관이 1∼3명씩 파견된다. 군사분계선 안에 들어가는 민경중대에는 부대원들의 월남을 막기 위해 소대와 중대 안에도 보위군관을 배치하고 있다.

◆ 보위군관 양성과정 (내외통신 요약 전재)
보위 군관 선발은 보위사를 위해 비밀 정보원 노릇을 한 사병을 대상으로 엄격한 신원 조회를 거쳐 이루어진다. 보위 군관 후보로 뽑힌 병사들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작성하고 보위대학에 입교하는데, 서약서에는 본명과 가명을 쓰고 지장을 찍는 것이 특징이다. 남포직할시 강서 구역에 있는 보위대학에서는 이들을 4년간 교육한 뒤 중위 또는 상위 계급을 주고 보위 군관에 임명한다. 보위군관과 비밀 정보원들은 자기의 생각이나 해석을 붙이지 않고 6하원칙에 따라 정보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훈련받는다. 때문에 보위군관과 비밀 정보원들은 1년 이상 시간을 갖고 요주의 인물의 일거수 일투족과 만나는 사람 등을 점검해 사건화한다. 이러한 추적을 통해 작성한 보고서를 올릴 때는 마치 간첩이 접선하듯, 은밀한 방법으로 주고받는다. 보위대학은 보위부원들에 대한 보수 교육도 담당한다. 대대를 담당하는 보위 군관은 보위대학 재직반에서 2년간 교육받아야 연대이상 부대의 보위 군관이 될 수 있다. 보위사와 각 군단 보위부 책임자 (중장·소장)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위대학의 2년제 연구반 과정을 거쳐야 한다.

3) 인민보안성(人民保安省)
◆ 인민보안상 백학림 차수
◆ 평양특별시 서성구역 소재
◆ 한국의 경찰청에 해당
◆ 사회안전성 -> 사회안전부 -> 사회안전성 -> 인민보안성
인민보안성은 한국의 경찰에 해당하는 조직이다. 독립된 성(省)으로 존재하므로 행자부(내무부) 소속의 외청에 불과한 한국 경찰보다는 격이 높다. 사회안전부도 인민무력부성처럼 사회안전성으로 명칭이 개정되었다가, 2000년 4월 다시 인민보위성으로 명칭을 개정했다고 한다. (사진은 백학림 차수)

특히, 인민보안성의 간부들은 정규군과 동일한 군사칭호 (군계급)를 받고 또 간부중 일부가 정규군 부대와 순환 근무를 하게되므로 한국 경찰보다는 전투 임무에 능숙한 편이다. 과거 사회안전성 시절에는 하급 경찰조직원은 사회안전원이라고 불렀었다. 조직은 기본적으로 행정구역단위 도-시/군 별로 설치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의 파출소에 해당하는 최하급 제대는 분주소이다.

일부 자료에서는 전시에 노농적위대도 지휘한다고 하지만, 이는 확실하지 않다. 조선인민경비대의 지휘계통도 대단히 애매하지만, 인민보안성과 관련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96년 한국에 표류한 조선인민경비대 하사들을 북한에 송환했을 때, 이들에 대한 환영식에 사회안전상 백학림 차수가 참석한 것으로 내외통신에 보도된 것을 봐도 조선인민경비대가 사회안전성(현 인민보안성)과 모종의 관련의 있음을 알 수 있다.

4) 노동당의 공작 및 첩보 조직
◆ 노동당 작전부 ◆ 노동당 통일전선부 ◆ 노동당 대외연락부 ◆ 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
◆ 소재: 평양특별시 모란봉구역 전승동 노동당 3호청사 (대외정보조사부는 별도 청사에 있음)
(3호 청사가 평양시 대성구역 합장동에 있다는 설도 있음)
노동당의 공작 및 첩보조직은 각 첩보조직간에 서로 비슷한 명칭으로 자주 이름을 변경하기 때문에 잘못하면 착각하기 쉽다. 예를들어 현재의 대외연락부는 과거의 대외조사부와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과거의 대외조사부는 현재 대외정보조사부(노동당 35호실)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대외연락부의 과거 명칭인 사회문화부와 노동당 통일전선부의 과거 명칭인 문화부는 이름이 비슷하지만 관계가 없는 별도의 조직이다. 이하 노동당 공작 및 첩보조직에 대한 설명내용은 내외통신 98년 8월20일자 기사를 기초로 각종 공개자료를 비교검토해서 필자가 작성한 것이다.


① 노동당 작전부(作戰部) (참조: 유고급 잠수정 침투사건)
◆ 노동당 작전부장 오극열 대장
◆ 노동당 연락부 산하 연락소에서 독립 -> 노동당 작전부
◆ 간첩 호송 및 침투, 파괴공작, 요인암살을 담당

작전부는 대남 및 대외공작부서로서 남한과 제3국에 비합법적으로 침투하는 공작요원을 일정한 장소까지 안내하는 임무와 요인 암살 및 납치, 무인포스트 매몰, 군사정찰 폭파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노동당 작전부는 구 노동당 연락부의 일부로 존재하다가 독립한 조직이다. 구 노동당 연락부는 한국전쟁 당시부터 존재했던 부서로 대남공작원의 남파가 주임무였다. 오늘날의 노동당 작전부는 구 연락부 산하의 연락소 및 그 상급지휘부서만을 분리독립시킨 것이다. 98년 꽁치급 잠수함 침투사건이 바로 노동당 작전부가 수행한 작전이다. 작전부 부장은 前인민군 총참모장 오극렬이 맡고 있다. (사진은 오극렬)

작전부는 한국내 고정 간첩으로부터 정보 획득이나 임무 부여, 대남침투요원의 안내와 호송, 요인저격·납치 등을 맡고 있으며 유사시 한국의 후방교란과 전략무기 습격·파괴 등의 임무도 수행한다. 또한 한국내 도로나 전기공사 등 주요 기간산업 현황에 대한 정보도 수집한다. 정확히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김정일의 처조카인 이한영씨 피살사건을 작전부 소행으로 추정하는것도 이들의 임무와 관련한 개연성에 바탕을 둔 것이다. 작전부는 1개조 3명씩, 1년에 4개조 이상을 남파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파기간은 대개 1주일정도이며 단순호송이 아닌 기타 작전에서는 3개월까지 연장되기도 한다.

노동당 작전부는 7개 혹은 10개의 연락소를 주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노동당 작전부 산하 7개 연락소 중에 414연락소를 제외한 6개 연락소는 이미 80년대 초반 노동당 연락부 시절부터 존재하던 것이고 그 뿌리는 한국전쟁까지로 올라간다. 최근까지 노동당 작전부의 연락소는 7개로 알려졌으나 내외통신의 98년 자료에 따르면 10개의 초대소 (연락소)를 두고 있다고하며 청진 고성 남포 해주 등에 하나가 아닌 두 개식의 초대소가 있다고한다. 내륙에는 개성과 사리원에 있다. 평양의 3호청사 (노동당 3호청사)는 북한의 각종 정보, 사찰기구가 위치한 곳이다) 근처에 있는 414연락소는 노동당 작전부의 실무적인 지휘본부이다. 이 414연락소에는 국외에 있는 북한 간첩에게 지령을 보내는 통신시설을 비롯하여 각종 독극물의 제조소 등 간첩활동에 대한 지원시설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414연락소에는 지원임무를 맡은 약 1000명의 인원이 소속되어 있다. 98년 침투한 유고급 잠수정은 원산에 있는 313연락소 (구 632군부대) 소속으로 보도되었는데 이 313연락소가 바로 동해안을 담당하고 있다. 서해안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해주연락소 (구 755군부대)이며 남해안은 남포연락소 (구 753군부대)가 담당하고 있다. 서부전선은 개성연락소 (구 217군부대)가, 동부전선은 사리원연락소 (715연락소, 구 250군부대/평양)가 담당하고 있다. 청진연락소 (구 459군부대)는 일본을 담당하고 있다. 노동당 작전부는 중요시설을 탐지하거나, 남파되는 간첩을 호송하는 것을 주임무로 하고 있다.

노동당 작전부의 하부조직자체가 바로 각 침투경로별로 구성된것에도 그 성격의 일단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처럼 노동당 작전부는 간첩을 DMZ이나 해안선을 통해 우리나라로 직접 침투시키는 임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여러 간첩기구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임무를 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 노동당의 간첩들을 두가지로 분류할 때 전투원과 공작원으로 분류하는데 이중 전투원이 바로 노동당 작전부 요원을 의미한다.

◆ 노동당 작전부 요원 교육과정 (이 항목은 내외통신의 관련 기사를 요약한 것임)
노동당 작전부 산하에는 간첩양성기관인 김정일정치군사대학(구 금성정치군사대학, 구 695군부대)이 평양시 용성구역 신미동에 위치하고 있다. 이 대학은 전투반 공작반 양성반으로 나뉜다. 전투반에는 안내반 기관반 항해반 통신반이 있고 공작반에는 해외과 국내과로 나누어져 정보수집 연락공작 요인암살 납치반이 있다. 양성반에는 전투반 공작반을 졸업후 다년간 실전공작활동을 하던 사람들이 지도원이 되기 위한 재교육을 받는 과정이다. 선발기준은 두 부류로 나뉘어진다. 우선 고등중학교 4학년때 성적이 우수하고 출신 성분이 양호한 학생을 전국에서 약 2천명 정도 선발, 최종적으로 1백80∼2백명 정도를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 입학시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일반대학 1∼2학년에 재학중인 학생을 비정기적으로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 입학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선발된 학생들은 매우 혹독한 훈련과정을 거쳐 실전에 배치된다.

교육과정은 우선 일상적인 정치사상교육 즉 당과 수령을 위해서는 자신의 육신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다는 사고의식을 가진 친위전사로 교육시키고 있다. 군사훈련의 내용은 기초적인 훈련을 단련하기 위해 태권도는 평균 3∼4단 이상이며 수영은 먹을 것만 있으면 바다나 강에서 수십 시간 이상은 살 수 있도록 육성하고 있다. 또 하루 저녁 약 1백50리 정도는 지형지물에 관계없이 5∼6시간내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군사전술 및 비합법 훈련의 내용으로서 육상에서 이루어지는 유격전술훈련, 습격, 매복, 암살, 납치훈련, 전투조훈련, 각종 군사장비를 다루는 법을 배우고 있다.

유격전술훈련은 유사시 후방에서 제2전선을 구축하는 산악 및 도시 게릴라전법을 말한다. 습격훈련은 일정한 목표물을 불시에 매복 기습하며 암살 납치 또는 소규모 인원으로 다수를 테러하는 것이다. 전투조훈련은 2∼3명이 한 개조를 구성해 중요시설폭파, 군사정찰, 고정간첩간의 연락공작 및 일정한 장소까지의 안내와 공작장비지원, 암살, 납치 등의 훈련을 말한다. 각종 군사장비를 다룬다는 것은 육상에서 움직이는 각종 수송수단을 다루는 법, 아주 작은 권총에서부터 비반충포까지 발사할 수 있는 등의 기술을 말한다. 해상전술훈련에는 항해전술 엔진운전법 통신송수신 수중폭파 수중잠수훈련 등이 있다.

항해전술훈련이란 배가 정확한 지점에 도달할 수 있는 항법, 즉 군사학적 측면을 접한 항해사 기술과 선박엔진 운전법 선박통신을 자유자재로 교신하여 단독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보통 5톤급 이상 2백톤급 이하의 선박은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면 누구나 단독으로 운전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러한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과정이 끝나고 간첩으로서 본격적인 침투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 노동당 작전부 요원 침투방법 (이 항목은 내외통신의 관련 기사를 요약한 것임)
공작조 안내조 해상조들의 침투장비와 수송수단을 본다면 공작조는 일반권총과 방음권총(소음권총) 사각수류탄 자살용독침과 독약 공작자금 휴대용 무전기들을 휴대한다. 안내조는 체코식 기관권총 또는 AK·M16소총과 사각수류탄 비상식량 단파무전기와 초단파무전기 야시경 수중잠수장비가 있다. 해상조는 1인당 AK소총과 수류탄 비상식량을 휴대하고 있다. 공동수송장비로는 모선과 자선이 있는데 모선에는 쌍신고사포를 선수와 선미에 각 1정씩 장착하고 방사포 대전차수류탄 7호발사관 5정, 무반동포 대대기관총 4정, 무전기 3대 등 비상식량을 적재하고 있다. 자선인 반잠수정에는 대대기관총 1정, 7호발사관 1정, 대전차수류탄 3개, 한국해군과 교전시 최악의 경우 군함정에 충돌하여 폭파시킬 수 있는 자폭용TNT 30kg과 무전기를 적재하고 있다.

침투경로는 세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합법적 또는 반합법적으로 신분을 위장하여 제3국인 일본 홍콩 등 외국을 경유하여 한국에 침투 하는 경우가 있다. 둘째, 휴전선을 통해 비합법적으로 남한에 침투하는 경우로서 80년대 이후 휴전선 경비 및 장애물이 강화되어 현재 육상침투는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셋째, 해상을 통한 방법으로 동·서·남해로 주로 많이 침투하고 있다. 해상침투시에는 주로 모선과 자선을 이용하는 방법이 채택되는데 모선의 승선인원은 20∼25명이며 80∼1백톤급 미만으로 자선을 선미에 적재할 수 있고 최대속력은 45∼50노트이다.

이 배의 특징은 겉으로는 일본어선과 유사하고 무기류들은 육안으로 식별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자선인 반잠수정은 승선인원이 최대 7명이고 최대속력은 57노트이며, 반잠수정의 특징은 선체에 레이더전파 흡수페인트로 도색해 레이더로 포착하기가 어려우며 완전 잠수상태 (최대 침하시)에는 높이 20㎝와 넓이는 40㎠ 정도의 공기흡입구만 노출된 상태에서 항해할 수 있다. 침투때에는 모선을 이용하여 육상으로부터 40마일 계선에 모선을 정박하고 18 ∼19 시 사이에 자선을 분리하여 안내조 2명, 공작조 2명, 자선조 3명이 반잠수정으로 남한의 레이더 공백구간을 침투 지점으로하여 침투하게 된다.

이때 육상으로부터 30마일까지는 완전부상으로 속력 30노트로 접근하다 30마일부터 속력 12노트로 반잠수상태로 육상으로부터 12마일 계선까지 접근한후 12마일부터는 완전잠수해 6노트의 속력으로 해안선 1천m ∼ 5백m 까지 접근한다. 안내조와 공작조는 반잠수 수영으로 해안선에 통상 21∼22시 사이에 도착 육상활동을 하게 된다. 최근에는 잠수함을 이용하는 등 과거와는 전혀 다른 침투방법도 시도하고 있다.

② 노동당 통일전선부(統一戰線部)
◆ 통일전선부장 김용순 겸직 (노동당 대남담당비서)
◆ 문화부 -> 통일전선부 (83년-)
◆ 공개적인 선전 및 정치공작을 담당

82-83년 이전에는 노동당 문화부로 불려졌다. 통일전선부는 선전, 대남방송, 삐라배포, 해외친북조직 관리 등 공개적인 선전·선동공작을 펼치는 부서이다. 이와같은 심리전 임무외에도 남북대화업무도 관할하고 있다. 노동당 4개 실무부서 가운데 정치적으로는 으뜸부서로서 부장은 노동당 대남담당비서인 김용순이 겸직하고 있다.

통전부의 주요 활동은 해외교포나 동포들의 포섭공작, 한국내 민간단체를 대상으로한 통일전선 구축 등이다. 또한 크고 작은 대남제의, 남북대화·교류 등의 업무도 모두 통전부 소관사항이며, 한국내 주요 인사들의 방북사업도 통전부에서 관장하고 있다. 북한이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는 정치협상회의 범민족대회 등과 범민련·범청학련 등의 활동도 통전부에서 관장하고 있는 공작업무 가운데 하나이다. 일례로, 한국의 특정 사회단체 관계자나 종교인이 북한측 관계자의 초청장을 받고 방북하게 될 경우 그의 방북동기나 의도가 무엇이건간에 일단 통전부의 공작 대상이 된다.

북한의 대남전위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祖平統)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祖國戰線)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등은 모두 통전부의 외곽단체이다. 최근년에 모습을 드러내 활동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는 아·태평화위원회나 한국내 지하당으로 조작 선전하고 있는 한국민족민주전선(民民戰)도 통전부 소속이다. 심지어 정당의 간판을 달고 있는 사회민주당이나 천도교청우당, 종교단체의 명패를 달고 있는 기독교도연맹 불교도연맹 종교인협의회 등도 모두 통전부의 관리와 지시를 받고 있다.

남북대화나 교류 등으로 낯익은 전금철 안병수 이종혁, 서울불바다 발언으로 유명해진 박영수 등 대남전위기구 간부들의 실제 소속직책과 직급도 통전부의 부부장급이다. 통전부가 다른 3개 부서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업무의 특성상 부서의 요원들이 공개적으로 활동한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드러내놓고 대남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셈인데, 이같이 공개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대남업무는 모두 통전부에서 다루고 있다고 보면 거의 틀림없다. 통전부는 비교적 군부와도 사이가 가까운데 통전부 측이 최근 군부와 합세하여 대외연락부 요원들을 대폭 숙청한 바 있다고 한다.

③ 노동당 대외연락부 (對外連絡部)
◆ 대외연락부장 강주일 (전 부장 강관주는 숙청)
◆ 노동당 (대남)연락부 -> 노동당 사회문화부 -> 노동당 대외연락부(98년-)
◆ 노동당 지하당 조직, 정치사회단체 침투공작 (약칭 연락부:사회문화부의 후신)

대외조사부(사회문화부)는 남한내 노동당 조직을 유지·확대하고 정당이나 사회단체에 침투하는 간첩을 관리하는 것이 주임무이다. 약칭은 연락부이다. 과거 작전부의 상급부서이기도 했으며 한때 대남연락부로 불리던 부서도 바로 이 조직이다. 대표적인 대외조사부 간첩은 할머니 간첩 이선실이 있다.

대외조사부는 대남공작을 전담하는 부서로서 직접침투 또는 해외 우회침투를 통해 한국내의 주요 인사 암살, 정치 경제 사회 군사 등의 정보수집, 유언비어 유포, 유사시 민중봉기 여건 조성, 고정간첩 관리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전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 강주일이 대외연락부장으로 발탁되면서 통일전선부가 관할하던 조총련관리업무도 대외연락부에서 인수했다. 한편, 대외연락부 직속기구이던 대성총국은 외화벌이 전담기관이자 김정일의 비밀금고 역할을 하고 있는 39호실로 이관됐다.

남한출신으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까지 올랐다가 은퇴한 거물 여간첩 정경희가 87년까지 부장으로 있던 부서도 연락부였다. 대외연락부는 산하에 남조선지역, 남조선 사회지도층, 해외 등을 담당하는 과(課)를 두고 있다. 주요 임무는 간첩(공작원) 남파, 공작원 밀봉교육, 한국내 고정간첩 관리, 한국내 지하당 구축, 한국내 불온사상 유포 및 민심교란 등 다양하다. 92년 10월 제14대 대선을 2개월 앞두고 터져나온 남한조선노동당 사건의 주역인 여간첩 이선실, 신세대 공작원으로 불리는 무장간첩 김동식(95.10, 충남 부여서 체포), 15대 대선직전 적발체포된 부부간첩 최정남-강연정이 모두 대외연락부 소속이다.

④ 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 (35호실)
◆ 대외정보조사부장 ? (전 실장 권희경은 수년전 숙청)
◆ 평양특별시 창광거리 소재
◆ 조사부 -> 대외조사부 -> 대외정보조사국(부)
◆ 제3국에 간첩파견하고 해외거점을 운용(대외정보조사부의 후신)

원래 조사부였으나 82~83년 공작부서 전면 개편시 대외조사부(RDEI)로 개칭되었고, 그후 대외정보조사국으로 확대 개편되었던 것 같다. 최근 다시 35호실이란 명칭으로 개칭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35실은 대외정보조사부의 단순한 위장명칭의 하나인것 같다.해외간첩공작, 국제·대남테러공작 등이 대외정보조사부의 주요 임무이다. 대표적인 대외정보조사부 소속 간첩은 단국대 교수 무하마드 깐수(정수일)와 88년 KAL기 폭파사건의 김현희가 있다.

대외정보조사부는 우리나라보다는 제3국에 침투하는 간첩을 주로 관리하고 있다. 대외정보조사부는 해외정보를 수집하고 해외인사를 포섭, 매수해 한국내 투입시키는 등 대남우회침투 활동을 주로 한다. 대사관 직원 상사원 등의 신분으로 위장하여 활동하는 경우도 흔하다.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지역과 베를린 파리 등 유럽의 주요 도시에 공작거점을 두고 있다. 87년의 대한항공 858기 공중폭파사건, 최은희-신상옥 부부 납치사건 등이 대외정보조사부 작품이다.

교수간첩 무하마드 깐수의 소속이 대외정보조사부이었고, 잠비아주재 대사관소속 정보원으로 활동하다 귀순한 차성근씨도 작전부에서 대외정보조사부로 차출된 공작원이었다. 대외정보조사부 책임자는 현재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는데 前모스크바주재 대사 출신인 권희경이 그 부장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현재는 권희경도 숙청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수일은 레바논계 필리핀으로 위장 입국했으며,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대학교수로 근무했을 정도로 완벽하게 위장했던 간첩이었다. 외모가 중동사람 처럼 보이지만 순수한 오리지날 한국인이다. 국내에서 신라-서역 교역사의 전문가로 활약했고, 그가 직접 쓴 글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였다.


출처:war.defenc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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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8. 1. 13. 11:30

1940년 6월 제1항공전대의 사령관인 오자와 지사부로 소장이 제안한 것으로, "항공모함과 기지항공대를 하나로 통합하여 적 함대에 대한 적극적인 방어와 공격전환을 하여 집중적으로 적의 함대를 섬멸시킨다." 는 의견을 통합막료본부에 제출하였는데, 이를 검토,참고하여 공모(항공모함)6척을 중심으로 하는 제1항공함대를 창설하였다. 이때가 1941년 4월이었다. 항공함대는, 항공모함이 탑재하고 있는 수십대의 함상전투기, 함상공격기, 함상수평폭격기, 함상급강하폭격기를 최대한 이용하자는 발상으로 발안 된 것이었다. 원래, 함대라는 것은 전함, 구축함, 순양함, 잠수함, 보급함, 기뢰함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 해양화력을 투사하는 것인데 수상함대에 의한 해양 투사력의 한계는 확실히 존재하므로 항공세력에 의한 對지상 혹은 對해상 공격의 필요성이 중시되었다. 하지만 별도로 연료의 손실없이 항공기를 수상함대와 같이 움직이기 위해선 항공기를 대거 운용하는 플랫폼이 필요하였다. 때문에 나온 것이 "항공기를 군함에 실고 다니다가 유사시에 탑재기를 이륙시켜 항공세력을 투사하자" 라는 발상이었고 이를 구체화가 가능하게 만든 플랫폼이 항공모함이다. 그리고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함대를 구성 하였다고 해서 항공함대라고 불리기도 하며, 또 항공모함의 수십대의 탑재기들이 대거 날아오르면 그 모습이 마치 수상함정들이 함대를 이루는것을 연상시키어 항공기에 의한 함대진영 같다고 항공함대라도 불리는 것이다. 일본의 항공함대는,

제1항공함대
1943년 7월 10일 창설, 1945년 6월 15일 해산

제2항공함대
1944년 6월 15일 창설, 1945년 1월 8일 해산. 필리핀 방위를 위해서 대만 각지에 전개했지만, 대만 항공전에서 소모되고 필리핀 방어전에 투입된 기체는 얼마 안 되었다. 그 때문에 1944년 11월에는 모든 기체를 대만에 본토로 철수시키고, 기지요원은 지상전에 종사하도록 하였다.

제3항공함대
1944년 7월 10일 창설, 1945년 10월 15일 해산. 본토방위를 위해서 당초에는 관동, 이오지마 함락후, 미나미큐우슈우를 중심으로 전개하고, 이오지마 및 오키나와에서의 적극적인 미군 항공기 요격과 방공작전에 임하였다.

제5항공함대
1945년 2월 10일 창설, 1945년 10월 20일 해산. 본토방위를 위해서 큐우슈우를 중심으로 작전을 하였으며 이오지마 및 오키나와에서의 적극적인 미군 항공기 요격과 방공작전에 임하였고 종전이 발표된 직후, 책임자가 특공자결하였다.

제10항공함대
1945년 3월 1일 창설, 1945년 10월 10일 해산. 항공 요원양성을 위해서 연합 연습 항공총대를 확장해 설치하였는데 이를 위한 부대가 10항공함대이다. 즉, 전투력이 전혀 없는 항공기 연습부대인 셈이다. 때문에 공식적인 전력에 편성이 되지않는다.

제11항공함대
1941년 1월 15일 창설, 1945년 9월 6일 항복.

제12항공함대
1943년 5월 18일 창설, 1945년 11월 30일 해산. 제5함대 와 함께 북동 방면 함대 를 편제하고, 치시마 · 에로후토 · 홋카이도 방위를 위해서 치토세 비행장을 중심으로 전개했다. 1943연말에는 일부가 마샬 여러 섬 에 전진했지만 북동 방면 함대 해산 후는 연합 함대 직졸이고 오오미나토 경비부 사령부가 겸임했다.

제13항공함대
1943년 9월 20일 창설, 1945년 9월 12일 해산. 방공부대를 따로 두지 않은 항공함대로 남서 방면 함대의 항공 지원을 맡기 위해서 편성된 부대이다. 인도차이나에서는 즈다우무, 말레이반도에서는 배난, 西인도네시아에서는 스라바야, 東인도네시아에는 운본을 거점으로서 전력을 분산 배치하였다. 1945년 2월 5일에 제10방면 함대가 편제되면서, 그 항공지원부대가 되어 종전까지 운용되었다.

제14항공함대
1944년 3월 4일 창설, 동년7월 18일 해산. 제4함대 와 함께 중부 태평양 방면 함대 를 편제하고, 데니안도 를 거점으로서 내남양 각지에 전개했다. 이미 Track 환초 나 파라오 여러 섬 서는 공습을 위해서 기지 기능은 괴멸하고 있고, 대부분데니안에 붙여 붙의 상태이었다. 5월에는 Mariana 해전 를 구비하(갖추)고 제일 항공 함대 가데니안에 진출. 그 증강 때문에 모든 가동기를 양나룻배, 불과2개월에데니안의 지상전을 기다리지 않고 전투력을 완전히 잃었다. 사이판도 의 함락에 의해 중부 태평양 함대 사령부가 옥쇄 한 것을 베틀에, 정식으로 해산했다.

작성: 본인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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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야기 2008. 1. 11. 22:30

대포동의 단수를 어떻게 이용을 하려고 할까요? 단수.. 1단,2단,3단 뭐 이런거 있지 않습니까? 이 단수를 말하는 겁니다.. 이 단수를 어떻게 이용을 하려고 할까요? 북한이 말입니다..

추측으로는, 몇가지로 생각을 할 수 있을거 같은데 말입니다..

1) 1단계, 2단계는 탄도미사일로 운용하고, 3단계를 비교적 정확도가 높은 ss-n-6을 개조한 bm-25로 탑재할 가능성.
2) 1단계, 2단계는 탄도미사일로 운용하고, 3단계를 역시 비교적 정확도가 높은 kn-02 단거리 탄도탄으로 활용할 가능성.
3) 1단계는 탄도미사일로 운용하고, 2단계를 램제트 추진의 초음속 순항미사일로 탑재 할 가능성. ( 2단계는 없어도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함 )
4) 1단계는 탄도미사일로 운용하고, 2단계를 아음속의 터보제트 추진 순항미사일로 탑재 할 가능성.

이렇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만...

 

만일, 3번으로 하게 대포동 미사일을 개조하게 될 시에는 지난 49초만 날았다는 논란에 휩싸였던 북한미사일의 비밀을 어느정도 벗길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어떻게???

일단, 1단 탄도미사일이 수직으로 상승했다가(물론 대기권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2단을 분리해야 하는 시점에서 램제트 추진의 초음속미사일을 떨궈주면 그 초음속미사일이 떨어지면서 엄청난 중력가속도의 힘을 얻어 램제트에 필요한 충분한 산소를 얻어 램제트가 추진되는 것이지요..

그 다음부터는 램제트 추진의 순항미사일코스로 비행을 하는 것이고 말입니다. 또 순항미사일이다보니 저공으로 날것이고 그럼 레이다에 걸릴 확률도 적어질테고요..

혹? 지난번의 북한 49초 논란에 휩싸였던 미사일도 그런형식의 미사일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출처: 본인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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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8. 1. 11. 02:24
99식 대전차지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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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 120미리
두께: 38미리
중량: 1.25킬로그램
충진물: TNT화약 680그램

이 대전차 지뢰는 전차를 향해 던지거나 혹은 이 지뢰에 달려 있는 자석의 성질을 이용하여 적 전차에 부착하여 공격을 하는 식으로 운용되었다. 위 사진에 보이는 4개의 네모난 것이 자석이다. 이 지뢰 한개의 파괴력은 장갑판 20미리의 두께를 날려 버릴 수 있는 수준이었으며, 지뢰는 두개 붙여서 사용을 하였을 경우엔 30미리까지도 파괴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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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식 대전차 총류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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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물건은 독일의 히틀러 총통으로부터 히로히토 천황이 선물로 받은 것이다. 이때가 1942년경이다. 이 총류탄은 성형작약탄으로구경 30미리와 40미리찌리 두가지가 있었는데 스펙상으로는 40미리 두께의 강철판으로 관통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전에서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얼마나 관통력을 가지는지 확실치 않다. 하지만 이 물건이 셔먼전차를 상대로하여 대전차전에 활용되었다고 하더라도 크게 활약은 하지 못했을 것으로 추측을 해본다. 총류탄이기때문에 적 전차를 향한 총류탄의 정확도도 문제였다. 전문적이고 숙련된 노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을 생산공장에 투입하여 생산을 하는 바람에 불량품이 상당히 많아졌으며 때문에 그 정확도를 자신 할 수 없는 지경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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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스관련 2008. 1. 6. 11:53

스텔스기 탐지를 위한 052C란저우 유도미사일 구축함 저주파 레이더 
Type 517H-1 Knife Rest 안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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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C함의 후부에 장착된 스텔스기 잡는 레이더.."Type 517H-1 Knife Rest 안테나"

중국 052C의 란저우 유도미사일 구축함의 사진을 보면 모두의 관심이 집중된 문제의 고정식 위상배열 레이다 말고도 TV 야기안테나처럼 생긴 레이다 안테나가 구축함의 후방에 있다. broadside array antena라고 불리우는 이와 같은 형식의 안테나는 대개 TV 방송용의 UHF 대역의 전파를 쓰는 레이다에서 사용하는데 빔 폭이 넓기 때문에 가령 X-대역과 같이 높은 주파수의 레이다를 대상으로 설계를 하였기 때문에 X-대역을 전파를 잘 포착하는 장점이 있다. 중국의 란저우 유도미사일 구축함이 이런 원리에 착안하여 구축함에 Type 517H-1 Knife Rest 안테나도 탑재하였는데 이 저주파 레이더는 스텔스기를 탐지하기 위해 특별히 장비한 것이라고 한다.

저주파레이더 개발에 대한 관련기사
http://www.hani.co.kr/section-007000000/2001/06/007000000200106152139003.html 
위의 기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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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스 감지 레이더 중·러등 개발중”

중국과 러시아 및 몇몇 유럽과 미국의 기업들이 B-2 스텔스 폭격기를 감지할 수 있는 레이더 장치를 개발하고 있어 4백억달러에 이르는 이 폭격기들이 무용지물이 될지 모른다고 이 14일 보도했다.
이 방송은 정보관계자들을 인용해 새로 개발되고 있는 `무반응 레이더'는 텔레비전과 에프엠라디오·휴대전화 등에 이용되는 송신장치로부터 저주파 라디오 파장을 청취하며 효과가 크고 비용도 적게 든다고 밝혔다. 이 레이더는 재래식 레이더와는 달리 조종사가 알지 못하게 하면서 항공기를 인식한다. 이런 레이더의 개발은 공중에서 움직이는 물체에 부닥쳐 오는 라디오 파장을 잡는 등 수많은 신호들을 가려낼 수 있는 새로운 초고속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미국은 스텔스 폭격기의 디자인을 새롭게 하거나 다른 조처들을 개발해야 하게 됐으며 여기에는 수십억달러가 소요될 전망이다. 현재 이라크는 중국의 지원을 받아 이 레이더를 개발 중이며 이로써 `비행금지구역'을 감시하는 미국과 영국 조종사들이 위협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방송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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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8. 1. 2. 00:28
특공병기(수중): 수중선회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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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유럽에서의 연합군과 독일의 해전양상을 참조하여 대규모의 함정을 동원하지도 않고서, 대공방어를 수행 할 수 있는 묘안을 떠올리게 된다. 당시 일본의 공업력도 한계상황에 다다르고 있던지라 공업력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 범위에서 적군 항공기에 대한 대공방어를 수행 할 수 있는 수중에 잠겨서 항행하는 반잠수형의 수중선회대공포탑을 고안하게 된다.
이것은 그들의 당시 생각으로는 피해를 크기가 작기 때문에 연합군 항공기의 공격을 어렵게 하면서도 연합군 항공기를 묶어놀수 있는 효과를 발휘 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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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회포탑은 몇 개의 대공 기관총을 장비하며, 10명 이내의 소수의 인원에 의해서 반잠수형태의 부표함정으로 조종되어 함대 근거지혹은 전진기지등지에 아군의 함선을 둘러싸며 아군의 함정과 같은 속도로 주위를 호위하며 전진이 가능 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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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나이더·프로펠라에 의해서 좌우 전후 어느 방향에도 자유롭게 조종 된다.이 슈나이더·프로펠라는 전기 모터로 조종되지만, 그 원동력은 디젤엔진에 의해서 축전지에 저축할 수 있었던 전력을 이용한다.전신실, 전망거울, 수중청음기, 수중 발신기등의 통신설비는 물론 갖춰져 있고, 자물쇠를 내려 고정시켜 각 포탑간에 잠수함 그물을 쳐 잠수함의 침입을 막을 수도 있게 되어 있다. 「슈나이더 프로펠라」는, 「포이트 슈나이더 프로펠러(V.S.P)」이라고도 표기되는 추진 방식으로, 프로펠라의 회전 방향을 바꾸면, 추진 방향이 그대로 바뀌어서, 방향키가 필요하지 않고로 회전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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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본군이 고안했던 수중이동포탑은 실전에 쓰이지는 못하였으며, 개발직전에 일본이 패망하여 계획자체가 흐지부지되었다. 하지만, 계획이 흐지부지되기는 하였으나, 실전에서의 효과가 있고 없고를 떠나, 신선한 느낌을 주기에는 충분하였다. 어찌되었든, 결국 페이퍼 플랜으로 끝난 계획임은 틀림없다.

출처: 본인작성
posted by 지나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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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8. 1. 2. 00:22
특공병기(항공): 공중 낙하 토치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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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부대는 근대전의 인기이다.그러나 그 강하에 임하고, 공중으로부터, 지상으로부터, 당연히적 맹 반격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을 격퇴하기 위해서 출현한 것이 이 공중 토치카이다. 이것은 대형의 수송기로부터 낙하되어 개산 후 공중에 떠 있는 동안은 적기를 격퇴, 또는 아군 강하 부대를 보호해, 착륙 후는 토치카가 되어 아군을 보호한다. 쉽게말하면, 강하낙하산부대+토치카차량의 임무를 합성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강하 부대의 위기는 착륙 후부터 공격에 옮기는 순간에 있으므로,이전의 아군 원호를 인수하여,토치카차량에 태운후 바퀴가 달려있는 그 주행성을 이용하여 이동 군사지역까지 안전하게 이송을 한후 목표물을 요격할 수 있도록 하게 지원해준다. 이 공중 토치카는 강철혹은 강화목에 만들어져 표면은 충분히 장갑 되어 있다.기동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움직이면서 지상토치카의 역할도 완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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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하여 지상에 착지 할 때의 충격을 흡수하기 위하여, 유압완충기를 가진 충격흡수장치를 아래에 달고있으며, 착지 후에는 자주적인 이동이 가능하도록 50마력의 전동기를 달고 있다. 무선통신을 하기 위한 단파라디오 장비를 하고 있고, 기관총보다 강력한 위력의 30mm쌍열 기관포를 장비하고 있다. 또한 공중토치카의 방호력은 강화유리와 강철등으로 이루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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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은 페이퍼 플랜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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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8. 1. 2. 00:11
특공병기(항공): 공중전차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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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7. 12. 28. 23:53
舊 일본군의 원폭개발계획

▣ 끝나지 않은 비밀 프로젝트, 일본의 원폭개발

* 일급비밀!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원폭개발
미드웨이 해전에서의 패배 후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일본 군부는 전세를 단번에 역전시킬 원폭을 개발하기로 하고 이를 동경대 이화학연구소에 지시한다. 당시 핵물리학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이었던 이화학연구소는 입자가속기와 우라늄 분리통을 도입하여 본격적으로 원폭개발에 나서게 된다.

* 흥남의 비밀 공장, 그 안에서는 무엇이 개발되었나?
1945년 3월 동경 대공습으로 일본 내에서의 개발이 어렵게 되자 일본은 북한지역에 있는 흥남에서 원폭개발을 계속한다. 당시 흥남은 질소비료공장, 화학공장등 대단위 공단이 들어선 신흥도시로 원폭개발에 필요한 중수와 전기가 아시아에서 가장 풍부했으며 해군기지가 들어서 있었다.
흥남공단은 평시에는 비료나 화학약품을 만들지만, 전시에는 바로 군사용으로 전용이 가능한 것이었다. 흥남에서의 원폭개발 비밀프로젝트 이름은 바로 < NZ프로젝트 >였다.
< NZ프로젝트 >는 수소화합물을 이용하여 항공기, 잠수함, 인간 어뢰 등의 제트엔진 연료를 개발하는 것이 주목적이었으나, V1, V2라는 장거리미사일도 비밀리에 개발하고 있었다.

* 1945년 흥남 앞바다에서 원폭 실험이 있었다?
1947년 연합군사령부 정보 보고서는 놀라운 내용이 들어있다.
1945년 8월 12일 흥남 앞바다에서 섬광과 버섯구름을 동반한 폭발이 있었으며 천 야드 정도 되는 직경의 불덩이가 하늘로 솟았다는 것이다. 섬광과 버섯구름은 바로 원폭실험의 가장 유력한 징표이고 다른 무기는 버섯구름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 보고서는 상당한 논란을 증폭시켜왔다.
8월 12일은 바로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폭을 맞은 직후여서, 일본이 흥남의 원폭실험 때문에 항복을 늦추고 있었다는 의혹을 낳았다. 또한 일본은 원폭개발에 성공했다면 인간어뢰, 풍선폭탄, 잠수함 등에 원폭을 탑재해 가미가제식으로 미국을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첫 목표는 하와이였고, 최종 목표는 미국 본토였다.

* 기상천외한 ‘풍선 폭탄’ 공격, 미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다
1940년대 미국 역사상 최초로 본토가 공격을 받아 6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9.11테러보다 무려 60여 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맨하탄 프로젝트에 따라 핵무기를 만들고 있던 공장’의 변압기가 풍선 폭탄으로 인해 멈추는 사고까지 있었다. 주범은 바로 ‘풍선폭탄’이었다.
일본은 Z기류를 이용해 9천 개의 풍선폭탄을 미국을 향해 날렸다. 이중 1천여 개가 미국 본토에 떨어져 미국 본토를 유린했다. 미국은 이 풍선 폭탄 안에 세균무기가 들어 있을까봐 초긴장상태였다.
풍선폭탄을 요격하기 위해 전선에 나가있던 전투기를 회항시키고 화생방부대를 각 산악지대에 출동시키는 등 법석을 떨었다. 그리고 이 풍선폭탄의 최종목표는 원폭을 탑재하는 것이었다.

* 잠수함  U-234호, 우라늄 560kg의 정체는?
1945년 5월. 독일 잠수함이 각종 기밀자료를 싣고, 일본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다 한가운데서 독일이 항복하자 대원들은 격론 끝에 미국에 가서 항복하기로 한다.
한편, 이 배안에는 우라늄 560kg이 들어있는 것이 밝혀지자, 미국은 경악했다. 각종 첩보로만 듣고 있던 일본 원폭개발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 우라늄 발견과 히로시마 원폭투하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미국의 히로시마투하 원폭에 이 우라늄이 포함된 것은 아닐까?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은 이 사건에 대해 많은 역사가들은 “일본이 재료(우라늄)를 받으려다 완제품(원폭)을 받았다”고 평하기도 한다.

* 일본 핵무장의 기초를 닦은 나카소네 야스히로의 야심
원자력 예산 2억3천5백만엔의 비밀

패전의 상흔이 아물기도 전인 1954년 당시 국회의원인 나카소네의 주도로 일본은 원자력기본법을 통과시킨다. 이로써 2차대전때 원폭개발의 전력을 지닌 일본은 또 한 번 핵무장의 기초를 쌓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당시 원자력기본법안의 예산이 바로 2억3천5백만 엔이었다. 나카소네는 이는 우라늄 235를 겨냥한 것이었다고 밝혀 핵무장의 의지를 드러냈다.
이 기본법통과로 인해 일본은 도카이무라(東海村) 원자력발전소를 비롯 원전건설에 박차를 가하게 되는데, 이는 에너지난 해결 뿐 만 아니라 군사용으로 전용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나카소네는 70년 방위청장관 재직 시에도 핵무장에 관한 비밀보고서를 만들었는데, 이때의 실무책임자는 이토 히로부미의 손자였다.

* 사토 에이사쿠 수상 때 이뤄진 비밀, <핵개발 보고서>
1967년 사토 에이사쿠 수상은 핵무기를 제조, 보유, 반입을 금지하는 ‘비핵 3원칙’을 발표, 이 공로로 노벨 평화상(1974년)을 수상한다. 그런데, 사토는 또 다른 한편에선 핵무장가능성을 검토하는 비밀보고서를 만들게 하여 핵에 관한 일본의 이중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러한 일본의 이중성은 그 후로도 계속돼 1995년 사회당인 무라야마 총리 때에도 핵무장을 검토하는 비밀보고서를 만들어냈다.
즉, 핵에 관한 한 일본은 표면적으로는 비핵3원칙을 내세우면서도 내면적으로는 핵무장을 향한 준비를 끊임없이 준비해온 것이다.

* 일본 고속증식로의 설계자 오마에 겐이치의 충격적 발언
90일내에 핵무기 제조가능하다

1970년 일본 고속증식로를 직접 설계한 오마에 겐이치는 일본의 핵무기제조 기술력에 대해 “일본은 준(準)핵보유국이다. 일본은 90일 안에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놀라운 발언을 했다. 정치지도자들의 강력한 리더십과 재처리, 농축시설과 그리고 고속증식로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공식적인 정상회담 뒤에 벌어지는 비공식 정상회담의 의제 1순위가 바뀐 적이 없다고 한다. 바로 재처리와 농축시설 허가다. 특히 2005년 5월 30일 일본최고재판소에서는 고속증식로 원형로인 ‘몬주’의 가동을 합법화하는 결정을 내렸다. 몬주는 사용한 핵 연료보다 많은 핵연료를 다시 만들어내도록 돼 있어 이른바 ‘꿈의 원자로’로 불린다. 그런데, 이러한 고속증식로의 문제는 무기급 플루토늄의 생산 역시 가능해 진다는데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핵! 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 일본의 원폭개발 프로젝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출처:
http://blog.naver.com/korea213/8003515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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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7. 12. 28. 23:51

다이아타리(體當たり).

 

일본 특공의 시조 혹은 근본이 되는 것으로 다이아타리(體當たり)의 직접적인 뜻을 헤아려보면, 직접충돌이라고 해석 할 수 있겠다.상대방에게 나의 몸을 돌격하여 직접 타격을 입히는 것이다.

 

나의 몸을 직접 상대방에게 돌격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돌격하는 본인도 적지않은 상당한 피해를 입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럼에도 다이아타리가 일본 특공의 원조로 사용되게 된 것은 다이아타리를 이용하여 전과를 올려 일본군 전체의 사기를 끌어올리는데 일조를 하여, 미군을 격멸하는데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사실, 다이아타리(體當たり) 전술이 나오게 된 것은 타이완 항공전에서 대부분의 해군기를 잃고 10분의 1에 지나지않는 기체를 보유하고 있던차에 고육지책으로 나온 상대 타격전술이었다.

 

다이아타리(體當たり) 전법은 주로 일본 해군기에 의한 돌격공격용으로 쓰였는데, 대개 통상적인 다이아타리(體當たり) 공격전술을 보면, 자신의 기체 혹은 동체를 가지고 적기의 주익(날개)의 끝부분을 스치듯이 가격하고 달아나는 방법을 썼다. 자신의 기체의 날개부분을 단단히 한후 돌격을 하기 때문에 상대를 타격하는데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종종 타격을 가하던 자신의 기체 주익이 부러져 오히려 추락사 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럼에도, 다이아타리(體當たり) 공격전술을 통해 상대방 미군기를 꽤 많이 떨어뜨리고도 정작 자신은 살아서 돌아오는 경우도 있어 일본해군은 이들을 특공의 영웅으로 칭하여 일본군의 사기를 앙양하는데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훗날, 이 다이아타리(體當たり) 직접충돌 전법은 카미카제라고 불리우는 神風전술에 응용되기도 하였다.

 

 

 

출처: 본인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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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7. 12. 28. 23:43
특공(特攻)의 뜻

특공이란 특수공격 혹은 특별공격의 준말이다. 특수공격,븍별공격이란 말은 상대와의 정공법에서 밀리기 때문에 뒤쳐진 전세를 만회하기 위해 감행하는 공격법이다. 특공이 많을수록 그 만큼, 아군이 상대와의 전쟁에서 밀린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특공은 사람목숨을 담보로 하여 실행되는 공격법이다. 따라서 자발적으로 특공에 자원하고 지원한 사람들이 있다면 크게 대접받고 칭찬받아 마땅 할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특공에 동원된 사람들은 식민지하에서 억압을 받던 식민지 젊은이들로 구성되어 허망하게 최후를 맞이했던 것을 본다면 특공에 동원된 사람은 결코, 지원자에 의한 것이 아닌 강요와 압박에 의한 결과물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미국과 독일에서도 특공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은 사람의 탈출이 가능하게 여지를 남겨둔 채 특공을 감행 하였으나, 일본은 탈출조차 하지 못하도록 잠금장치를 하였다는 점이 틀린점이다. 그리하여 일본이 얻은 것은 인명경시를 하는 자폭국가의 원조라는 점이다.

출처: 본인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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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2007. 12. 28. 23:38

舊 일본군의 회심의 필살병기 '풍선폭탄'


When General Jimmy Doolittle led his B-25 bombers in a sneak raid over Japan in the spring of 1942, he set into motion a chain of events that would result in one of the more bizarre stories of World War II: the Japanese attempt to attack the continental United States by bomb-carrying balloons, floating across the entire Pacific Ocean.
1942년 봄, 지미 둘리틀 장군이 B-25 폭격기들을 이끌고 일본을 폭격했을 때,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 벌어진 더욱 기상천외한 이야기 중 하나가 입안 중에 있었다. 즉, 일본인들이 태평양 전체를 가로질러 떠다니게 될 ‘폭탄을 운반하는 풍선’으로 미국 전체를 공격하려고 기획한 것이 그것이다.  

From the late fall of 1944 through the early spring of 1945, the Japanese launched more than 9,000 of these "fire balloons", of which 300 were found or observed in the US. Some guesswork gives the total number that made the trip at about 1,000. Despite the high hopes of their designers, the balloons were totally ineffective as weapons, and survive in memory only as an ingenious and malevolent curiosity.
1944년 늦가을에서부터 1945년 초봄까지, 일본인들은  ‘화염 풍선들’을 무려 9000개 이상 발사했다. 일부 추측에 따르면 그중 약 1000개 정도가 미국까지 도달했을 것이라 보고 있다. 일본인 설계자들의 높은 희망에도 불구하고, 그 풍선들은 무기로서의 효과가 별로 없었으며, 단지 ‘아주 독창적이면서도 비웃음이 터져 나오는 진기한 생각’ 정도로 기억될 따름이었다.


The Japanese performed a small number of attacks on the American mainland through World War II. In February 1942, Japanese Submarine I-17 shelled an oil field up the beach from Santa Barbara and damaged a pump house. That following June, Submarine I-25 shelled a coastal fort in Oregon, damaging a baseball backstop, and in September, that submarine's crew assembled and launched a small float plane that dropped incendiary bombs, starting a few small forest fires.
일본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실제로 미국 본토에 대해 몇 차례의 공격을 실시한 바 있다. 1942년 2월, 일본 잠수함 I-17은 산타 바바라의 해안에 떠올라 유전지대에 포격을 가하여 유정油井 펌프 하나를 파괴한 바 있다. 같은 해 6월에는, 잠수함 I-25가 오레곤 해안 부대를 포격하여 야구장의 백네트를 파괴하였고, 9월에는 잠수함 승무원들이 조립하여 날리는 소형 수상기 한대가 소이탄 몇 개를 투하하여 아주 작은 규모의 산불을 일으켰다.


The fourth and final attack, using balloons carrying incendiary bombs, was the most earnest of them all. The concept was the brainchild of the Japanese Ninth Army Technical Research Laboratory, under Major General Sueyoshi Kusaba, with work performed by Technical Major Teiji Takada and his colleagues. The balloons were intended to make use of a great strong current of winter air that the Japanese had discovered flowing at high altitude and speed over their country, which would someday be known as the jet stream.
소이탄을 운반하는 풍선들을 사용한 4번째이자 마지막 공격은 전반적으로 가장 큰 위력을 가졌었다. 이런 풍선폭탄의 발상은 수에요시 쿠사바 소장 휘하의 기술 장교 테이지 타카다 소령과 그의 동료들 및 부하들로 구성된 일본 육군 제9군 기술 연구소의 작품이었다. 그 풍선들은 겨울 공기의 대단히 강력한 흐름(바람)을 사용하도록 고안되었는데, 일본인들은 그러한 바람이 그네들 나라의 높은 고도에서 대단한 속도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으며, 그 바람은 오늘날 ‘제트기류’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The jet stream blew at altitudes above 9.15 kilometers (30,000 feet) and could carry a large balloon across the Pacific in three days, over a distance of more than 8,000 kilometers (5,000 miles). Such balloons could carry bombs to the United States and drop them there to kill people, destroy buildings, and start forest fires. In this way the Japanese would punish the impudence of the Americans for the Doolittle raid against Tokyo and other Japanese cities in 1942. They named the weapon "fusen bakudan", which literally means "fire bombs", but which has been translated as "fire balloons".
제트기류는 태평양 상공 9.15킬로미터(30,000 피트) 정도에서 불고 있었으며 8000킬로미터(5000마일) 이상의 거리를 3일 만에 돌파하여 커다란 풍선을 운반할 수 있었다. 이러한 풍선들은 미국까지 폭탄을 운반할 수 있었으며, 투하되기만 하면 사람들을 죽이거나 건물들을 파괴하고 또한 산림지대에 불을 낼 수 있을 것이었다. 일본인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1942년에 도쿄 및 일본의 여타 도시들에 대한 둘리틀 장군의 폭격 덕에 기고만장해진 미국인들에게 화끈한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보았던 것이다. 그들은 ‘후센 바쿠단’이라는 이름을 그 무기에 붙였는데, 이는 문자 그대로 ‘화염 폭탄’이라는 뜻이었지만, 그러면서도 실제로는 ‘화염 풍선’이라는 의미로 번역되어 왔다.
     
Building a balloon that could survive a trip across the Pacific and then automatically drop its war-load was technically challenging. A hydrogen balloon expands when warmed by the sunlight and rises, then contracts when cooled at night and falls. The engineers devised a control system driven by an altimeter that discarded ballast to maintain altitude.
태평양을 횡단하는 여행에서 살아남게 해야 할 뿐만 아니라 폭탄을 자동적으로 투하하도록 하기 위한 풍선의 제작은 기술적인 모험이었다. 수소가스로 부풀린 풍선은 대낮에 태양광선에 의해서 따뜻해졌을 때 부풀어나는 데다 필요이상 상승하게 되며, 그런 다음에는 밤이 되어 시원해졌을 때는 쪼그라들면서 위험할 정도로 하강하기까지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기술자들은 풍선을 적당한 고도에 있도록 안정시켜주는 고도계에 의해서 운행되는 조종 시스템을 고안해 내었다.


When the balloon descended below 9 kilometers, it electrically fired a charge to cut loose sandbags. The sandbags were carried on a cast-aluminum four-spoked wheel, and discarded two at a time to keep the wheel balanced. Similarly, when the balloon rose above about 11.6 kilometers (38,000 feet), the altimeter activated a valve to vent hydrogen. The hydrogen was also vented if the balloon's pressure reached a critical level.
풍선이 고도 9킬로미터 아래로 내려가게 되었을 때, 풍선의 전기장치가 불을 뿜어 모래주머니들을 잘라내어 풍선을 가볍게 만든다. 모래주머니들은 주조된 알루미늄으로 된 4개의 바퀴모양 휠로 운반되었으며, 휠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한번에 두개가 버려지도록 되어있었다. 비슷한 모양으로, 풍선이 약 11.6킬로미터(38,000피트) 이상의 필요 이상으로 높은 고동에 이르게 되었을 때, 고도계는 밸브를 열어 수소가스를 새어나가도록 알아서 움직이게 된다.        

The control system ran the balloon through three days of flight. At that time, it was likely over the United States, its ballast expended. The final flash of gunpowder released the bombs, also carried on the wheel, and lit a 19.5 meter (64 foot) long fuze that hung from the balloon's equator. After 84 minutes, the fuze fired a flash bomb that destroyed the balloon.
그러한 조종 시스템은 3일간의 비행 동안 풍선을 조종하게 된다. 드디어 미국 상공에 도착하게 되면, 수소가스는 모두 소비된 상태가 된다. 화약에 의한 최종 섬광이 모래주머니와 함께 휠 위에 적제 되어 운반되어 온 폭탄들을 투하하게 되며, 그리고 풍선의 중간부분에 매달린 19.5미터(64피트) 길이의 퓨즈에 불이 붙게 된다. 84분 뒤에, 퓨즈는 풍선을 파괴하기 위한 섬광폭탄을 점화하게 된다.


The balloon had to carry about 900 kilograms (1,000 pounds) of gear, which meant a hydrogen balloon with a diameter of about 10 meters (33 feet). At first, the balloons were made of conventional rubberized silk, but there was a better way to make an envelope that leaked even less. An order went out for ten thousand balloons made of "washi", a paper derived from mulberry bushes that was impermeable and very tough. It was only available in squares about the size of a road map, so it was glued together in three or four laminations using paste derived from a tuber with the Japanese name of "devil's-tongue".
이는 결국 지름이 약 10미터(33피트)나 되는 수소가스로 가득 찬 풍선으로 약 900킬로그램(1,000파운드) 가량의 장비를 운반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초의 풍선들은 재래식으로 고무가 입혀진 비단으로 만들어졌으나, 나중에는 수소가스가 새는 구멍까지 줄어든 봉투를 만드는 더욱 혁신적인 방법이 생겨났다. 그 다른 방법에 의해서 1만개에 이르는 풍선들이 만들어졌는데, 그 재료는 ‘와시’(일본 한지)라고 불리는 뽕나무 가지를 원료로 한 종이로서 이는 습기가 스며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우 질기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종이는 오직 도로 지도 크기 정도의 네모난 모양으로밖에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일본인들이 ‘악마의 혀’라는 이름으로 부르던 감자 같은 식물에서 채취한 풀을 사용하여 세 장이나 네 장씩 겹쳐서 붙여야 했다.        

Hungry workers stole the paste and ate it. Many workers were teen-aged girls, whose fingers were nimbler than any class of people. They were told to wear gloves, to keep their fingernails short, and not to use hairpins. They assembled the paper in many parts of Japan. Large indoor spaces, such as sumo halls, soundstages, and theatres were required for the envelope assembly.
굶주린 직공들이 그 곤약으로 만든 풀을 훔쳐 먹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십대 소녀들이었으며, 그들의 손가락들은 그 어떤 계층의 사람들의 손가락보다 민첩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장갑을 착용하라는 지시를 받았으며, 그들의 손톱은 반드시 짧게 유지되어야 했고, 머리핀 같은 것은 절대 사용되어서는 안 되었다. 그들은 일본의 여러 지역에서 그 종이들을 조립했다. 예컨대 ‘스모 경기장’, ‘가수들의 공연장’, 그리고 극장 같은 닫혀져 있으면서도 거대한 공간에서 그 종이 봉투들을 조립할 것이 요구되었다.        

The workers had no idea of the purpose of their work. When rumors suggested the truth to them, that they were making "fusen bakudan" that would fly all the way to America and start fires, they laughed. Somehow, secrecy was preserved.
그 일에 동원된 노동자들은 그들이 하는 일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다. 나돌아 다니던 소문들이 그들에게 진실을 알렸을 때, 즉 그들이 미국으로 날아가서 불을 지르게 될 ‘후센 바쿠단’(풍선 폭탄)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는 이야기를 알려주었을 때, 그들 모두가 킬킬 웃어대었다. 알게 모르게 풍선폭탄에 대한 비밀은 지켜진 셈이었다.

출처: http://blog.naver.com/korea213/80020323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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