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Rep 2008.02.01 22:56
갑옷을 종이로 만들었다고 해서 갑의지(甲衣紙) 
종이로 만든 갑옷. 그 갑옷을 만들 때 사용됐던 종이가 바로 갑의지입니다. 조선시대 사용된 종이로, 갑옷으로 활용된 대표적인 종이입니다. 어떤 분이 직접 갑의지를 날이 선 칼로 종이 그을 때처럼 그었는데, 보통 종이는 그냥잘리는 반면 갑의지는 흡집만 날뿐 잘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 갑의지 제작법은 아래와 같습니다.


 1. 화선지 또는 한지를 사용하고 싶은 크기로 자른다.
 2. 종이에 옻칠 또는 니스칠을 한다.
 3. 가로로 빼곡히 바르고 세로로 바르고 대각선으로 바른다.
 4. 햇빛 또는 바람으로 잘 말린다.
 5. 뒷면도 3번과 4번 같이 한다.
 6. 앞뒤를 한번더 3번과 4번 같이 한다.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종이이기 때문에 다른 화선지 또는 한지보다 훨씬 견고합니다. 그래서 아까 전에 말한, 칼로 그어도 흡집만 나는 경우가 발생한 거죠. 또 한국방송(KBS)의 실험을 보면 두께 1밀리미터인 갑의지를 10미터 거리에서 쏘 국궁 화살이 뚫지 못하고, 부러져 버려습니다. 또 옻칠을 해서 불에도 강했다고 합니다.
세종대왕실록과 동국여지승람에는 갑의지(甲依紙)에 대해 설명되어 있습니다.

'갑의지는 전쟁터에서 화살을 막는 갑옷에 쓰인 종이이다. 화살을 막기 위해서는 물론 철판을 써야 하지만, 철판은 무겁기 때문에 대신 가벼우면서도 강도가 철판 못지않은 갑의지를 썼다.'

이런 갑의지를 통해 만들어진 갑옷을 지갑(紙甲)이라고 합니다. 현재는 없어진 말이죠(언어의 역사성).


 +참고::
우리나라는 닥나무로 닥종이(한지)를 만들어 썼는데, 쓰임에 따른 구분으로 신년을 축복하는 뜻으로 그림을 그리는 종이인 '세화지', 얇고 깨끗하며 매끄러운 것으로 부채나 연을 만들 때 사용된 '편자지', 장판의 유지나 창문에 쓰인 '후지', 온돌장판용인 '온돌지'가 있고, 또 창호지, 계목지, 백지, 창지, 견양지, 공물지, 대산지 등이 있었습니다.

출처: 네이버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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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나가다가
밀리터리Rep 2008.01.17 23:44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보다 150년 뒤에 만들어진 조선 수군의 전함은 비둘기처럼 생겼다?

조선 후기의 전함이었다고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해골선의 모습을 그린 문서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해골’이란 바다(海)의 비둘기 또는 '송골매'란 뜻이다. 고창석 전 한국고서협회 회장은 최근 발간한 ‘조선 수군과 해양유물 도록’(장보고 刊)에서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해골선도’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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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도면은 ‘해골선’이라는 제목 아래, 배 앞부분이 새의 머리처럼 돼 있고 새의 깃털이 배 위를 뒤덮은 형상의 전함을 그렸다. 그 밑에 “본판(本板·바닥)의 길이는 7파(把·1파는 10척) 5척, 윗부분의 길이는 9파 3척, 너비는 2파 5척, 높이는 2파 1척이다. 정묘년(1747년으로 추정) 3월 ○일에 쇠못을 박아 새로 만들었고 가격은 쌀 80석(石) 6두(斗) 5합(合)”이라고 적었으며 전라우도의 관인이 찍혀 있다.


‘조선왕조실록’ 영조 16년(1740년) 6월 18일조에는 “전라좌수사 전운상(田雲祥)이 해골선을 만들었는데, 몸체는 작지만 가볍고 빨라서 바람을 두려워할 걱정이 없었다” “(임금은) 통영과 여러 도(道)의 수영(水營)에 해골선을 만들라고 명했다”고 기록돼 있다. 정조 때 나온 ‘전라우수영지’에 의하면 이 배에는 모두 56명이 탑승할 수 있었다. 학계에선 임진왜란 때의 판옥선보다 선체가 작으면서도 운용하기 편리한 중소형 군선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 동안 이 배의 모습을 그린 당시의 자료는 나오지 않았다. 100여 년이 지난 1855년에 편찬된 ‘무비요람(武備要覽)’에 중국의 ‘무비지(武備志)’를 보고 그린 것으로 보이는 해골선 그림이 있지만 이번 자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정진술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기획실장은 “문서의 출처와 시기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조선 후기의 주요 함선이었던 해골선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라고 말했다. ‘조선 수군과 해양유물 도록’은 이 밖에 고창석씨가 소장한 ‘충무공 장계’ ‘조선사공명부’ ‘해동제국기’ 등의 자료를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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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나가다가
한국이야기 2007.12.24 00:31
한국, 세계 최초의 방탄 조끼 '면제배갑'

세계최초의 방탄조끼는 한국(=조선)의 것이었다. 방탄조끼는 말 그대로 총탄을 막기 위해 상체에 두르는 방어무기다. 인체 주요기관이 상체에 위치한 까닭에 방탄조끼는 병사의 생존력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한다. 그럼에도 현대전에서 방탄조끼가 보급된 된 건 극히 최근의 일이다. 그런데 이런 방탄조끼가 서양이 아닌 한국 아니 조선에서 세계 처음으로 개발되었다. 한국(=조선)은 1866년 병인양요때에 서양 총에 위축이 되어 제대로 된 전투를 하지 못했던 조선군의 모습을 보고 흥선대원군이 직접 지시를 내려 서양 총의 총탄을 막아 낼 수 있는 방탄조끼의 개발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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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면제배갑'.. '면제배갑'이라고 이름 붙여진 조선군의 방탄조끼인데, 그렇게 세상에 모습을 나타냈다. 면제배갑은 면 헝겊 13겹을 겹쳐 단단히 꿰맨 것이었다. 여러겹의 면이 총탄의 운동 에너지를 차례차례 흡수해 병사를 보호하도록 했다. 면제배갑은 1871년 미국이 자국 상선 제너럴셔먼호 침몰을 계기로 일으킨 신미양요 때 본격적으로 성능을 입증한다. 면제배갑을 착용한 당시 조선군은 실제로 미국 군대가 퍼부은 총탄에서 보호 받았다. 총탄으로부터의 방호라는 목적이 정확히 달성된 셈이었다. 반대로 서양총에 맞고 픽픽 쓰러질 줄 알았던 미군병사들은 아연실색하였다. 자신들이 쏜 총알을 정통으로 맞고도 쌩쌩히 살아있으니..

더욱이 놀라운 점은 조선군 방탄조끼의 원리가 아라미드 섬유를 통해 총탄의 운동 에너지를 흡수하는 현대의 최신 방탄조끼와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1935년 미국 듀폰사가 개발한 아라미드는 고분자 아미드기(CO-NH)가 2개의 방향족 고리에 직접 결합한 섬유다. 아라미드 고분자가 나란히 정렬해 서로 강력하게 결속돼 있다는 얘기다. 그 결합 정도가 총탄의 운동 에너지도 흡수할 만큼 강력하다. 당시 조선군은 면 헝겊을 겹쳐서 이와 비슷한 효과를 낸 것이다.

그러나 면제배갑에는 중요한 약점이 있었다. 우선 입고 있으면 너무 더웠다. 메리야스 13겹을 겹쳐 입었다고 생각 해 보라. 한 여름에 적이 쳐들어 왔을 때 이를 입고 달려야 하는 병사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신미양요가 6월에 일어났던 탓에 조선군은 더위라는 적과도 싸워야 했다. 게다가 비가 오거나 강을 건너면 면제배갑이 물을 한껏 흡수해 이를 입은 병사의 기동력을 떨어뜨렸던 것도 문제였다. 가장 치명적이었던 건 면제배갑이 불에 극히 취약했다는 것이다. 면 소재가 지닐 수밖에 없던 약점이었다. 실제로 신미양요 당시 미국 군대가 대포 공격을 하자 그 파편 때문에 면제배갑을 입은 병사들의 몸에 연이어 불이 붙었다.이 걸출한 물건의 약점을 간파한 미군은 면제배갑을 입은 병사들을 향해 포탄세례를 퍼부어 포탄의 파편과 그 불꽃들이 튀기기 만들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 걸출한 물건은 세계 방탄조끼의 발달에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 받아 미국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출처: 본인, http://blog.naver.com/korea213/8004008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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